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板橋는 중국 청대 화단의 金農, 黃愼등 ‘揚州八怪’의 한 사람으로 이름은 燮, 字는 克柔, 板橋는 그의 號이다. 강 소성 흥화인으로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6살 때 이미『사 서오경』을 숙달할 정도로 총명하였다. 20살에 陸種園에게 서예를 배운 이후 詩, 書, 畵방면에 뛰어나 속칭 ‘三絶’로 불리었다. 특히 蘭, 竹, 石, 松, 菊등의 그림을 잘 그렸는데 그중에서도 대나무 그림이 특출하다. 중국 청대 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양주팔괴’의 대표적인 인물인 정판교는 1736년 진사가 되여 시인묵객들 과 사귀면서 예술적 시야를 넓혔다. 1741년에 산동 范縣의 縣令으로 있는 동안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해 주어 청렴한 관리로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건륭 31년 (1766년) 潍县현령으로 있다가 부호들의 모함으로 파직하 여 고향으로 돌아온 후, 여생을 청빈하게 살면서 시, 서, 화, 篆刻등의 예술혼을 꽃 피웠다. 그의 詩詞는 모두가 색다른 방식을 추구하였고, 서법은 ‘六分半書’라는 서체를 이루었다. 난초와 대나무 그림은 당시 풍습을 이어받지 않았고, 山水, 花鳥畵등에서도 비범함을 보였다. 전각에도 고박한 筆意를 나타내었다. 그리고 만년에는 대운하와 소금 거래로 경제적 번영을 이룬 양저우에서 그림 장사를 한 기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는 중국미술사와 중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石濤와 八大山人을 계승하여 자신의 의식이 겸비된 사상을 나타낸 도전적인 화가였으며, 그러므로 당시 의기소 침한 분위기의 예술계에서는 그를 전혀 어울리지 않는 ‘怪 人’이라 불리었다. 필자는 정판교의 일생과, 관직생활, 서화 예술 등을 폭넓게 살펴, 첫째는 시대적인 괴이함, 둘째는 개 성의 괴이함, 셋째는 서법에서의 괴이함, 넷째는 작품을 상 품화하는 괴이함으로 그의 ‘怪’의 근원을 살폈다. 동시에 필 자는 정판교가 ‘怪’를 나타내기 이전의 啓蒙時期, 즉 ‘不怪’ 의 시기와 ‘六分半書’를 시작으로 ‘怪’를 인정하는 시기의 書 畵풍모를 살폈다. 괴이함은 이성을 잃은 그의 언행 등을 살펴볼 때, 우수한 서화가는 필수적으로 감성충돌과 예술 감각의 깨달음이 실질적으로 나타난 점이라고 생각된다. 이 것이 소위 말하는 ‘怪’의 서화 표현이다. 그는 앞서간 사람들의 전통적인 기초 위에서 이를 계승 발전시켜 진일보한 작가이다. 이는 일종의 대담함과 결단력. 그리고 방종한 예술풍격의 표현이다. 결론적으로 정판교는 古樸한 창작목적과 前·後의 심원한 예술정신을 계승한 ‘천하를 위무하는 노력하는 작가’였으며 詩·書·畵를 결합시키는 작자였음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