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와 전각 예술은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精髓)로서, 독특한 동양적 미학과 철학적 사상을 담고 있다. 현대 디자인 맥락에서 이들의 선 리듬, 공간 구성 및 문화적 상징성은 그래픽 디자인에 풍부한 창의적 자원을 제공한다. 본 논문은 서예와 전각 예술이 현대 디자인과 융합되는 과정을 분석하며, 그 미학 체계와 디자 인 변환 방법 및 혁신적 적용 방안을 탐구하였다. 서예와 전각의 미학적 특징을 바탕으로 현대 디자인에서의 변환 가치를 고찰한다. 이 과정에서 서예는 먹의 농담(濃淡), 리듬, 구조를 통해 디자인에 동적 시각 표현력을 부여하며, 전 각은 금석(金石)의 풍미, 인면(印面) 구성 및 허실(虛實) 대비를 통해 현대 디자인에 독특한 공간 미학을 도입한다. 이들의 결 합은 시각 언어의 표현 차원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문화적 깊이를 강화한다. 국내외 사례 분석을 통해 서예·전각 요소가 현대 브랜드 디자 인, 타이포그래피, 디지털 미디어 등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그 혁신 메커니즘을 규명한다. 예를 들어, 전각의 인장(印章) 형태 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하면서도 모던 미니멀리즘 디자인 트렌드와 조화를 이룬다. 서예의 필획(筆劃) 은 모션 타이포그래피(Motion Typography)에서 움직임의 서사 성(書寫性)을 강화하는 데 활용된다. 마지막으로, AI 생성 기술(Generative AI), 가상 현실(VR) 등 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서예와 전각 예술이 인터랙티브 디자인 (interactive design), 메타버스(metaverse) 공간 등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디자이너는 이러한 기회를 활 용하여 동양 미학의 현대적 해석을 추구하며, 더욱 풍부한 창조 적 영역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서예에서 가장 중요한 용필(用筆)에 관한 연구이 다. 연구 방법은 창작 과정의 경험을 바탕으로 붓의 사용법인 용필에 대한 개념과 용필의 분류, 이에 따르는 서예 중봉(中鋒) 과 측봉(側鋒)의 역사적 배경과 장봉‧노봉의 특징을 분석하였 다. 아울러 용필의 역학(力學)을 재고함으로써, 용필에 대한 고 인들의 입장과 필봉(筆锋)의 변화와 운용 방법의 이치를 심도 있게 고찰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올바른 용필법으로 임해야 하 는 서예의 가치를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용필은 글씨 쓰기의 설법(說法)으로 여기에는 기필(起筆)과 수필(收筆), 제필(提筆), 안필(按筆), 경중(輕重), 전절(轉折), 방 원(方園), 장봉(藏鋒), 노봉(露鋒), 중봉(中鋒), 측봉(側鋒) 등의 방법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들은 다루는 동작과 목적에서 모두 큰 차이를 보임을 밝혔다. 용필 역학의 재고는 글씨 쓰는 사람의 가지고 있는 힘을 붓을 통하여 최대한 효과적으로 전달 시키는가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서예에 있어서 역학적 요소는 서사 자세로서 몸의 중력 작용 점과 관련된 무게 중심의 문제와 집필(執筆)시 힘의 전달에 있 어서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문제로 운필 시 종이에 작용하는 붓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중봉과 측봉으로 필획(筆 劃)의 탄성을 유지하면서 힘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요약 될 수 있다.
본 연구는 미불의 <론서시(論書詩)>에 대한 심층적인 해석 을 통해 그 서예 이론과 서예 실천 간의 모순 현상을 밝혀내 고, 그 예술 관념의 심층적인 모순을 탐구하였다. 연구 과정에 서 미불의 시문, 서론 및 관련 역사 문헌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 미불은 진대 서예를 기반으로 한 서예 근본 이론을 구축 하면서도 무심코 이 미적 패러다임에 도전했음을 발견했다. 그 는 서예의 서정성을 주장하며 “의족(意足) 자족(自足)”의 자유 로운 표현을 강조했다. 또한 그의 현존하는 척독과 시서 원고 를 관찰했을 때, 그는 실제 서예 창작에서 ‘필필에 내력이 있는 (筆筆有來歷)’ 기술적 엄격성을 추구했으며, 더욱 수정적인 집 필 작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사례의 발견을 북 송시대의 서사 문화와 미적 패러다임 전환의 맥락에 넣어 해석 하였다. <추석등해대루작(中秋登海岱樓作)> 중 “서너 번 쓰는 중에 한두 글자가 좋다”는 자술과 <언화국사첩(彥和國士帖)>의 끝 글자 ‘이(耳)’자의 복필 흔적을 실증으로 삼아, 이는 법도를 개인 기법으로 내재화한 일련의 작성 방식을 구축하였다. 미불 의 ‘전일(顚逸)’ 행위 뒤에는 사실 그의 개성 해방과 예술적 본 성에 대한 이중 추구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았다. 본 문은 미불이 단순히 ‘상의(尙意)’로 분류하는 학계의 관점 을 교정할 것을 기대하며 아래의 연구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미불의 ‘광방(狂放)’이 법도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수 정성 글쓰기’를 메커니즘으로 엄격한 기법을 외재적 ‘광방’의 형 태 속에 숨겨 “외적으로는 제멋대로, 내적으로는 엄정함”이 공 존하는 모순성을 나타낸다. 둘째, 이러한 모순은 단순히 미학의 병치(竝置)에 그치지 않 고, 북송시대 사람들의 생활 상태와 시대 조건이 불러일으킨 근원적인 힘에서 비롯되었다. 신구 질서의 변화에 직면하여, 작 성자는 규범과 자아의 당김에 끊임없이 ‘수정’함으로써 전통적인 법도를 개인이 즉시 조정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전환했다. 셋째, 이를 통해 중국 서예의 전환기인 송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른바 ‘상법(尙法)’에서 ‘상의(尙意)’로 의 전환은 본질적으로 법도의 내재화와 개인화로 비법도(非法 度)의 해소입니다. 송나라 사람들의 ‘의(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수정성(修正 性)’ 운동이 전제 조건이 되었다. 본문의 이론적 기여는 검증 가능한 서예 미세한 흔적과 텍스트 증거를 통해 미불의 자아의 식과 전통 법도의 모순을 그의 법도에서의 자기표현을 찾는 복 잡한 체계임을 설명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송대 서예의 전환 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여, 우리가 이 시대의 서예 예술의 발전과 변혁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본 연구는 서예의 문화적 다양성과 예술치유 기능에 대한 국 내외 선행연구를 고찰하고, 한국과 중국의 서예 전통을 비교문화 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예는 동아시아 전통문화에서 문자예술을 넘어서 철학, 수행, 정서 표현의 통합적 예술로 기능해 왔으며, 최근 예술치유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재조 명되고 있다. 문헌 연구 방법을 통해 한국과 중국에서 발표된 서 예 관련 예술치유 사례 및 이론을 분석하고, 두 문화권이 서예를 통해 실현하는 치유기제를 비교하였다. 분석 결과, 한국의 서예 는 감정 표현, 몰입, 자아 통합을 중심으로 정서 해소형 치유기 제를 형성하고 있으며, 중국의 서예는 정신 수양, 감정 통제, 내 면 조화를 기반으로 하는 수행 중심의 치유기제로 나타났다. 이 러한 차이는 서예 기반 예술치유 프로그램 설계에 있어 문화적 맥락과 수용성, 표현 방식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예술치유 이론에 있어 문화적 다양성과 비교문화적 접근의 중요성을 제시하며, 서예가 현대 심리사회적 맥락에서도 효과적인 치유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漢)나라 시기의 유교 사상은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지배사 회에 이념적 영향력을 끼치지 못해 불교와 도교 사상의 도전에 직면해 왔다. 이후 수・당(隋・唐)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과거 (科舉)제도가 발전하게 되면서 유교의 경세치용(經世致用) 사상 이 정치에 전면적으로 제도화되어 권위가 확립되었다. 이러한 큰 변혁은 서예술과도 깊은 상호작용을 이루게 되었다. 안진경 (顔真卿) 해서는 정연하고 웅장한 스타일과 강직하고 위엄 있는 기백으로 한(漢)나라 시대 동중서(董仲舒)가 주창한 ‘대일통(大 一統)’ 학설과 긴밀히 연결된다. 예를 들면, 현재 전하는 안해 (顏楷)의 진적(真跡)인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이다. 본 연구 는 <대당중흥송>를 대상으로 미학적 분석과 철학적 해석의 방 법을 이용하여 그 뒤에 내포된 당나라 유가사상이 서예예술에 미치는 심오한 영향과 형성과정을 깊이 탐구하고자 한다. <대당중흥송>은 자획(字劃)이 단정하고 당당하며 기세가 웅 장하여 유교가 추구하는 중용(中庸)정신과 평화롭고 강직한 미 학 이념과 매우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서예와 전통문 화 가치관의 깊은 융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 다. 본 연구는 유학 사상이 서예에 미치는 영향과 <대당중흥 송>의 미학적 분석 및 심미적 가치의 세차원 경로를 통해 <대 당중흥송>에서 유학 사상과 서예 예술의 상생(相生) 관계를 탐 구하고자 한다.
본 고는 송대 문인들의 선진시기 금문과 각독에 대한 인식에 대한 논고이다. 특히 양송(兩宋)시대에 금석(金石) 연구가 활발 해지면서 송나라 사람들은 수많은 새로운 금석 자료들과 직면 하였다. 그러나 금문과 고문, 대전과 주문, 소전, 주조된 금문과 새긴 금문, 과두문 등 문자학과 서예에 관련된 내용들이 혼용 되거나 잘못 인식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이처럼 혼용되거나 잘 못 인식된 내용을 명확 하게 구분하고 이들의 차이점을 정리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 러므로 예를 들어 금문의 주조하거나 새기는 과정과 특징을 기 술하였고, 각독을 서사하는 방식과 특징을 명확하게 구분 정리 하였다. 또한 고문(古文)과 금문, 전서, 대전, 주문, 소전 등의 서체에 대한 용어를 명확하게 제시하여 송대 문인들의 인식하 는 애용을 비판적으로 조망하였다. 결과적으로 본 논문은 서사 재료의 관점에서 시작하여 송나 라 사람들의 금문 필법에 대한 평가 기준과 미적 취향을 살펴 보고 이를 복원하여 판각된 고서에서 금문의 미학 원리와 규칙 및 미학적 함의 등을 심도 있게 탐구하였다.
본 연구는 청말민초(清末民初) 서예가 야오망푸(姚茫父)의 비 파(碑派) 서예에서의 예술적 성취와 혁신을 탐구하였다. 야오망 푸는 명청시대 귀주(貴州) 문화 발전의 배경 속에서 독학과 깊이 있는 모사를 통해 한비(漢碑)와 예서(隸書) 등 전통 예술의 정수 를 융합하여며 독창적인 서예 스타일을 점차 형성해 나갔다. 그 의 서예 작품은 전서와과 예서의 필법을 핵심으로 하여 짙은 금 석(金石)의 기운과 소박하고도 안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독 특한 시대적 운치를 담고 있다. 야오망푸의 서예는 단순히 기법 에 그치지 않고, 작품을 통해 사회 변혁에 대한 이해와 응답을 표현하여 문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드러냈다. 예술적 교류 측면에 서는 제백석(齊白石, 1863-1957), 천스쩡(陳師曾) 등 동시대 유 명 인사들과의 협력과 공명을 통해 그의 서예 예술 스타일은 더 욱 다채로워졌다. 또한, 야오망푸는 서예, 전각(篆刻), 그리고 새 김 동각(銅刻) 예술을 결합하며 비파 서예의 표현 방식을 확장시 켰다. 이를 통해 그는 전통과 현대의 독특한 융합 및 탐구 정신 을 구현하였다. 비록 질병에 시달렸지만,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 았으며, 굴하지 않는 의지로 풍부한 예술 유산을 남겼다. 야오망 푸의 작품은 비파 서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 니라 후대에 전통의 계승과 혁신이라는 귀중한 모범을 제공하였 다.
평보 서희환은 한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판본 고체형식에 서 미학성을 발견하고 한자 서예의 원리와 자신의 창작 경험을 바탕으로 고풍스러우면서도 질박한, 이른바 ‘평보체’를 이루었 다. 본 논문에서 평보 서희환의 한글서예를 조형예술의 보편적 조형 요소와 조형 원리를 적용하여 서희환 한글서예의 성취와 한계를 고찰하였다. 본론에서는 조형예술에 속하는 서예를 한글과 한자의 구조와 서예 양식 등을 조형예술의 원리에 적용하여 한글서예의 장점 과 한계를 고찰하였다. 한글과 한자의 구조적 차이로 인하여 서희환이 모범으로 적용하려고 했던 한자서예 양식을 한글서예 에 적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는 부분이 있음을 밝혔다. 서희환 역시 서예의 유일한 조형언어인 필획(筆劃)만으로는 스스로 이상 으로 삼은 한글서예를 완성하기 어려움을 인지하고, 유동(流動) 하는 형태적 공간의 조형을 택하지 않고, 필획의 질감을 위주로 한 정지된 공간 조형을 구축하였다. 그래서인지 서희환은 “절제 된 단순성과 소박한 무욕 내지는 순수성을 추구하여 획이나 필 력의 개념도 힘의 논리가 아닌 질김의 논리로 이해하려고 하였 다. 그래서 오히려 한글서예의 독창성을 이루었을 소지가 있다. 서희환의 한글서예는 결국 線的서예에서 點과 面의 조합으 로 구축한 ‘고정적’인 성질로 진행되었다. 또 서희환이 추구한 절제된 단순성과 소박한 무욕, 질김, 수졸의 천진이나 질박의 원시성, 무념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거친 질감을 내는, 금 석기 있는 선질과 평면적 구조로 진행되었다고 여겨진다.
서예는 중국 문화의 영향 관계 속에서 문자의 아름다움을 예 술적으로 표현한, 중국 고유의 전통 예술이다1). 한자는 노동하 는 사람들이 사물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으로 시작하여 수천 년 에 걸쳐 오늘날의 문자로 발전하였다. 현대의 서예는 글을 쓰 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중국 전통문화를 전파하는 중요한 수단 이기도 하다.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중국 전통문 화의 계승과 보급은 새로운 도전과 기회에 직면하고 있다. 오 늘날 디지털 문화 전달자로서 비디오 게임은 문화 전파를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제공한다. 컴퓨터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대 중화에 따라 비디오 게임도 발전하고 성장하며 점차 글로벌 문 화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논문은 비디오 게임 디자인에 서 서예의 요소를 분석하고자 한다. 새로운 서예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서예 교육에 미치는 영향과 현대 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 시대에 서예과 비디오 게임을 통합하는 방법을 분석한다. 본 논문에서는 첫째, 문헌 연구 방법을 통해 서예와 비디오 게 임의 개념과 그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둘째, 서예와 비 디오 게임의 결합이 서예의 보급과 서예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검은신화(오공)”과 “왕자영요”라는 두 비디오 게임의 사례 연 구 방법을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서예는 중국 민족의 오랜 전통 계승되어 온 예술 형식 중 하 나로, 한자 서예 예술의 집약적인 표현이다. 서법은 복잡하고 다양하며 변화무쌍한 예술로써 중국 전통 문화의 사상과 관념 을 깊이 융합하여 독특한 민족적 멋을 보여 주고 있다. 고대부 터 현재까지 서예는 수많은 문인과 묵객들의 사랑을 받았을 뿐 만 아니라, 제왕 및 백성들로부터 널리 애호되어 왔다. 한자가 지닌 상형성과 추상성의 특징은 서예 창작에 끊임없는 영감과 창의성을 제공해 준다. 저수량(褚遂良)의 해서(楷書)스타일을 탐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저 수량 해서 스타일의 서학과정과 각 시기의 서예 특징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저체(褚體) 해서의 연습과 창작에 대 한 지침을 제공한다. 본 논문을 저수량 서예의 정수를 파악함으로써 학습자가 그 기법을 더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자신의 서예 수준을 향상시키 고자 한다. 이는 해서 학습자에게 특히 중요하며, 특히 현재 서 예 교육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저수량 해 서 필법의 다양한 변화와 뛰어난 필치는 초심자에게 이상적인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저수량의 창작 스타일과 작품을 깊 이 이해해야만 그 속에 담긴 서예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저수량의 서학과정과 서예사적 의의를 연구 함으로써 초당 해서 체계의 구성 과정과 그 배후의 문화적 원 인을 더 정확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이는 서예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서예 교육 이론 과 실천에도 유익한 참고자료를 제공한다.
손중산(孫中山)의 서예 작품의 대필 현상은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대필자로는 전동(田 桐), 전항(田桓) 형제 및 왕정위(汪精衛) 등이 있다. 손문이라고 낙관되어 있는 서예인 <동덕서보사(同德書報社)>, <음화식덕 (飲和食德)>와 같은 먹으로 쓴 흔적은 손중산의 작품과 상기에 서 언급한 대필자들의 작품과 확연 다르다. 남궁체(南宮體)의 서예가 뚜렷한 이들 작품을 다시 분석하여 필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과정 및 탐구할 필요한 실정이다.. 상기 언급한 작품의 시대와 서예적 특징을 기반으로 단서는 모두 악주(鄂州)의 장유쇠(張裕釗) 가문을 가르키고 있다. 장유 쇠는 청나라 말엽 중국서단에서 명성이 높았고, 대표작으로는 <중수남국현학기(重修南宫县学记)>비 등이 있으며, 후세 사람 들로부터 남궁체(南宮體)라 불리웠다. 장씨 후손 중 서예에 가 장 뛰어난 사람은 손자 장효이(张孝栘)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일찍 일본 유학 중 동맹회(同盟会)에 가입하여 학생운동의 중 요한 인물로서, 진보적인 간행물을 창간하고 여러 잡지와 서적 간행물 제목을 쓰기도 하였다. 장효이는 귀국 후 줄곧 손중산 을 따라 혁명 활동을 하였으며, 민국 정부의 사법 계통에서 중 요한 직책을 맡았다. 악주 장씨 서예 가문과 많은 제자 중 장효이의 생애와 필사 의 특징은 상기 서술한 대필 작품의 시대적 배경 및 서법 스타 일과 맞물려 있으며, 이런 계열의 작품들이 모두 장효이의 대 필소서라 추정된다. 이 연구는 민국 서예사 연구를 풍부하게 하고, 장효이 서예 연구의 공백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되며, 이론 및 실제적 의의가 있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은 신라 말기 문학 서예 역사 철학 등에서 매우 뛰어난 인물로 특히 우리나라 서예사(書藝史)에 큰 족적(足跡)을 남긴 거목이다. 최치원에 대한 시 문학과 사 상. 정치. 철학. 종교 등에 대해 많은 연구논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는 서예의 대표작으로 <진감선사비(眞鑑禪師碑)>와 『숭 복사비(崇福寺碑)』를 남겼고 시문집으로 『계원필경집(桂苑筆 耕集)』과 『고운집(孤雲集)』등 많은 문헌을 남겼다. 이처럼 그는 인문학적으로 깊고 넓은 학풍과 문학적인 정감을 갖춘 문 장가이며 사상가이며 또한 서예가이다. 본 고에서 논하는 <진감선사비>는 885년에서 887년에 세워 졌다. 본 비문은 학문적 자료 가치가 매우 높으며, 특히 한국의 불교사는 물론 한문학사. 서예사. 사상사에 연구 대상이 되었 다. 더욱 <진감선사비>의 독창적인 전액(篆額)은 수준 높은 경 지를 보여준다. 이는 당(唐)나라에 머물렀던 17년 동안 모든 서 예를 섭렵한 결정체라고 할 것이다. 아울러 <진감선사비> 전 액에서 <설문해자>와 <한간>, <삼체석경>의 조형을 벗어나 오늘날 서예의 한 장르를 창조했다. 이미 1200여년전에 외형적 문자 조형에 깊은 조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특한 최 치원 체라고 할 수 있는 혁신적인 서풍을 탄생시킨 것에 큰 의 의를 둔다 그러므로 본 고에서는 서예가로서의 최치원의 <진감선사비> 를 분석하여 서예미를 논하였다.
본 연구는 중국 노인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서예 활동을 통해 정신건강과 생활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였다. 분 석은 IBM SPSS Statistics 25를 이용하였다. 먼저 실험 전 실 험군과 대조군의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 독립 표본 t-검증을 실 시하였다. 다음으로, 실험 후 실험군과 대조군의 차이를 살펴보 기위해 독립 표본 t-test를 실시하였다. 검증결과 서예 활동은 노년층 고혈압에 정적인의 영향을 미치고, 노년층 고혈압 환자 는 서예 활동을 통해 우울증, 스트레스, 삶의 만족도에 정적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서예 활동의 영향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고령 고혈압 환자에게 여가 활동을 위한 방법을 제공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이번 연구를 통해서 서예활동이 노년층 고 혈압 환자의 우울증 완화, 삶의 스트레스 완화, 삶의 만족도 등 구조적 관계를 확인시켜 정성적 연구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하 였다. 더불어 서예 활동의 역할을 이해하면 고혈압 환자의 노 년 생활에 의미 있는 여가 활동을 제공하고 더 많은 고혈압 환 자가 심리적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 라 사료된다.
조선 후기 연행사는 청나라 문인들과 필담을 하거나 간찰을 보냈으며, 서예 비첩을 감장(鑒藏)하거나 금석학 교류활동을 활 발히 전개하였다. 본 연구는 이계 홍양호 『이계집』과 관암 홍경모 『관암전서』·『운석외사』에 기록된 서신, 제발, 서문 등을 확인하여 청대 문인 대구형, 기윤, 섭지섭과의 서예 교류 를 주요 연구 범위로 설정하였다. 위 문집과 『동문신교척독 책』과 『두남신교첩』자료를 활용하여 저서, 비첩, 서찰 교류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또한 홍양호와 홍경모의 학서 소양, 금석 고증 능력, 비첩 감장 원칙을 논술 및 분석하여 교류 의의를 도출하였다. 홍씨 가문은 양국 문인의 가족적인 서예 교류의 대표적 사례이자 견고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진행된 교류를 의 미한다. 양국의 문인들은 필담을 통해 고금의 서예, 금석 학술 에 대해 전면적이고 심도 있는 토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다 층적인 문화교류는 한·중 서예문화의 발전을 촉진하였다는 점 에서 그 의의가 있다.
청말 사상가들은 시대성을 강조하게 되면 민족 전통성이 소 홀하게 되고, 민족성을 강조하면 시대적인 진보사조(進步思潮) 에 뒤떨어지게 되는 곤감성(困感性)을 고민하였다. 여기서 시대 성이란 바로 서학(西學) 수용의 자세에 수반되는 문제이며, 민 족성이란 중국 전통성을 고수하는 데 따르는 문제일 것이다. 강유위(康有爲: 1858-1927)는 청나라 말기 아편전쟁(鴉片戰 爭)과 남경조약(南京條約)·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亂)을 거치 며 중국 역사상 가장 큰 국가적 위기에 태어난 인물이다. 이때 는 서양문명과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이 교차하는 시기이다. 이 러한 시기에 여러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따라 중국의 주권이 크게 제약되고 영토까지 분할되는 가운데 지식인들이 새로운 개혁사상을 일으켰다. 본 논문은 기존의 강유위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그가 남긴 자취에 대한 문예 미학 사상을 포괄적으로 연구하고자 노력하 였다. 이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바탕이 되는 것은 그가 세계를 인식하는 세계관인 변법(變法)적 사유의 형이상학적 틀이다. 첫 째는 원기론(元氣論), 둘째는 변법(變法), 셋째는 비학존중(碑學 尊重)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서예 예술이 크게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조하였다. 특히 강유위의 미학 사상은 서예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금 석학 중심의 비학 미학 사상과 존비경첩(尊碑輕帖)의 서예 미 학 사상을 전개하였다. 그는 첩학(帖學)의 음유미(陰柔美)에 대 비해 비(碑)의 양강미(陽剛美)를 강조한다. 강유위가 양강미를 선도한 이유는 생명미가 깃든 약동적이며 역동적인 아름다움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유위는 기존 서예풍조의 하나인 첩학(帖學) 위주의 서예는 온화하고 세련되어 있지만 연미하여 힘이 없는 것이 마치 정치 적으로 대국의 힘이 없는 것과 암암리에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에 강유위는 정치적으로 변해야 된다는 이론을 문예 미 학 사상에 적용하여 양강미를 담은 비학(碑學)을 추숭하였다. 이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서예의 발전은 고대부터 현재까 지 언제나 근본적으로 사회적 변화에 기초함을 알 수 있었다.
서예의 미적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변화에 기초한 다. 현대의 서예는 현상적 측면에서 볼 때 창작의 영역에서 전 통과 다른 풍모와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인간만의 영역 이었던 서예 예술의 탄생 과정이 AI 서예 로봇이 등장하면서 혼란을 맞고 있다. 현재로선 AI의 서예 창작을 예술로 인정하 기 힘든 분위기지만 급변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미래의 서예 에 대한 추세를 예측하기 힘든 실정이다. 21세기의 서예는 현 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학은 물론 사회학적 요소가 매우 강조되고 있다. 이는 과거의 전통 서예와 다른 형식의 미학적 메커니즘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 대 서예의 가장 큰 특징은 다원적 시각화 경향이다. 이 이면에 는 서예 미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 및 새로운 창작의 형식과 관 련된 문제들이 존재한다. 현대 서예의 창작적 성향은 과거보다 더욱 실험적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에 서예의 심미적 가치 기준이나 그 미학적 특색을 가름하기는 쉽지 않다. 본고에서는 현대 서예의 변화 과정을 좀 더 체계적으로 규명 하기 위해 서예학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제시하 였다. 현대 서예의 발전과 변화는 결코 서예 예술 내부의 자율 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새로운 미적 패러다임의 발생은 필연적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예술사회학의 각도에서 탐구해 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현대성이란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현 대의 서예가 고대와 다른 새로운 미학적 규범의 전환을 의미한 다. 다만 오늘날 서예의 현대화 과정에서 대두되는 시각적 경 향은 이미 많은 대중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서예계의 공통된 신념으로 정착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
본고에서는 『홍루몽』 텍스트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역대 명화와 서예 작품들이 해 당 공간에서 어떠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곳에 사는 인물들과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 는지 분석함으로써 『홍루몽』 속 전통 서화 예술의 의의와 가치를 고찰해 보고자 하 였다. 『홍루몽』에서 서화는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 보여주고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하 나의 중요한 서사적 장치로 운용되었다. 처음에는 서화의 자체적인 형상으로 독자에 게 다가가나 어느 순간 공간 속의 인물과 어우러지면서 모종의 의미체계로 독자에게 수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홍루몽』의 서화 예술은 단순히 그림이나 글씨라고 하는 개별적인 소품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인물 감상 및 주제의 차원으로 확장되어 소설의 경계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켜 주었다고 하겠다.
본 논문은 역대 서론에 나타난 품평의 개념과 그 내면의 미학적 가치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역대 서가 들은 서예를 품평하는데 격조, 자연, 대비 등의 방법을 통 해 간결한 언어와 생동감 있는 비유법을 많이 사용하며,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서예적 특징에 대해 깊이 묘사하고 있어 많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품평의 등급에서는 먼저 ‘능품(能品)’은 필묵의 기교, 필법, 묵법, 결구, 장법 등이 정통함을 뜻하지만 ‘묘품(妙品)’ 보다 서가의 독창적인 개성미, 풍격미, 자연미, 정서미가 확연하지 않으며, ‘신품(神品)’과 비교해 ‘능품’의 서가는 천부 적인 재능이 부족하고 ‘일품(逸品)’에 비해 정취가 부족함을 뜻한다. ‘일품’과 ‘신품’은 모두 서예의 가장 높은 등급으로써 ‘일 (逸)’은 비교적 노장철학의 무위(無爲) 사상과 가까우며, ‘신(神)’은 비교적 공자철학의 중화사상에 가깝다. 기법 중시의 ‘신품’은 마음이 하고자한 바,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고, 기법을 초월하는 ‘일품’은 자연의 묘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일품과 신품’은 모두 서예의 최고 형식이지만 ‘신품’이 ‘일품’ 보다 낮다고 보는 이유는, 인위적인 흔적이 그래도 존재하기 때문에 아래에 두고 평가한 것이다.
송대는 중국 문화사의 중요한 시기로 간주되어 서민문화(市 井文化)가 발달하고 도시가 번영하며, 정치하고 우아한 사대부 문화나 아문화(雅文化)가 전면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전통 유학의 사상은 끊임없이 갱신되었고, 아울러 이학의 흥기와 발전을 촉진시켰다. 이 시기의 문예 미학 이론과 품평 기준도 시대의 미적 가치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다. 특히 송대의 서예은 위진 시대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의 법도와 풍격을 계승하여 오대십국 시기의 기법을 전수받아 전인처럼 엄격한 법도를 추구하지 않고, 서예의 의취(意趣)와 예술 풍격이 다양성을 더욱 중시하여, 유학의 체계까지 포함하였다. 단순한 윤리적 의미를 우주 본체론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주관적 표현을 강조하고 예술을 인간 정신의 품격을 상징으로 삼아 서예의 문화적 품격을 강화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열었다. 전통 서론에서 서예 품평의 이면에는 옛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숨어있는데, 그중에서도 주요 참여자인 고대 문인사대부 집단의 사고방식, 가치관념, 심미적 취지 등, 특히 유가 사상의 영향을 받은 아정한(雅正) 사회관은 서예가의 작품과 개성적인 풍격에 대한 품평에 자연스럽게 작용한다. 송대의 문인사대부들은 서화이론에 탁월한 공헌을 하여 원시적인 유가의 윤리정신에 입각하여 개인의 생명체험과 예술실천을 결합하였다. ‘문도통일(文道統一)’ ‘기도병진(技道並進)’ 등을 추구하는데, 이 시기의 주류인 ‘상의(尚意)’ 서풍도 유학의 심성 화와 ‘내성지학(內聖之學)’이 문예의 심미에 영향을 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송대의 서예 풍격과 이론의 품평 사조는 시종 송대의 이학 관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이학(理學) 관점에 따라 서예에 대해 품평하고 윤 리적 의의를 지나치게 중시하면서 서예의 예술적 가치를 소홀히 한다면 서예가의 정서와 상상의 자유의 표현을 저해될 수밖에 없고, 이는 서예의 예술성에 대한 무시이자 훼손이다.
서예는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여타 예술 분야보다 매우 발 전되었다. 특히 서예교육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세련된 인 격’ 실현이라는 전통적 사상과 현대적 의미를 달성하는데 효능 이 있다는 생각으로, 정부에서는 초ㆍ중ㆍ고등 교육과정에 서 예를 필수과목으로 선정하여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실 천하는 과정에서 ‘기능’을 위주로 한 서사교육 방식으로 진행되 면서 ‘예술교육(美育)’의 핵심인 상상력과 창의성이 결여되면서 학생들의 ‘흥미성’을 잃고 있다. 이렇게 흥미 없는 기술 반복 교육은 ‘美育’의 궁극적 목적인 ‘세련된 인격’ 완성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다양한 심미전달 방법을 통하여 흥미 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을 계발하여 ‘美育’이 ‘흥미’를 통해서 ‘도 덕’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중국 전통 사상인 ‘善美一體’를 실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