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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田 元仲植 선생의 학서과정과 작품성향 고찰 KCI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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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예술연구 (문화와예술연구 (문화예술연구))
초록

서예는 함축적인 언어를 간결한 선으로 표현하는 매우 추상적인 시각 예술이다. 또한 知性과 感性을 겸비하고 미적인 ‘情’과 지적인 ‘理’가 상호 융합하여 표현된 心像의 예술로서 그 글씨를 보고 그 사람의 人性과 品格은 물론 도덕성까지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南田 元仲植 선생은 劍如 柳熙綱 선생의 高弟로 생전에 서예와 전각 작품을 비교적 많이 남겼다. 남전선생의 작품에 대해, 靑冥 任昌淳 선생은 “준마가 거침없이 들판을 내닫는 듯하다.”라 하였고, 如初 金膺顯 선 생은 “천성이 진중하여 溫故知新의 新을 창출해 내었다.”라 하였고, 嘉 軒 崔完秀 선생은 “韓中 서예를 관통하여 자기화하고 채색을 이용해 문자조형의 미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라고 하였다.
현재 남전 선생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 있어 그의 생애와 서법예술 을 구체적으로 논하는데 상당한 제약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주요 전시작품을 토대로 남전 선생의 학서과정과 작품성향을 살펴보고, 그 작품 연대를 체계적으로 구분해 보았다.
남전 선생의 예술세계를 인생에 일대 전환이 되는 사건과 거주지 이전 을 주요시점으로 2기 5단계로 구분하였다. 먼저 1990년 5월 서예에 전 념하기 위해 직장을 사직하고 강원도 인제 미산에 은거하는 시점을 중심 으로 크게 전후 2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學書期: 1941-1989)는 학창시절과 직장생활을 하던 시기로, 1971년에 제20회 국전 낙선전을 기준으로 修鍊期와 硏鑽期 2단계로 나 눌 수 있다. (1) 修鍊期(1941-1971)는 검여 선생에게 입문하여 서예를 도제식으로 사사받으며 안진경의 서풍을 충실히 임서하는 한편 검여선 생이 주로 공부하던 청대 서예가들과 추사의 글씨를 집중적으로 공부하 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硏鑽期(1972-1989)는 스승의 필법을 계 승하여 강인한 필치의 행서와 예서를 구사하는 한편 漢簡과 같이 새로 발견된 자료에 천착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는 의지도 확인할 수 있다.
후기(成熟期: 1990-2013)는 산수가 수려한 강원도에 기거하며 서예에 전념하던 시기로, 속초와 고성 죽정리로 이주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隱匿 期, 完熟期, 超逸期 3단계로 세분할 수 있다. (1) 隱匿期(1990-1998)는 인제 미산에 거주하던 시기이다. 1995년을 전후로 그 서풍에 변화가 있 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1995년부터 매년 개최한 ‘시계서회전’과 몇 번의 중국답사와 연관이 있을 듯하다. 특히 이 시기에는 중국에서 새로 발견된 자료에 대해 끊임없는 연찬을 하여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다. (2) 完熟期(1999-2004)는 속초에 거주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흰 화선지나 검은 먹보다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색지와 석채를 활용하여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 다. (3) 超逸記(2005-2013)는 고성 죽정리에 거주하던 시기이다. 이 시 기에는 임서보다 창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말년에 항암치료를 받으 면서 구도자와 같은 심정으로 작품에 몰입하였던 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남전 선생은 역대 한중서예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연마하 여 5체를 두루 섭렵하였다. 이 중에서 특히 族徽가 있는 금문과 漢簡을 이용한 작품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해서는 顔眞卿의 해서에 기초하여 寫經을 깊이 공부하였고, 행초는 왕희지 계통을 근간으로 米芾의 것을 소화하여 자신의 서풍을 선보이고 있다.
스승의 인품과 예술혼을 흠모하고 이를 후학들에게 전해주고자 무던히 애쓰던 남전선생의 人品高와 藝術香은 다시 후학들에게 이식되어 새 로운 형태로 면면히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书法是非常抽象的视觉艺术, 即以简洁的缐条表现出含蓄的言语。 而 且它兼备知性与感性的心像艺术, 就是相互融合表现出美感的 ‘情’ 与知 觉的 ‘理’。 看书法作品, 可以看出其人的品德。 南田元仲植先生是剑如柳 熙纲先生的高弟, 他生前创作的书法和篆刻作品很多。 关于南田先生的作 品, 靑冥任昌淳先生形容 “似乎骏马飞奔在野地上。”; 如初金膺应先生认 为 “天性镇重, 创出了温故知新的新。”; 嘉轩崔完秀先生主张南田先生 “贯通韩中书法艺术做出了自己的风格, 利用多样的色彩升华了文字造形 的艺术。”
目前, 我们正在收集南田先生的遗作, 还没有完全整理出来, 因此制约 了对其生涯与书法艺术的具体论述。 本文主要以展示作品为基础, 考察了 南田先生的学书过程和作品风格取向, 有计划地区分了其作品的年代。 本 文以南田先生经历的重大事件和居住移转的时间为标准, 将其书法艺术 分为2期5阶段。 首先, 在1990年5月, 为了专攻书法而辞职, 在江源道麟 蹄郡美山隐居的时点为中心, 分为前后两大期。
前期(学书期: 1941-1989)是南田先生读书和工作的时期, 在1971年 第20回国展的落选展以基準分为修鍊和硏钻两个阶段。(1) 修鍊阶段(1941 -1971)他以书艺徒弟的身份入剑如先生门下, 接受师事, 充分临习顔眞 卿的书作, 另外如同剑如先生一样主要集中于淸代书艺家们和秋史字体 的临习上。(2) 硏钻阶段(1972-1989)他继承了剑如先生的强韧笔法, 而且 加入了新发现的汉简等资料元素, 意欲开拓新的书法创作研究境地。
后期(成熟期: 1990-2013)是南田先生居住在江源道专攻书法的时期。 以向束草移住和向高城竹亭里移住的时点为基準, 细分为隐匿、 完熟、 超 逸三个段阶。(1) 隐匿阶段(1990-1998)是他在麟蹄美山居住的阶段。 1995年前后他的书风有了变化, 这与1995年开始每年开催的“柴溪书会展” 和几次实地考察中国有关。 尤其是在这个时期,他不间断地硏钻了中 国新发现的资料, 并活用于自己的作品里。 (2) 完熟阶段(1999-2004)是他 在束草居住时期。 在这个时期的作品中, 比起白色的宣纸或黑色的墨, 更 多地活用各样各色的色纸和石彩, 使作品的视觉效果发生了极大变化。 (3) 超逸阶段(2005-2013)是他在高城竹亭里居住的时期。 在这个时期的作 品中, 比起临书, 创作作品占据了大部分。 在末年接受抗癌治疗时期创作 的书法作品, 可以看出与求道者同样的精神世界。
上述所知, 南田先生对韩中历代书法资料进行了系统梳理, 准确地把握 书法五体, 尤其是在利用有族徽的金文和汉简的作品上崭露头角, 楷书在 顔眞卿楷书的基础上加入了更深的写经的工夫, 行草继承了王羲之一脉 传统, 又系统地吸收了米芾的书法风格, 最终展示出了自身的书法风格。

목차
I. 머리말
 II. 학서과정과 작품의 연대구분
  1. 생애와 서단활동
  2. 작품의 연대구분
 III. 각 시기별 주요작품과 그 성향
  1. 전기(學書記: 1941-1989): 학창시절과 직장생활 시기
  2. 후기(成熟期: 1990-2013): 산수가 수려한 강원도에서 서예에 전념하던 시기
 IV. 맺음말
 <참고문헌>
저자
  • 박재복(경동대학교) | 朴载福 Corresponding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