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ty over Dokdo in the official maps of Japan since the Edo period
독도는 지리적으로 울릉도의 부속섬과 같은 위치에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에서도 독도를 울릉도에 부속된 섬으로 보았다. 1690년대 안용복사건은 일본 에도막부에서 울릉도 도해금지령을 내림으로써 종결되었는데, 그 당시에 돗토리번에서 에도막부에 제출한 지도가 「소곡 이병위 제출 죽도지회도」(小谷伊兵衛差出候竹嶋之絵図)이다. 이 지도는 독도가 일본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판단할 때 사용된 지도이다.
그 후 명치시대에 들어 안용복사건 당시 조선・일본 양국간 외교교섭 결과를 한 번 더 확인하여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땅임을 확인하고 공시한 자료가 1877년의 『태정관지령』이다. 일본측에서는 『태정관지령』의 마쓰시마(松島)는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2006년에 공개된 부속지도 「기죽도약도」에 의해 『태정관지령』의 마쓰시마(松島)는 독도 라는 사실이 명명백백해졌다.
광복 후 일본을 점령통치한 연합국최고사령부는 관할지역과 어선조업구역 양면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영토로부터 분리하였는데, 관할지역에 있어서는 연합국최고사령부훈령 (SCAPIN) 제677호로, 독도를 일본영토에서 제외하고, 「SCAP관할지역도」로써 독도가 남한지역에 포함됨을 분명히 하였다. 1948년 8월, 그 관할지역 그대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민국에 인계됨으로써 독도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일본을 연합국의 점령통치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한 샌프란시스코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연합국과 일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독도문제는 다시 불거져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샌프란시스코조약은 독도에 대한 언급이 없이 체결되었으나, 최근에 공개된 「일본영역 참고도」는 당시에 일본이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스스로 인정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독도를 한국 땅으로 그린 「일본영역참고도」를 샌프란시스코조약 조인 전에 일본정부에서 제작하여, 샌프란시스코조약 비준과정에서 동 조약의 부속지도로 썼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고, 국제법적으로 증거능력 · 증명력이 큰 공적인 지도를 대상으로 분석하면, 에도시대부터 샌프란시스코조약 때까지, 일본의 독도 영유권 판정과 관련된 4개의 공적 지도는 모두 독도가 한국 땅임을 표기하고 있거나, 독도가 한국 땅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중 연합국점령통치 기간 중의 「SCAP관할지역도」를 제외하고, 3개의 지도는 일본정부 스스로 제작한 지도로서, 일본정부 스스로 3번이나 독도를 한국 땅으로 인정한 근거가 된다.
Dokdo is the attached island of Ulleungdo geographically. Historically, Japanese also regarded Dokdo as an island attached to Ulleungdo. In the 1690s, the An Yongbok Incident ended with Japanese prohibition of fishing in Ulleungdo by the Japanese Edo shogunate. Kotani Ihei Map was submitted to the Edo Shogunate from Tottori Prefecture at that time to explain that Dokdo was not Japanese territory.
Since then, after confirming the result of diplomatic negoti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at the time of the An Yongbok Incident, Japanese Meiji Government confirmed that Ulleungdo and Dokdo were Chosun's territory once again by 1877’s Dajyoukan directive. Japan claims that Matsushima in Dajyoukan Directive is not Dokdo. However, the fact that Matsushima in Dajyoukan Directive is Dokdo has been clarified by the Isotakeshima Map, subsidiary map of Dajyoukan Directive, which was published in 2006.
The Supreme Command of the Allied Powers, which ruled Japan after the end of World War II, separated Ulleungdo and Dokdo from Japanese territory on both sides of the jurisdictional area and the fishing area. In August 1948, the Dokdo issue was concluded, as it was transferred to the Republic of Korea along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owever, in the process of drafting the peace treaty to make Japan independent from the occupation of the Allied Powers, Dokdo issue came out again due to the interests of the Allied Powers and Japan. At the end of the twists and turns,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was concluded without reference to Dokdo, but the recently published Japanese Territory References Map shows that Japan had recognized Korea's sovereignty over Dokdo at that time. Japanese government had produced a map of ‘Dokdo in Korea’ before signing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and it was used as an attached map to the treaty in ratifying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Four Japanese official maps related to Japan's sovereignty over Dokdo from the Edo period to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are showing Dokdo as a Korean territory or intended to show Dokdo as a Korean territory. Of these, except for the SCAP Map during the Allied Power's occupation, the three maps proves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has recognized Dokdo as Korean terri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