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Religious Characteristics of the Grand Shrine at Nam Mountain
남산대신궁의 종교적 성격에 관한 연구
일제 식민지기 국가신도에 관한 연구는 식민지 조선에 일본의 국가종 교를 이식하려는 조선총독부의 종교정책과 이로 인해 민족 정체성의 말살을 강요당한 피식민지인이라는 이항적 대립구조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국가신도는 메이지 유신 이래 황실신도와 신사신도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국가제사 체제로서, 국가신도와 관련된 식민주체들은 그들의 다양한 목적을 위헌 경함의 장(場) 속에서 소위 국가신도의 이식을 실천 해왔으며, 그들 개개인의 실천적 행위는 ‘국가신도의 강제’라는 단일한 사회적 행위로 환원될 수 없다.
일제식민지기 신사(神社)는 크게 일본거류민에 의해 창건된 거류민신사와 식민정권에 의해 건립된 관공립신사로 나눌 수 있다. 한일병합 이후 식민정권에 의해 건립된 조선의 총진수인 조선신궁 및 각 지방의 총 진수로 건립된 지방신사가 황민화를 위한 신사참배와 국가제사에 적극적으로 이용된 반면, 일본거류민에 의해 창건된 거류민신사는 대부분 한일병합 이전 거류민의 종교적 필요성에 의해 건립되었다. 아오이(靑井 哲人)에 따르면, 조선 내 일본거류민신사는 1915년까지 총 25개, 요배소가 총 6개 창건되었으며, 요배소를 포함한 총 31개 신사 중 4곳을 제외 한 27개의 신사가 아마테라스를 제신으로 봉제했다.
본고에서는 일본거류민과 거류민봉제신사와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하여, 한성부에서 최초로 건립된 거류민봉제신사 남산대신궁을 연구대상으로, 한성부 내의 일본거류민의 사회적․종교적 삶을 재조명하면서 그들에게 있어 신사의 함의를 파악하고자 한다. 또한 남산대신궁의 제신 및 제사의 민간종교적 성격, 즉 신사제사의 세시풍속․일생통과의례 및 영적 인위안을 위한 의례적 측면의 고찰을 통해 국가신도의 종교성을 살펴 보고자 한다. 이 연구는 그동안 황민화 수단의 사회적 기관으로 일축되어온 국가신도의 제신(祭神) 및 제사의 종교성을 고찰하고, 기존에 논의 되어온 국가신도의 단일성을 넘어 국가신도에 대한 일본거류민의 계층적 경험의 다양성을 제시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日帝植民地期に国家神道に関する研究は植民地時代の朝鮮に日本の国家宗 教を移植しようとする朝鮮総督府の宗教政策と、これによって民族アイデン ティティの抹殺を強要された被植民地人であるという二項的対立構造に焦点が 合わされてきた。 国家神道は明治維新の以来、皇室神道と神社神道が結合して 作られた国家祭祀の体制として、国家神道と関連された植民地の主体は彼らの 多様な目的を向けた競合の場の中で、いわゆる国家神道の移植を実践してきた 。 そして彼らの一人ひとりの実践的行為は'国家神道の強制'という単一な社会 的行為に還元できない。
日帝植民地期の神社は大きく日本居留民によって創建された居留民奉齊神 社と植民政権によって建立された官公立神社に分けることができる。 韓日併合 の以後、植民政権によって建立された朝鮮の総鎭守である朝鮮神宮及び各地方 の総鎮守として創建された地方神社が皇民化のための神社参拝と国家祭祀に積極的に利用されたが、日本居留民によって創建された居留民奉齊神社はほとん ど韓日併合の以前、居留民の宗教的必要性によって創立された。 靑井哲人によ ると、1915年まで朝鮮に創建された居留民奉齊神社は總25個、遙拜所は總6個 であり、遙拜所を含めた31ヶ所の神社のなかで4ヶ所を除いた27ヶ所の神社が アマテラスを祭神として奉齊した。
本稿では日本居留民と居留民奉齊神社との関係を把握するために、漢城府 で最初に建てられた居留民奉齊神社である南山大神宮を研究対象に、漢城府に 住んだ日本居留民の社会的・宗教的生活を再照明し、彼らにとって神社の含意 を把握しようとする。 また、南山大神宮の祭神や祭祀の民間宗教的性格、すな わち神社祭祀の歳時風俗⋅一生通過儀礼及び霊的な慰安のための儀礼的側面の 考察を通じて、国家神道の宗教性を考察しようとする。 この研究は今まで皇民 化の手段の社会的機関として一蹴されてきた国家神道の祭神及び祭祀の宗教性 を考察して、既存に議論されてきた国家神道の単一性を越えて国家神道に対す る日本居留民の階層的経験の多様性を提示することにその意義がある
Previous researches of State Shinto in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have been focused on binary oppositions, colonizer who forced to implant Japanese national religion and the colonized who was compelled to be Japanization. State Shinto is the system of national rite that was recreated by combining Imperial Household Shinto and Shrine Shinto; while religious mission was given to 13 sects of new religion(Kyoha Shinto) rooted in Shrine Shinto. As a result, under the name of State Shinto, various colonial subjects, who get involved in Imperial Household Shinto, Shrine Shinto and Kyoha Shinto, had attended religious colonialization, sometimes contending or negotiating for their aims; so, their practices could not be reduced to singular practice for religious colonization. Shinto shrines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re largely divided into a shrine founded by Japanese residents in Joseon and a shrine founded by government and public institutions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Joseon shrine founded by Joseon Governor-General, a representative shrine in Joseon, and representative shrines in each region after the Japanese seizure of Korea were aggressively used as the shrine’s visit for making subjects of the Japanese emperor and as rites for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while shrines founded by Japanese residents in Joseon were usually for satisfying their religious needs. According to Aoi(靑井哲 人), shrines founded by Japanese residents in Joseon were total 25 and small shrines only for the prayer were total 6 before 1915; in addition, 27 shrines among total 31 dedicated to Amateras(天照大神). Research object of this paper is the grand shrine at Nam mountain, which was first founded in Hanseong(old place name of Seoul). Research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onsider the implication of shinto shrine, shedding new light on social and religious life of Japanese residents in Joseon in order to identify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ese residents in Hanseong and shrines founded by them. In addition, this paper will illustrate religious characteristics of State Shinto through examining the god and rites of the grand shrine at Nam mountain such as seasonal customs, the rite of the life passage in Shinto and rites for spiritual consolation. This study might be important in shedding new light on religious faith of gods and rites in State Shinto, which has been only considered as a social institute for making subjects of the Japanese emperor, and in delineating diversity of religious experience with State Shinto depending on the social class of Japanese residents in Jo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