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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濰坊은 淸후기 金石學의 핵심지역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西 泉王石經은 皖派·浙派와 차별화된 ‘齊魯印派’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簠齋陳介祺의 5세손인 陳君藻(1901-1987)는 이를 계승해 서예와 전각으로 일가를 이루었는데, 본고에서는 그동안 전혀 논의되지 못했던 그의 전각을 심도있게 고찰해 다음과 같이 유 의미한 성과를 도출해 냈다. 첫째, 현존 印章은 대부분 1949-1966년 사이에 새긴 것으로, 명성에 비해 그 수량이 매우 적다. 그 주요 원인으로, (1) 사람 됨이 孤高超逸하여 俗人을 응대하지 않고, (2) 근엄하고 치밀해 전각을 새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3) 당시 사회가 혼란해 전 각을 중단하고 전란을 피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둘째, 淸말기 저명한 금석학자인 陳介祺의 후손으로, 그가 수 집한 자료와 ‘尙古’사상을 계승해 鍾鼎·陶文·封泥·瓦當등의 古 文字자료를 대거 전각에 활용했다. 또한 漢玉印에 대한 模仿 과 借鑒도 남달랐다. 셋째, 王石經은 古典派를 대표하는 인물로, 陳介祺의 ‘尙古’사 상을 계승해 ‘以書入印’을 실현했다. 陳君藻는 王石經과 그의 아들 王幼泉에게 전각을 직접 전수받아 그 맥을 이었다. 한편, 전각의 邊框에서 王石經은 깨끗하면서 완전하지만 陳君藻는 의 식적으로 깨진 흔적을 추구해 차별성을 드러냈다. 이상과 같이 陳君藻의 전각은 陳介祺와 王石經의 ‘尙古’적 印 學사상을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역대 문물자료에서 새로운 방식을 취하거나 江浙印派의 특징을 수용해 자신의 독창적인 전각특징을 선보이기도 했다.
        8,000원
        2.
        202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검여 유희강(1911-1976)은 북위 서풍으로 현대 한국서단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한 서예가이다. 그는 전각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의 전각작품을 심도있게 고찰한 논고는 전무한 상태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검여의 유품 중에 전해지는 인장 실물과 그의 서화작품에서 확인되는 낙관의 인영을 총 정리하고 제작연대와 작 품성향을 분석해 다음과 같은 유의미한 내용을 도출해냈다. 첫째, 검여가 직접 새긴 인장은 33점 23세트로, 1952-1966년 사이에 집중되며, 1962년 검여서원 개설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본고에서는 검여 서화작품에서 20점 14세트의 인장을 새롭게 찾아내어 정리했다. 둘째, 전기는 등석여와 조지겸을 중심으로 청대 서가들의 전각을 두루 섭렵해 전각을 본격적으로 학습했으며, 후기는 오창석의 각풍에 주로 심취하면서도 금문과 한인의 자형 결구에 등 석여의 필세를 가미해 중후한 자신의 각풍을 구사하고 있다. 셋째, 검여의 전각돌은 대부분 한국 해남석을 사용했고, 전각기 법은 청대 서예가의 영향을 받아 충도법을 주로 사용했다. 특히 후기에는 오창석의 각풍을 구사하면서 한인과 육조 해서의 강인 한 필선을 전각에도 도입해 중후한 전각 기법을 구사했다. 넷째, 지인이 검여에게 새겨 준 인장은 21점 11세트로, 1964-1973년 사이에 집중된다. 또한 대부분 인장 실물이 현재까지도 보존되어 있어 1964년 이후 우수서와 좌수서 서화작품 에서 모두 확인된다. 다섯째, 검여의 작품에서 자신이 새긴 1-3번 인장과 여초가 새긴 24-26번 인장, 철농이 새긴 27번 인장이 검여의 우수기와 좌수기의 작품에서 낙관인으로 자주 사용됐고, 석봉이 새긴 32번 인장과 석불이 새긴 33번 인장이 두인으로 종종 사용됐다.
        7,800원
        3.
        2019.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1999년 7월에 경기도 하남시의 이성산성(二聖山城)에서 출토된 목제 요고(要鼓)의 특징과 사용연대를 규명하기 위해 중국 요고의 연원과 변화양상을 심도 있게 고찰한 것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출토된 요고 실물 중에서 고려시대 이전에 속하는 것은 2010년 충남 연기군 나성리 유적에서 출토된 도제 요고와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목제 요고 2점뿐이다. 전자는 백제(5세기 후반)의 것으로 현재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실물자료이지만 그 형태적 특징이 초기형태의 요고와 상이하기 때문에 악기로 사용된 것인지에 대해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목제 요고의 제작연대에 대해 현재 고구려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는 2개의 견해가 존재한다. 목제 요고의 형태적 특징을 보면,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요고의 중간 부분이 가느다란 특징보다는 통일신라시대 감은사 사리기의 요고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성산성의 요고는 중국 북위시대(北魏: 386∼534) 에 속하는 산서(山西) 대동(大同) 운강석굴(雲岡石窟)의 요고, 하남(河 南) 공현석굴(鞏縣石窟)의 요고와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목제 요고의 제작연대를 고구려(475년 이후)까지 소급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현재 형태적인 특징만으로 이성산성의 요고를 통일신 라시대의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다만 현재 고구려와 관련된 요고 실물 자료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차후 삼국시대 요고에 관한 실물 자료들이 추가적으로 발견 되어 이에 관한 논의가 심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6,900원
        4.
        2018.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 1911-1976)은 한국 현대서단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일으킨 선구자이다. 서예작품에서 검여의 다양한 아호가 확인 되는데 선행연구에서는 서두에서 개괄적으로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논증을 진행하지 못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동안 발표된 도록의 작품을 바탕으로 검여의 아호와 당호를 재정리해 그 사용연대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먼저, 검여(劍如)란 아호는 1952-1976년 작품에서 모두 확인된다. 그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도인(道人), 거사(居士), 학인(學人), 산인(散人)을 추가한 경우도 일부 확인되고, 1968년 뇌출혈 이후에는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의미의 좌수(左手) 혹은 좌수서(左手書)를 추가했다. 둘째, 1964-1968년 작품에서 검(劍)자만 쓰거나 검(劍)자 뒤에 생 (生), 노(老), 도인(道人)을 추가한 경우도 일부 확인된다. 또한 불함도인 (不咸道人)은 1962-1964년, 시계외사(柴溪外史)는 1956-1963년, 청천 후인(菁川後人)은 1967-1968년의 작품에서 주로 확인된다. 셋째, 서실 관련 당호로 검여서소(劍如書巢)와 관훈서소(寬勳書巢)가 확인된다. 검여서소(劍如書巢)는 검여서루(劍如書樓), 검여서원(劍如書 院)이라고도 부르며, 검여가 1962년 11월에 관훈동 통문관 맞은편 건물에 검여서원(劍如書院)을 개원하면서부터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넷째, 거주지 관련 당호로 도곡장(道谷莊 혹은 道谷書室)과 시계고옥 (柴溪古屋)이 확인된다. 도곡장은 1960-1963년 작품에서 확인되며, 시계고옥은 1955년 작품에서만 확인된다. 또한 계우(桂寓 혹은 桂洞寓), 가회우사(嘉會寓舍), 경우(京寓) 등이 확인되는데, 관훈동 서실에서 인천 자택이 너무 멀어 1963-1964년 서울의 여관에 잠시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흠모하는 인물 관련 당호로 소완재(蘇阮齋)가 보이는데, 1965 년의 작품에서 처음 확인되며 1965-1976년에 주로 사용하고 있다. 소완 재(蘇阮齋) 뒤에 주(主), 주인(主人), 주인좌수(主人左手)를 추가하기도 했다. 여섯째, 성품 관련 당호로 몽학선관(夢鶴仙館) 혹은 몽학선헌(夢鶴仙軒) 이 확인되는데, 이는 검여의 태몽과 관련된 것이다. 전자는 1964-1976년 사이의 작품에서 주로 확인되고, 후자는 1974년 작품에서만 확인된다. 또 한 1975-1976년 작품에서 눌옹정(訥翁亭 혹은 訥翁亭主人)이란 당호가 확인된다. 이상과 같이 작품에 보이는 다양한 형태의 아호 용례를 구체적으로 논증해 보았다. 이를 통해 검여의 작품을 시기별로 감상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연대미상의 작품들에 대한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7,800원
        5.
        201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왕자오정 (王子午鼎)>은 기물의 모양이 독특하고 문양은 실랍법 (失 蠟法), 명문은 조충서 (鳥蟲書)를 사용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선행연구에서는 주로 무덤주인, 제작연대, 내용분석에 치중하였는데, 본 고에서는 이를 토대로 <왕자오정> 명문의 내용과 기물의 주인, 그리고 명문에 나타난 서체미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도출해 내었다. 첫째, <왕자오정> 본체의 명문에 영윤자경 (令尹子庚)이란 명칭을 통 해 왕자오 (王子午)가 영윤으로 있던 기원전 558~552년 사이에 열정 (列 鼎)을 주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 덮개에 보이는 붕 (倗)은 자 경과 자남 (子南)의 뒤를 이어 영윤 (令尹)이 된 위자붕 (蔿子馮: 楚叔之 孫倗)으로, 어떤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이 기물을 획득하여 덮개를 추가로 만들고, 기원전 548년에 죽으면서 자신의 무덤 (M2)에 부장하였을 것으 로 추정된다. 둘째, 춘추 5패 (覇) 중의 한사람인 초나라 장왕 (莊王)은 9정 (鼎)에 대한 고사로 유명하다. 그의 아들인 왕자오는 자신의 신분보다 한 단계 높은 7점의 열정을 주조하여 당시 초나라의 국력이 막강하였음을 고고 학적으로 증명하였다. 그러나 이후에 <왕자오정>과 같이 화려한 청동기 가 보이지 않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인문정치가 미약하였기 때문으로 추 측된다. 셋째, 조충서는 춘추전국시기에 장강 중하류 지역에서 크게 유행하여 중원 지역에까지 영향을 주었는데, 오 (吳), 월 (越), 초 (楚), 서 (徐), 증 (曾), 채 (蔡), 송 (宋) 등의 여러 제후국에서 주로 발견된다. 춘추시기에 서 조충서는 무기류에서 주로 확인되고 용기에는 극히 드물다. <왕자오 정>은 현재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조충서의 명문으로 그 사료적 가치 뿐만 아니라 서법예술에서도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춘추시기 초나라 문화권에서는 세로의 길이가 긴 장방형 결구를 선호하고 있다. <왕자오정>의 명문도 이러한 결구를 취하고 있는데, 본 체의 복부에는 조충서로 14행 84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고, 덮개에는 장 방형의 대전 (大篆)으로 4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 이 기물 본체는 왕자오가 만들고 덮개는 위자빙이 만들었기 때문이며, 덮개를 추가로 만드는 과정에서 좀 더 고풍적인 장방형의 전서를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왕자오정>은 동시기 청동예기 중에서 기물의 제조방법과 명문의 서사방식이 매우 빼어난 것으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최고의 걸작 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당시 초나라 왕실과 국제정세를 알 수 있는 청동기 유물이며 조충서의 초기적인 형태로 조충서의 형성과 변화양상 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6,000원
        6.
        2016.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서예는 함축적인 언어를 간결한 선으로 표현하는 매우 추상적인 시각 예술이다. 또한 知性과 感性을 겸비하고 미적인 ‘情’과 지적인 ‘理’가 상호 융합하여 표현된 心像의 예술로서 그 글씨를 보고 그 사람의 人性과 品格은 물론 도덕성까지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南田 元仲植 선생은 劍如 柳熙綱 선생의 高弟로 생전에 서예와 전각 작품을 비교적 많이 남겼다. 남전선생의 작품에 대해, 靑冥 任昌淳 선생은 “준마가 거침없이 들판을 내닫는 듯하다.”라 하였고, 如初 金膺顯 선 생은 “천성이 진중하여 溫故知新의 新을 창출해 내었다.”라 하였고, 嘉 軒 崔完秀 선생은 “韓中 서예를 관통하여 자기화하고 채색을 이용해 문자조형의 미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라고 하였다. 현재 남전 선생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 있어 그의 생애와 서법예술 을 구체적으로 논하는데 상당한 제약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주요 전시작품을 토대로 남전 선생의 학서과정과 작품성향을 살펴보고, 그 작품 연대를 체계적으로 구분해 보았다. 남전 선생의 예술세계를 인생에 일대 전환이 되는 사건과 거주지 이전 을 주요시점으로 2기 5단계로 구분하였다. 먼저 1990년 5월 서예에 전 념하기 위해 직장을 사직하고 강원도 인제 미산에 은거하는 시점을 중심 으로 크게 전후 2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學書期: 1941-1989)는 학창시절과 직장생활을 하던 시기로, 1971년에 제20회 국전 낙선전을 기준으로 修鍊期와 硏鑽期 2단계로 나 눌 수 있다. (1) 修鍊期(1941-1971)는 검여 선생에게 입문하여 서예를 도제식으로 사사받으며 안진경의 서풍을 충실히 임서하는 한편 검여선 생이 주로 공부하던 청대 서예가들과 추사의 글씨를 집중적으로 공부하 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硏鑽期(1972-1989)는 스승의 필법을 계 승하여 강인한 필치의 행서와 예서를 구사하는 한편 漢簡과 같이 새로 발견된 자료에 천착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는 의지도 확인할 수 있다. 후기(成熟期: 1990-2013)는 산수가 수려한 강원도에 기거하며 서예에 전념하던 시기로, 속초와 고성 죽정리로 이주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隱匿 期, 完熟期, 超逸期 3단계로 세분할 수 있다. (1) 隱匿期(1990-1998)는 인제 미산에 거주하던 시기이다. 1995년을 전후로 그 서풍에 변화가 있 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1995년부터 매년 개최한 ‘시계서회전’과 몇 번의 중국답사와 연관이 있을 듯하다. 특히 이 시기에는 중국에서 새로 발견된 자료에 대해 끊임없는 연찬을 하여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다. (2) 完熟期(1999-2004)는 속초에 거주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흰 화선지나 검은 먹보다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색지와 석채를 활용하여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 다. (3) 超逸記(2005-2013)는 고성 죽정리에 거주하던 시기이다. 이 시 기에는 임서보다 창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말년에 항암치료를 받으 면서 구도자와 같은 심정으로 작품에 몰입하였던 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남전 선생은 역대 한중서예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연마하 여 5체를 두루 섭렵하였다. 이 중에서 특히 族徽가 있는 금문과 漢簡을 이용한 작품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해서는 顔眞卿의 해서에 기초하여 寫經을 깊이 공부하였고, 행초는 왕희지 계통을 근간으로 米芾의 것을 소화하여 자신의 서풍을 선보이고 있다. 스승의 인품과 예술혼을 흠모하고 이를 후학들에게 전해주고자 무던히 애쓰던 남전선생의 人品高와 藝術香은 다시 후학들에게 이식되어 새 로운 형태로 면면히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7,700원
        7.
        2013.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선행연구의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본기물의 銘文에 대한 여 러 이견을 정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각도에서 글자를 隷定하고 현대어 역과 역주를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새로운 의견을 도 출해 내었다. 먼저, 기물의 명칭은 그동안 < 比鼎>․<鬲攸从鼎>․<鬲攸比鼎> ․ <鍋攸从鼎>․ < 攸从鼎>․ < 攸从鼎>․< 攸從鼎>․ < 傱鼎>․ < 从鼎>․< 攸比鼎>․< 攸比鼎>․<攸比鼎> 등과 같이 다양하 게 불러졌는데, 본고에서는 자형분석을 통해 < 攸比鼎>으로 비정하 였다. 둘째, 기물의 연대에 대해 선행연구에서는 대체로 厲王․宣王․西周후 기로 분류하고 있는데, 기물의 기형과 문양, 명문의 내용과 서풍을 토 대로 < 攸比鼎>을 西周후기 厲王 32년에 제작된 기물로 추정하였다. 셋째, ‘ ’자의 해석에도 ‘鬲’․‘鍋’․‘ ’․‘ ’․‘ ’․‘ ’ 등으로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였는데, 자형을 근거로 ‘ ’자로 예정하고, 商周시기 기 물과의 비교를 통해 이 글자가 ‘盉’의 初文임을 새롭게 증명해 내었다. 넷째, 比는 攸衛牧과의 소송에서 승소하고 이미 ‘攸’땅을 돌려받 았기 때문에 ‘ 攸比’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돌아 가신 할아버지 丁公과 아버지 惠公을 위한 존귀한 鼎을 만들게 되었 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皇祖는 商代의 유풍과 같이 干支를 사용하여 ‘丁公’이라 하고, 皇考는 周代의 풍습을 따라 ‘惠公’이라고 호칭하였다. 어쩌면 比의 조상은 상나라 계통으로 서주 초․중기에는 殷遺民으로 상의 풍습을 계승해 오다가 아버지 때에 와서 주나라 방식으로 시호를 바 꾸어 완전히 서주에 동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8,100원
        8.
        2012.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purposes of this study were to develop value-added sauce(ketchup) products with Korean advanced chile peppers (Capsicum annuum L.), determine their physicochemical characteristics, and conduct a sensory evaluation. American chile ketchup products were collected from American local favorites and analyzed based on their compositions. The Korean chile ketchup contained tomato paste(37.5%), Korean chile pepper(14.1%), sugar(14.8%), vinegar(14.1%), garlic(8.5%), herbs, plum extract, and oligosaccharide. Its physiochemical analysis showed: moisture 59.61±0.28%, crude protein 2.18±0.11%, crude lipid 1.99±0.04%, crude ash 9.26±0.13%, crude carbohydrate 26.97±0.48%, reducing sugar 35.19±0.97%, salt 3.04±0.04%, acidity 2.22±0.01%, pH 3.7±0.01, and °brix 36.3±0.14. Korean chile ketchup showed higher overall acceptability compared to American local favorite chile ketchup. This result suggests the possibility for replacing chile ketchup products imported from foreign countries(USA and Europe).
        4,000원
        9.
        2003.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모유에 존재하는 유지방구의 막을 구성하는 주된 당단백질인 하나인 lactadherin(과거에는 BA46로 일컬어짐)은 rotavirus에 의한 감염증상을 예방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retrovirus vector system을 이용하여 Chinese Hamster Ovary (CHO) 세포에 tetracycline에 의해 발현이 제어되는 promoter 하의 lactadherin 유전자를 전이 시킨 후 lactadherin이 tetracycline에 의해 발현이 유도되는지의 여부를 실험하였다. 먼저 기초 실험으로 대장균의 LacZ 유전자를 이용하여 tetracycline에 의한 유도 여부를 시험하였다. RevTet-On과 RevTRE-LacZ retrovirus를 동시감염시킨 NIH3T3는 doxycycline (tetracycline 유도체)에 의해 투여량에 비례하여 반응정도가 증가하는 양상을 나타내었으며 최대의 반응은 doxycycline 농도가 1 ㎍/ml 이상에서부터 관찰되었다. 이 예비실험의 결과를 바탕으로 RevTet-On과 RevTRE-Ltd retrovirus vectyor를 이용하여 사람의 lactadherin 유전자의 유도적 발현을 검정하였는데 CHO 세포에서 lactadherin 유전자의 유도적 발현을 RT-PCR 기법을 이용하여 확인하였다. 표적세포 내에서 외부에서 도입된 유전자가 지속적으로 발현될 경우 심각한 생리적 부작용을 야기시킨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본 실험의 결과는 유전자 치료와 형질전환동물의 생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4,000원
        12.
        1994.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칼슘이 존재하고 있을 때 분리대두단백질의 유화 안정에 대한 인산(Na_2HPO_4)과 구연산염(sodium citrate)의 효과를 염농도와 첨가순서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인산과 구연산염을 첨가하였을 때 단백질 용액의 pH는 증가하였으나 용해도는 감소하였다. 칼슘(CaCl_2)을 첨가하였을 때 에멀젼의 유화 안정도는 크게 감소하였으며, 3mM 이상의 농도에서 유화 안정도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CaCl_2가 5mM 존재하고 있을 때 Na_2HPO_4를 첨가하면 20mM 농도까지는 유화안정도가 증가하나 그 이상의 농도에서는 유화 안정도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Na_2HPO_4를 먼저 첨가한 후 CaCl_2를 가한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전체적으로 더 높은 유화 안정도를 보였다. CaCl_2의 존재하에서 구연산염을 첨가한 경우에도 인산염과 거의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본 연구에서는 분리대두단백질의 용해도는 유화 안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