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얼후 예술의 대가인 송비(宋飛)의 ‘이중 언 어’ 교수법의 분석을 통해 얼후의 효과적인 교육방법을 제시하 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송비(宋飛)의 ‘이중 언어’ 교수법과 관련된 성과보고 음악회 및 세미나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여 ‘이중 언어’ 교수법의 구성요소를 파악하고, ‘이중 언 어’ 교수법의 장단점을 분석한 후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 을 제시하였다. 연구 결과, ‘이중 언어’ 교수법 중 화언균(華彦鈞), 손문명(孫 文明), 유천화(劉天華) 등과 같은 대가의 전통 작품은 모국어 작품의 문화적 초석이라고 볼 수 있으며, 비모국어 작품은 주 로 바이올린 이식 작품을 위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송비(宋飛)가 그의 제자인 황효청(黃曉晴) 및 담흔(譚欣) 에게 계발식(啟發式), 삼투식(渗透式), 구전심수(口傳心授), 자각 식(感悟式) 등의 방법을 통해 훈련시켰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계발식(啟發式) 교육은 송비 (宋飛)의 교육 원칙 중 계발성의 원칙을 반영한 것으로 학습자 들이 독립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탐색을 통해 문제 분석 및 해 결의 능력을 향상시키도록 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삼투식(渗透 式)은 지식만 중시하고 감정을 경시하는 전통 교육의 폐단을 없앴다는 장점과 함께 예술 교육에서 활용 할 수 있는 공간이 매우 크다. 구전심수(口傳心授)는 중국 전통 음악 전승 및 발전 의 주요 모형으로서 음악의 윤강(潤腔)과 정취 및 곡정(曲情)을 심도 있게 체험하고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마지 막으로 자각식(感悟式)은 학생의 분석 능력을 향상시키고 학생 이 규율과 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본 연구 내용 및 결과는 교육 현장에 있는 얼후 교육자와 학 습자에게 ‘이중 언어’ 교수법을 계승 및 발전시킬 수 있는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성악은 예술적 가곡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예술이지만, 어 린이 성악 수업에서는 노래할 때 가사의 글자 깨물기(咬字)와 글자 내뱉기(吐字)가 옳은지 아닌지의 문제에 부딪히곤 하는데, 특히 방언의 특색이 짙은 지역, 예를 들면 샹(湘)방언 구역의 어린이 성악 학습과 교학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진다. 본 연구 에서는 샹(湘)방언 구역의 어린이 성악 교습에서 글자를 갈고 (咬字) 글자를 내뱉는(吐字) 문제와 관련하여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하였다. 첫째는 표준어 기초의 취약이고, 둘째는 글자를 깨 물고(咬字) 글자를 내뱉는(吐字) 무의식이며, 셋째는 발성상태 가 글자를 깨물고(咬字) 글자를 내뱉는(吐字) 것과 결합되어서 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제기된 문제에 대한 분석 결과 세 가 지 문제점을 확인하였다. 첫째는 지역환경과 언어환경의 영향 이고, 둘째는 성악예술의 영향(薰陶) 결여이며, 셋째는 보편적 인 문제와 개인차이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세 가지 해결 방안 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표준어 훈련 강화이고, 둘째는 발성 상 태에서의 언어 훈련이며, 셋째는 성악 이론과 실기의 조화 강 화이다. 벽돌을 던져 옥을 끌어들이는 일종의 방언 구역의 사 례로 들 수 있는 성악 언어 교학을 통해 노래를 부르는 중 글 자를 깨물고(咬字) 글자를 내뱉는(吐字) 문제를 깊이 있게 살펴 볼 수 있었다.
낙안읍성은 다양한 생활문화를 담은 600년 역사를 지닌 민속 마을로 2011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이 시 점에서 전통문화체험의 다양한 체험 마케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낙안읍성민속마을은 2005년부터 전통문화체험프로그램을 통 해 관광객들이 체험할수 있는 다양한 문화체험프로그램이 개발 되고, 지역 전통문화관광자원의 홍보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 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체험마케팅 전략을 활용하여 낙안읍성 상설 전통문화체험프로그램의 활성화 방안에 대해 살펴보았다. 체험마케팅은 소비자들을 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존 재라 가정하고 고객의 체험에 중심을 두며, 방법과 도구는 다 양하고 다각적인 감각·감성·인지·행동·관계의 특징을 갖고 있 다. 체험마케팅은 쇠퇴하고 있는 브랜드를 향상시키기 위해, 경 쟁자로부터 제품을 차별화하고, 기업 이미지와 아이덴티티를 수립시키기 위해 구매, 재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 다. 이러한 체험마케팅의 요소를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상설체험 프로그램에 적용하여 상설 체험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 과 같다. 낙안읍성만의 고유 지역전통문화를 체험프로그램으로 연계하 는 것은 지역적 전통문화를 홍보하고, 대중화시키는데 필요하 다. 체험마케팅의 요소 중 감성·인지·관계의 마케팅 전략 차원 에서 놀이와 교육이 결합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적인 체 험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며, 핵심적인 체험제공수단들을 활용 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향토문화의 특성을 살린 체험프로그램의 확대가 필요하며, 낙안읍성 민속마을 체험프로 그램의 공동 브랜딩에 있어서 순천시와 지역의 기업·관공서·전통예술단체가 통합적 연계시스템을 구축하여 기획·주관·협찬·후 원이 통합적으로 운영·관리되는 시스템으로 재정적 자립도 및 양질의 체험프로그램 제공에 기여할 수 있다. 낙안읍성 민속마 을 체험프로그램의 활성화를 위한 전략적 차원에 있어서 현재 행정적 관리·운영 시스템에서 벗어나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의 개발을 위한 전문적인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낙안읍성 민속마을 체험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킨 다면, 낙안읍성을 찾는 관광객과 체험프로그램 참여자들의 재 방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체험프로그램의 브랜 드 가치 형성은 지역문화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상품이 될 것이 다. 마지막으로 상설체험프로그램 연구에서 벗어나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관광자원들에 대한 좀 더 다각적이고 구체적인 연 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 논문은 부산지역의 무속의례인 ‘재수굿’의 구성과 연희양 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산지역은 세습무와 강신무가 혼재되 어 활동하고 있는 특별한 지역이다. 특히 불교의 세력이 왕성 한 지역으로 무속의례인 굿에 무불습합의 현상이 뚜렷하게 나 타나고 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을 가진 부산지역의 무속의례 중 가장 많이 연희되고 있는 재수굿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먼저 부산지역 무녀들의 재수굿을 상호 비교 분석하여 중부 지방의 대표적인 굿인 서울의 재수굿·황해도의 재수굿과 어떤 공통점이 있으며 부산지역에서만 나타나는 굿거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연희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 부산지역의 재수굿은 예전부터 전승되어 온 굿의 양상에서 벗어나 중부지방의 굿거리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천왕거리 등 몇 거리는 예전부터 전승되어 온 굿의 원류를 보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논문을 계기로 ‘부산 굿’에 많은 관심과 연구가 진행되었 으면 한다.
하(夏)나라와 상(商)나라는 중국 노예제도 사회의 초기 단계 이다. 이 시대는 문헌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라와 상나 라의 역사는 고고학적 성과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갑골문 은 고대 점복(占卜)의 유물로 상나라의 원시종교시대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 상황에서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신에게 점을 쳐 길흉을 결정하였다. 아울러 이 시대에서는 굿이 크게 성행하였으며 국가적 대사이었다. 특히 갑골문은 언어를 바탕으로 발전한 것으로 인류가 원시에서 문 명으로 나아가는 징표의 하나인 문자 산생의 주요한 자료이다. 이렇게 본다면 갑골문은 지식을 전파하기 위한 도서로 사용되 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나라의 왕실만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갑골문의 하나 하나는 정인(貞人)에 의한 상왕(商王)을 위해 점 친 결과였다. 갑골문은 상왕과 신(神)과 주고받는 교환부호(書 信)이며, 이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유용한 사실을 규명하는 좌표 의 하나이다. 본고는 그 속에서 춤꾼과 무당이 나타나는 문화 와 특징의 일면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의 만다라 개념과 종교에 서의 만다라의 개념을 비교 정리하고 양자의 내재적 가치와 치 유적 메카니즘을 탐구하였다. 만다라는 원래 종교적 개념으로서, 인도 라마교, 불교 밀종의 중요한 관상 법문이었다. 시대와 종교의 발전에 따라 만다라 역시 다양한 형태의 변천을 거치며 현대에는 주로 두루마리 그 림과 같은 불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종교적 개념에서 만다라는 어떤 형태의 만다라든지 보호, 응 집, 연결, 청결한 사상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동양적인 불교 회화 형식은 동양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철학사상을 담고 있으 며, 특히 현재 가장 널리 전해지고 있는 티베트 만다라는 그 형식적 구성에 있어 중국 본토의 도가 사상도 많이 내포하고 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만다라 양식 이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인류에게 공유되는 일종의 심령 적인 상징모형으로 집단 무의식의 원형임을 스스로 체험하고 임상적으로 증명했다. 그가 '만다라(mandala)'라는 용어를 택한 것은 동양의 라마교(lamaism)와 밀종 요가(tantric yoga)에서 제사권이나 마법의 형태로 명상에 도움이 되는 도구로 사용했 기 때문이다. 만다라 개념은 분석심리학에 인용돼 자성(自性)의 상징적 표 현이 됐다. 융은 만다라 양식의 문양을 끊임없이 그리면서 내 면의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무의식이 직관적이며 의식화되는 것 을 확인하였고, 자신의 심리적인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자기통합 과 자기치유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융은 만다라 그림이 현대미술치료에서 적용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 했다. 본고는 불교의 밀종 만다라를 연구 대상으로 하여 동양의 만다라 기원과 전파 발전을 살펴보고, 만다라 도식 형성을 통해 동양 문화의 내면을 분석하였다. 중국 도가사상을 융합한 티베 트의 만다라는 가장 아름다운 만다라 형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자성(self)의 최고 표현으로 손꼽히고 있 다. 동양의 종교 및 심리학 치료에서 만다라의 개념을 비교·분 석하여 융의 분석심리학에서의 동양의 문화에 대한 의의와 상 징성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만다라의 내면화 작용을 통해 서로 다른 두 분야에서의 치유 메카니즘을 분석했다. 본 논문 은 융의 심리학의 만다라와 종교의 만다라의 개념, 이론 및 비 교 정리를 바탕으로 동양문화의 시각에서 분석심리학에 관한 개념을 깊이 이해하고 설명함으로써, 분석심리학의 발전과 응 용에 긍정적인 의의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그 제자의 언행을 기록 한 유가 학파의 경전이다. 그 내용의 대강은 공자의 정치사상 과 도덕 관념 및 교육 원칙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논 어』는 중화민족 문화와 지혜의 결정체이다. 그러나 그 속에 내포된 교육적 내용은 창조적 발전과 혁신적 전환을 거쳐 왔 다. 이러한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대학생들의 사상문화 교육을 융합시키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논어』 에 내포된 ‘인애’ 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당대 대학생들의 우수 한 품격을 함양할 것이며, 아울러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양시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본문에서는 ‘인(仁)’이라는 글자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 ‘인(仁)’자에 대응하는 해석을 정 리하였다. 그리고 『논어』에 내포된 ‘인애’ 사상과 공자 ‘인애’ 사상의 현대적 가치를 분석하였다. 또한 『논어』의 ‘인애’ 사 상과 결합하여 현재의 중국 대학생들의 사상교육에 시사점을 제공하였다. 마지막으로 공자 ‘인애’ 사상이 사상교육에 이입되 는 경로에 관해 연구하였다.
전통 민화는 근, 현대 미술계에서 회화작품으로 인정받지 못 하고 공예미술의 일부로 인식되었다. 대부분의 작품에 서명이 없고 정형화된 밑그림을 바탕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내용은 주 로 민중의 염원을 담아 필요한 곳에 걸어두는 양식이었기에 더 욱 그러했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 민화는 1970년대 후반 현대 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던 미술계에서 존재감이 미약하였다. 1980년대 한국 사회는 역사 인식의 새로운 성찰을 통한 민족 적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권위주의에 대한 국민의 저항을 시 작으로 봉건사회의 해체가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으면서 미술계 에서도 전통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현대적인 화풍(畫風)을 수립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미술계 일부에서 한 국의 정신성과 조형성이 담겨있는 전통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 고 이 중 일부의 한국화 화가들은 전통 민화에 담긴 예술성을 발견하고 시대감각과 결합한 새로운 화풍을 개척하였다. 이 시기 전통 민화를 연구해서 작품을 제작한 대표적인 화가 로 박생광을 들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한국 미술계가 서양 미술에 경도되어 그들의 철학과 화풍을 추종할 때 박생광은 일 찍이 한국의 전통문화에 주목했다. 특히 시대감각이 뒤처졌다 고 터부시되던 전통 민화를 받아들여 현대적으로 변용한 독창 적인 화풍을 선보이며 한국 미술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박생광의 새로운 시도는 근대화 초기 유입된 일본 화풍과 서 양화풍으로 인해 흔들리던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정립시킬 수 있는 큰 역할을 하였다. 전통 민화를 차용하여 한국적인 화풍 을 제시한 박생광의 업적을 통해 로컬미술의 국제적 흐름 속에 한국미술이 세계에 진출할 가능성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전후 초현실주의 조각가의 대표격인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회 화, 조각 양식을 사실주의에서 초현실주의를 거쳐 마침내 인간 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로 돌아와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스타일 을 형성했다. 그는 조각의 기념성과 인간 자신의 존재의 비극 적 색채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과학기술이 날로 발전하는 세 상에서 인간 존재의 위대함과 보잘것없음 사이의 깊은 갈등을 보여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거대한 3차원 구조 시스템이 기본이다. 그중 하나는 속인 존재 그 자체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포함하지만 알려지지 않 은 자연 우주에 속하며, 또 하나는 자연 속에서 사람이 마주하 고 동시에 그 안에 참여하는 사회나 역사의 존재이다. 인간과 자연, 사회나 역사나 문화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일종의 근본 적인 존재다. 사회나 역사, 즉 인간은 자연 속에서 도구를 다루 고 이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조직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인간 존재의 형식적 연장이거나 창조하여 개발한 형식적 결과 이다. 인간 존재의 진실에 대한 혁신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존재의 자유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자코메티 가 그만의 방식이나 표현을 고집하는 이유를 진정으로 이해한 다면, 역사상 모든 진정한 예술가는 이런 현세의 고독과 인간 존재성의 본질적 표현을 추구하는 자유 사이에서 그 긴 밤처럼 고독하고 자연의 우주에 고립된 채 두려움, 불안, 초조함이 끊 이지 않는 추구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스케치와 사생작품은 화가의 생애와 예술이 축적된 증거이 며, 동시에 그의 예술적 변화와 작품의 구성 및 풍격적 특징을 연구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관산월(關山月)은 절충파(折衷 派) 신국화(新國畫)의 추종자로서, 항일전쟁 시대부터 예술계에 입문했다. 일개 미미한 예술 애호가로 출발했으나, 불과 몇 년 만에 독자적인 사고를 가지고 당대 예술의 주류 사상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예술가로 성장하였다. 그가 예술에 종사한 일 생의 여정을 살펴보면, 자신의 예술방향을 적기에 조정하고, 기 교의 표현수준과 내용을 향상시킨 사상성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그것은 그가 끊임없이 생활 깊이 파고들고, 자연속으로 들 어가 사생(寫生)하여, 그 안에서 대량의 스케치 작품을 그려낸 것에서 기인한다.
화가들은 현재 활동하면서 창작활동을 할 때 외부세계에 영 향을 받아 각기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화가들은 자신이 느낀 감정을 개성 있는 형식을 통해서 작품으로 표현해 야 한다. 중국 현대화가 오관중은 자신만의 형식미와 의경미를 창조하여 동양과 서양, 일반대중과 미술비평가에게서 모두 인 정을 받은 화가이다. 그는 동양예술의 내재된 사상을 연구한 후 그것을 기초로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동양과 서양의 예 술 융합의 접점(接點)을 찾아내었다. 1970년대 이전 오관중의 회화는 전반적으로 서양화의 사실적 인 경향을 띄지만, 1978년 개방정책과 수묵화가 성숙함에 따라 수묵화 필묵의 정취를 서양화에 표현하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 하여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창작하였는데, 본고에서는 이러한 오관중 회화의 특성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전 통 동양화를 현대 조형미가 풍부한 현대적 회화로 변화시켰다 는데 의의가 있다.
위ㆍ진 시기는 경제ㆍ정치뿐만이 아니라 서예(書藝)에서도 중요한 변혁기로 이전의 전서ㆍ예서ㆍ해서ㆍ장초ㆍ행서ㆍ초서 등 여러 서체를 활용하여 서예가들이 개인적으로 예술 풍격을 꽃피우는 양상을 나타냈다. 진나라 시기의 서예는 당시(唐詩)ㆍ 송사(宋詞)ㆍ원곡(元曲)이 나란히 문단에 이름을 날린 것처럼 후대에도 인정받았는데, 특히 ‘상운(尙韻)’의 서예로 대표되는 왕희지 서예는 우아하고 표일한 기운이 넘쳐 많은 이들의 사랑 을 받았다. 왕희지는 또한 광범위하게 한ㆍ위 이래 많은 서예작품에서 유익한 자양분을 얻고, 전대(前代)와 당대(當代)에 분산된 서예 작품에서의 창조적인 요소들을 집대성하여 정제과정을 거침으 로써 자신의 새로운 예술창조에 융합ㆍ통일하여 자아를 풍부하 게 하는 신서체(新書體)로의 변법(變法)에 성공함으로써 한 시 대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고질(古質)’ 서풍 대신 ‘금연(今姸)’ 서풍을 내세워 후대의 서예가들은 물론 한반도의 서예가들에게도 손길이 닿는 모범이 되었다. 본고는 왕희지의 생애ㆍ사상ㆍ학문 등을 살펴보고 서예의 눈 부신 성취와 함께 서체 변법의 성공과 그 서예가 후대 서예계 에 미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탐구하여 고질의 서풍에서 유미 한 서풍으로의 변법을 고찰하고, 서체의 변법은 중국뿐만 아니 라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그가 창출한 변법의 서예를 활용한 문인서예의 승화 와 함께 서예의 위상을 정립하고 미래의 지향할 바를 연구하고 자한다.
濰坊은 淸후기 金石學의 핵심지역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西 泉王石經은 皖派·浙派와 차별화된 ‘齊魯印派’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簠齋陳介祺의 5세손인 陳君藻(1901-1987)는 이를 계승해 서예와 전각으로 일가를 이루었는데, 본고에서는 그동안 전혀 논의되지 못했던 그의 전각을 심도있게 고찰해 다음과 같이 유 의미한 성과를 도출해 냈다. 첫째, 현존 印章은 대부분 1949-1966년 사이에 새긴 것으로, 명성에 비해 그 수량이 매우 적다. 그 주요 원인으로, (1) 사람 됨이 孤高超逸하여 俗人을 응대하지 않고, (2) 근엄하고 치밀해 전각을 새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3) 당시 사회가 혼란해 전 각을 중단하고 전란을 피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둘째, 淸말기 저명한 금석학자인 陳介祺의 후손으로, 그가 수 집한 자료와 ‘尙古’사상을 계승해 鍾鼎·陶文·封泥·瓦當등의 古 文字자료를 대거 전각에 활용했다. 또한 漢玉印에 대한 模仿 과 借鑒도 남달랐다. 셋째, 王石經은 古典派를 대표하는 인물로, 陳介祺의 ‘尙古’사 상을 계승해 ‘以書入印’을 실현했다. 陳君藻는 王石經과 그의 아들 王幼泉에게 전각을 직접 전수받아 그 맥을 이었다. 한편, 전각의 邊框에서 王石經은 깨끗하면서 완전하지만 陳君藻는 의 식적으로 깨진 흔적을 추구해 차별성을 드러냈다. 이상과 같이 陳君藻의 전각은 陳介祺와 王石經의 ‘尙古’적 印 學사상을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역대 문물자료에서 새로운 방식을 취하거나 江浙印派의 특징을 수용해 자신의 독창적인 전각특징을 선보이기도 했다.
본 논문은 청대 중기 양주팔괴(揚州팔괴)를 대표하며 시.서. 화 삼절로 유명한 판교 정섭(板橋鄭燮1693-1765) 서예의 핵 심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육분반서의 형성과정을 고찰하려 하였 다. 명말 청초 진보적 사인(士人)을 중심으로 싹튼 반권위적 사 상운동의 시대적 배경하에서 정섭의 인생 행로는 한마디로 지 극히 불우하고 비참하였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유가적 중화 미를 중심사상으로 삼았으나 양주지역을 중심으로 양주팔괴라 일컬어지는 혁신적인 개성주의 예술가들이 출현한 시기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괴(怪)의 미학을 추숭 하였으며 그 중심에 정섭이 활동했다. 정섭은 세상의 명예나 출세에 초연하여 평생 군자의 인품을 상징하는 전통적 소재에 심취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초일(超逸) 한 심미경계의 진솔함이 육분반서를 탄생시킨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정섭의 학서과정은 유년시기 당시 풍미했던 관각체인 해서를 주로 연마하였고 30대는 첩학(帖學)은 물론 비학(碑學) 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 행서에 예서 필의의 혼융을 시도하였 다. 40대 전후 회소. 안진경, 소식, 황정견, 고기패 등 명 서예가 들의 필적을 두루 연구하여 독창적인 육분반서를 창안하였다. 육분반서의 의미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전하는 바가 없고 후대인들의 다양한 해석만 있을 뿐이어서 의견 또한 분분하다. 그중 정섭 스스로 말한 한대(漢代)의 팔분서(八分書)에 해.행.초 를 결합하였다고 한 기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육분반 서는 팔분을 바탕으로 전.예.해.행초 등 각 서체를 두루 혼합하 였다는 뜻임과 동시에 하나의 상징적인 용어로 그 의미를 해석 하는 것이 가장 신빙성이 높은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정섭의 육분반서에 대한 평가는 청대 초기 의고주의(擬古主 義)와 대립하는 즉, 정감과 개성을 중시하는 `괴`의 발현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분석해 보면 그것은 단순한 기괴 함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고전의 연마를 통해 변용 시킨 서풍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섭의 육분반서에 대한 연구 는 현대 서예 창작에 대한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지금까지 문인화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영향으로 고고한 선비 의 남성적 문화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성리 학의 영향이 약화되고 문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짐으로써 문인 화는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고 또한 여성적 성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대적 관점에서 먼저 현대 한국문인화를 정의하고, 다음으로 동양의 전통적인 미학텍스트라 할 수 있는 사공도의 『이십사시품』의 ‘섬농’과 ‘기려’의 풍격을 기준으로 현대 한국 문인화의 여성적 풍격을 진단하였다. ‘섬농’의 풍격으로 문봉선의 <유수>와 홍석창의 <별꽃>을 분석하였고, ‘기려’의 풍격으로 이철규의 <상생>과 김순철의 <About wish>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다원화되고 기호화된 현대사회에서 한국 문인화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양에서 성행하였던 문인화는 문인의 정신을 일획성의 수묵 기법으로 표현하여 지금까지 우리의 미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학과 예술이 결합된 문인화는 한국의 중요한 문화적 도구로 앞으로 한국미술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