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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예술연구 KCI 등재 문화와예술연구 (문화예술연구) The Study of Culture &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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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집 (2014년 6월)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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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의 이론적인 배경과 동양 천문도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중성의나열 순서가 지금과다르게되어 있는 이유는 천문도인 하도에 이론적인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해례본의 중성의 순서- •, ,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해례본의 초성의 나열순서가 지금과 다르게 되어있는 이유는 천문도 인 낙서에 이론적인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해례본의 초성의 순서 - ㄱ ㅋ ᅌ, ㄷ ㅌ ㄴ, ㅂ ㅍ ㅁ, ㅈ ㅊ ㅅ, ᅙ ㅎ ㅇ, ㄹ, ▵) 한글이 모두 28자로 만들어진 이유는 <28수 천문도>에 이론적인 바 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24자만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세종때에사용하던4글자와합용병서법을살려쓰면우리말 뿐 아니 라 정확한 외국어표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ㅋ ㅌ과 ㅊ ㅎ에 획畫을 더한 모양이 서로 다른 이유, 즉 ㅋ과 ㅌ에 는 획(━)으로, ㅊ ㅎ에는 각점 (n)을 더한 이유도 <28수 천문도>에 그 이론적인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훈민정음창제의 이론 적인 배경과 동양천문도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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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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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유학의 방법론은 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체계에 집약되어 있 다. 그것은 修己以敬· 修己以安人· 修己以安百姓으로 보편성을 강 화시켜 가면서 不踰矩[上達]에 이르는 길이다. 하지만 수기이안인의 체계는 성리학에 이르러 ‘修己治人’으로 전회된다. 유학의 현재화라는 입장에서 볼 때, 수기치인론은 공자의 수기이안 인의 본의를 왜곡시킨 것이며, 수기를 수단으로, 치인을 목적으로 이 해될 수도 있으며, 수기라는 과정을 통하여 치인이라는 결과에 도달 한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다. 그러므로 수기치인론은 공자의 본의 대로 수기이안인 론으로 그 개념과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이 바람직 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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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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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이황과 이이의 철학을 사칠론과 리의 자발성이란 측면 에서 검토한 것이다. 이황과 이이의 사유를 비교하자면 이황은 실존 적이라면 이이는 일반적이다. 이황은 실존적 경험과 수양을 중시했 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칠론에 관심을 가졌다. 사칠론은 삶 속에 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마음이나 감정의 분류학이기 때문이 다. 또한 사칠론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리발설을 주장하게 된 다. 도덕적 마음으로서의 사단은 인간의 육체적 경향성과 반하는 것 이기 때문에, 그것과는 다른 근거에서 유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서 그는 사단이란 리에서 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이황의 사유 과정은 구체적 실존, 사단과 칠정으로 분류되는 현상적 마음, 그리고 사단과 칠정의 존재론적 근거로 진행된다. 만약 사변적 인 관심만을 가졌다면 이황은 기대승과의 논쟁에서 그렇게 자신의 사칠론에 대해 이론적인 변경을 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황은 자신 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실존에 대한 정확한 반성과 인식 은 그로 하여금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틀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게끔 했던 것이다. 반면에 이이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황을 비 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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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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止感은 한국선도의 경전인 『삼일신고』에서 제시한 세 가지 수행 중 하나이다. 지감이란 감정을 그쳐서 외부의식을 다스리는 것이다. 감정을 그칠 때 고요한 내면으로 몰입할 수 있고, 순수자아인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 지감법은 선도수행자나 명상가를 포함하여 정신건강 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효용이 있다. 지감의 방법론이 원전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으로 감정을 그치게 하는가는 것은 후대의 과제이다. 근대에 대종교의 삼 법으로 전승되었고, 근래에는 ‘현대 단학’이라 표현하는 수련단체에서 실행되고 있다. ‘현대 단학’의 지감법은 자신의 몸에 집중하여 기를 느끼는 것이 그 방법이다. 기의 느낌에 집중하게 되면 뇌파는 알파파 이하로 떨어 져 외부의식으로부터 격리된다. 뇌파의 변화에 따라 감정은 사그러들 고, 고요하고 안정적인 마음상태가 된다. 지감의 원리는 뇌과학적 측 면에서 뇌기능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뇌 신경세포는 우선적으로 주요한 정보처리를 하는 동안에 다른 정보의 처리를 하지 않는다. 기 의 흐름에 몰입하는 동안 뇌에서 감정이나 잡념의 정보처리를 멈춤 으로서 감정을 차단하게 된다. 선도수련법 지감이 과학적 원리로 환 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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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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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계시(寶雞市)는 섬서성(陝西省)의 서남부에 위치하여 관중(關中) 지역에서 남쪽으로 사천(四川)으로 통하고 서쪽으로 감숙(甘肅)에 이 르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예전에는 진창(陳倉)이라고 일컬었다. 여기 에 속하는 기산현(岐山縣)과 부풍현(扶風縣)은 주(周)나라의 발원지이 다. 청(清)나라 후기 이래로 이 지역에서는 다량의 양주(兩周)시기 청 동기(青銅器)가 끊임없이 출토되어 명실상부한 청동기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 지역에서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청동기군(青銅器群) 을 선별하고 고고유적에 의거하여 교장(窖藏)과 묘장(墓葬)으로 크게 분류하였다. 교장의 청동기는 장백1호교장(莊白一號窖藏), 동가촌1호 교장(董家村一號窖藏), 양가촌교장(楊家村窖藏), 오군서촌교장(五郡西 村窖藏), 운당1호교장(雲塘一號窖藏), 태공묘진공교장(太公廟秦公窖藏) 등이 포함되었다. 묘장은 최근에 발견된 상송향홍위촌묘장(上宋鄉紅 衛村墓葬), 석고진석주두촌묘장(石鼓鎮石嘴頭村墓葬), 금대구장청촌묘 장(金台區長青村墓葬) 등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교장에 보관된 청동기군은 동일한 가족 혹은 서로 다른 가 족의 여러 세대 사람들이 사용하던 기물을 포함한다. 그 연대는 대부 분 서주(西周)초기에서 후기에 해당된다. 태공묘 진공교장(太公廟秦 公窖藏)과 같이 극히 일부의 것은 춘추(春秋)초기 진 덕공(秦德公)이 사용하던 기물도 보인다. 선별된 묘장은 기본적으로 모두 서주 초기 에 속한다. 그 족속(族屬) 상황은 비교적 복잡한데, 주로 주인(周人) 집단 중의 강성(姜姓)과 어성( 族)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와 같이 시대가 다르지만 분포가 질서정연한 고고학적 현상을 통해, 우리는 서주의 건국 전후에 관중지역의 족군(族群)에 대한 구 체적인 배치와 이러한 족군(族群)이 서주 왕조에 대한 방어 및 통치 체계 중의 기능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주왕조가 동천(東遷)한 뒤 에 관중(關中)지역 진(秦)나라의 활동 상황도 엿볼 수 있었다. 본고를 통해 독자들은 양주(兩周)시기 관중지역의 문화면모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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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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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기 중국과 한국의 회화세계 속에는 드러나거나 내재된 문학 적 내용이 많은데, 이러한 회화작품들은 다시 문학의 창작과 감상에 영향을 주게 된다. 시문이 조형이미지로 표현되는 거대한 흐름 속에 서 시문-회화-시문-회화 순으로 넘나드는 수용(受容)의 역사가 일어 났고 이가 지속되는 가운데, 회화로 그려진 조형이미지가 영향력을 발휘하여 시문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시문의 감상을 지배하게 되었 던 경우를 말한다. 이 글은 시(詩)·화(畵) 제작의 상호영향에 있어서 회화의 조형이미 지가 시문의 우위에서 작동했던 대표적인 예로 당나라 왕유(王維, 701-761)의 ‘망천(輞川)’ 별장에 관련된 시문과 그림의 수용사를 살폈 다. 왕유가 망천장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였고, 왕유의 시화작업은 시·화 상통의 가장 대표적 예로 송대부터 추앙되었다. 조선시대에도 망천은 끊임없는 시·화의 주제였다. ‘망천’은 실재하는 특정한 곳이고, 왕유의 시문은 글자가 바뀌지 않고 전달되었지만 이를 그린 회화의 조형이미지에서 역사적 혹은 지역적 변화가 발생하면서, 망천의 이미 지 자체에 변화가 일게 된다. 특히 중국 명대의 부화해지는 문화 속 에서 망천 조형이미지는 지나치게 소박하게 변화한다. 달라진 조형이 미지는 망천의 상상이미지를 지배하고 시의 제작의 실제 내용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망천을 그린 조선의 회화작품에는 조선의 풍경이 삽입되어 변화했 고, 이러한 변화된 이미지는 조선의 문인들에게 상상된 망천의 이미 지를 알려준다. 현전하는 조선후기 이방운의 망천도 몇 점은 좋은 예 이다. 조선시대 회화로 구현된 망천의 이미지는 왕유의 망천을 표방 하면서 그 시절 은거산수의 이상을 보여주는 보편적 이미지로 작동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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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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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창암의 서론(書論)과 서적(書跡)의 내용을 중심으로 ‘창암체’ 형성 기반으로서의내면적 사유(思惟)와 용필법(用筆法)의 특징을분석 하고 ‘창암체’에 투영된 양상을 논의하였다. 창암은 당대서풍의 문제점을 개혁하고 옛 법을 회복하여 서예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기 위하여 서론(書論)을 저술하였다. 書를 書道로 천명한 창암은 자연의 경지에 계합하는 서를 이루기 위해 음 양(陰陽)의 상반응합(相反應合)의 조형원리를 도입하고 귀어자연 (歸於自然)의 목표를 설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극공(極功)의 연마를 강조하면서 내면적 사유와 실제 글씨와의 일체경계를 지향하였다. 즉 서가의 도정(道程)으로 유법(有法)의 연마에 극공을 기울여 마침 내 무법(無法)의 자연에 계합할 것을 제시하였다. 그가 용필법을 중 시한 이유는 필법의 오묘함을 터득했을 때에야 만물의 형태가 기묘 한 書로 드러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논의한 것처럼 창암의 사유(思惟)와 필법적 특징은 ‘창암체 (蒼巖體)’에그대로투영되었다. 창암은내면적 사유와실질적필법이란 두 측면을잘 융합시킨것이다. ‘창암체’는 순수(純粹), 소박(素朴), 졸박 (拙朴), 생동(生動)의 풍격을 띠고 있으며, 자연만물처럼 소박하고 단순 하면서도 무궁한 것을 함유하고 있어 일명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라 는별칭을얻기도하였다. 창암이서예를자연물과동일한층차(層次)의 존재물로보고자연을담아냄으로써‘창암체’는자연만물과같은객관성 과 실재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서예사적관점에서볼때창암의친자연주의적서예관은동국진체(東 國眞體) 서가들의 천인합일적 서예관념을 계승한 한편으로, 자연이 書 의전형이자귀착점이라고인식했던창암자신의미학적사유의결과이 다. 그는 조선의 산천과 조선인의 심상에 부합하는 새로운 풍격의 서예 미학을개척하여한국적고유성의영역을확장함으로써결국19세기동 국진체 서가로 우뚝 선다. 결과적으로 서예로서 시대정신을 대변하고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창암은 조선 후기 예술사에서 서예의 위상을 확고히 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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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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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板橋는 중국 청대 화단의 金農, 黃愼등 ‘揚州八怪’의 한 사람으로 이름은 燮, 字는 克柔, 板橋는 그의 號이다. 강 소성 흥화인으로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6살 때 이미『사 서오경』을 숙달할 정도로 총명하였다. 20살에 陸種園에게 서예를 배운 이후 詩, 書, 畵방면에 뛰어나 속칭 ‘三絶’로 불리었다. 특히 蘭, 竹, 石, 松, 菊등의 그림을 잘 그렸는데 그중에서도 대나무 그림이 특출하다. 중국 청대 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양주팔괴’의 대표적인 인물인 정판교는 1736년 진사가 되여 시인묵객들 과 사귀면서 예술적 시야를 넓혔다. 1741년에 산동 范縣의 縣令으로 있는 동안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해 주어 청렴한 관리로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건륭 31년 (1766년) 潍县현령으로 있다가 부호들의 모함으로 파직하 여 고향으로 돌아온 후, 여생을 청빈하게 살면서 시, 서, 화, 篆刻등의 예술혼을 꽃 피웠다. 그의 詩詞는 모두가 색다른 방식을 추구하였고, 서법은 ‘六分半書’라는 서체를 이루었다. 난초와 대나무 그림은 당시 풍습을 이어받지 않았고, 山水, 花鳥畵등에서도 비범함을 보였다. 전각에도 고박한 筆意를 나타내었다. 그리고 만년에는 대운하와 소금 거래로 경제적 번영을 이룬 양저우에서 그림 장사를 한 기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는 중국미술사와 중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石濤와 八大山人을 계승하여 자신의 의식이 겸비된 사상을 나타낸 도전적인 화가였으며, 그러므로 당시 의기소 침한 분위기의 예술계에서는 그를 전혀 어울리지 않는 ‘怪 人’이라 불리었다. 필자는 정판교의 일생과, 관직생활, 서화 예술 등을 폭넓게 살펴, 첫째는 시대적인 괴이함, 둘째는 개 성의 괴이함, 셋째는 서법에서의 괴이함, 넷째는 작품을 상 품화하는 괴이함으로 그의 ‘怪’의 근원을 살폈다. 동시에 필 자는 정판교가 ‘怪’를 나타내기 이전의 啓蒙時期, 즉 ‘不怪’ 의 시기와 ‘六分半書’를 시작으로 ‘怪’를 인정하는 시기의 書 畵풍모를 살폈다. 괴이함은 이성을 잃은 그의 언행 등을 살펴볼 때, 우수한 서화가는 필수적으로 감성충돌과 예술 감각의 깨달음이 실질적으로 나타난 점이라고 생각된다. 이 것이 소위 말하는 ‘怪’의 서화 표현이다. 그는 앞서간 사람들의 전통적인 기초 위에서 이를 계승 발전시켜 진일보한 작가이다. 이는 일종의 대담함과 결단력. 그리고 방종한 예술풍격의 표현이다. 결론적으로 정판교는 古樸한 창작목적과 前·後의 심원한 예술정신을 계승한 ‘천하를 위무하는 노력하는 작가’였으며 詩·書·畵를 결합시키는 작자였음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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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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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는 문자의 조형미를 표현하는 예술이며, 문자의 뜻과 자형을 통하여 작가의 성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서예의 주요 성분은 필법 ㆍ필세ㆍ필의의 3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필법은 서예에서 가장 기본 적 요소로 입문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익혀야 할 규범이다. 필세와 필 의는 필법의 기초에서 작가의 성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필법 에 대한 연구와 고찰은 서예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한 우선적으로 해 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이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없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연구 목적은 서예의 기본적 표현 기법인 필법에 대한 역대 변천을 고찰하는 것이다. 이는 필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창작을 모색하는 데에도 필수적 연구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는 필 법에 대한 정확한 기초를 마련하고, 또한 이러한 기초에서 올바른 창 작을 모색하는 데에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연구의 의의가 있 을 것이다. 연구 방법은 먼저 필법의 의의와 형성을 살펴본 다음 역대 필법의 변천을 위진남북조ㆍ당나라ㆍ당나라 이후로 나누어 분석한 이후 필 법의 가치와 영향을 기술하고 여기에서 얻은 결과를 정리하여 결론 으로 삼았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기본 필법은 선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점과 획으로 변화하였고, 진나라 문자통일을 거쳐 한나라 예서에서 기틀을 마련하여 삼절필의 기교가 보편적으로 응용됨으로써 형성되 었다. 필법의 변천 과정을 보면, 위진남북조는 주로 해서ㆍ행서ㆍ초 서에서 완성을 이루었고, 한나라 예서의 필법이 점차 사라졌으며, 전 절을 겸하여 삼절필에 대한 기법을 완성하는 시기였다. 당나라는 초 당 삼대가를 통하여 남북의 필법 및 해서ㆍ행서ㆍ초서 등의 체계를 갖추었고, 중기 이후는 안진경을 통하여 필법의 극치를 이루었다. 이 후 송나라에 이르러 황실의 기호, 제도의 영향, 예술사상의 변화 등 으로 분명하게 다원화된 ‘상의’서풍을 나타냈고, 이후 조맹부의 시대 서풍을 거쳐 명나라의 전람문화와 청나라의 비학 등의 발전으로 시 대별 다양한 변천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변천 과정을 통 하여 필법의 가치는 본래의 법을 바탕으로 하여야만 알맞게 취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으며, 심미가치 또한 높게 구현할 수 있다고 분석 하였다. 이는 역대 서예가들이 끊임없이 필법을 탐구하는 이유이고, 이를 통하여 필법의 전승은 서예를 예술의 한 분야로써 탄탄하게 만 드는 기반이며, 서예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임을 알 수 있 었다. 서예는 3,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장구한 세월 동안 서예가 지속적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각 시대별 변천 과정에 서 끊임없는 창신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 하고 뛰어난 서예가들은 우수한 전통을 지키고, 낡은 전통을 버리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창신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과정은 반드시 필법을 바탕으로 이루었고, 끊임없이 필법의 비결을 얻고자 노력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서예의 공통적 규범을 습 득하고, 득심응수(得心應手)의 경지에 이르고자 함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필법의 연구는 중요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서예의 실천에서 필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서예의 건전한 미래 발전을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필법에 대한 고찰은 바로 서예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는 분명히 현실적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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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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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老莊의 生死觀을 고찰하여 민요에 수용되어 있는 한국인의 生死觀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 민요의 주제 중 ‘生死’는 사 실상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老莊의 生死观역시 많은 곳에 서 주요 테마로 곧장 활용되는데, 그 빈도와 역할에서 儒家의 生死观 을 훨씬 넘어선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에 대한 비애와 공포를 문학적 으로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대자연 속에 귀 의하여 生死를 초월하고자 하는 老莊의 정통적인 生死觀이기 때문이 다. 이에 본고에서는 한국의 민요를 ‘不死志向形’과 ‘生死脫俗形’이란 두 개의 패러다임을 기준으로 다양한 실례를 들어 고찰하였다. 老莊의 生死观은 老子의 ‘死而不亡’과 莊子의 ‘死生一體’로 집약할 수 있다. 이것은 ‘死而不朽’를 추구하는 儒家의 입장과는 차이를 나타 낸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는 육체의 죽음을 인정하면서도 정신적인 영원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만약 죽은 뒤 다시 태어남 을 강조하는 佛敎와 기독교의 生死观을 ‘死後新生’이라 한다면, 儒家 와 老莊의 生死观은 모두 ‘死而不亡’ 또는 ‘死而不朽’형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老子가 말하는 ‘摄生을 잘하는 자’와 莊子가 추구했던 ‘至人’의 ‘生 死를 초월하는 형상’은 정신적 측면을 설명하기 위한 신화적 비유였 지만, 道敎에서는 이를 육체적인 측면으로 생각하여 여러 가지로 죽 지 않는 법들을 탐구했다. 결과 老子의 生死观은 ‘不死志向形’으로 변 형되는데 반하여, 老莊의 生死观을 준수하는 ‘生死脫俗形’ 유형은 산 수자연을 道의 구현체로 보고 그곳으로 귀의하여 노니는 것으로 전 개된다. 後者를 老莊의 정통적인 生死观으로 부른다면, 前者를 老莊 의 生死观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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