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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문화와 사상 KCI 등재 East Asian Culture and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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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Vol. 2 (2017년 2월) 8

1.
2017.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primitive meaning of naturalsubstance (质)is the "pawn", originnally it meant sacrifices pledged to ghosts and gods during the sacred ceremony, and it changed into hostage(人质) or mortgagedproperty (物质) which expressed the good faith, sincerity, honesty in political activities, so it finally became a synonym for good faith. The original meaning of Ornamentation referred to Tattoo, then changed to ornamentation, further meant the beautiful form of any objects and things. Ornamentation and Substance are duly blended, which means a gentleman should wear the same fine costumes as he has good character when he joins the social ritual. Duly blended ornamentation and substance which is used in the field of art aesthetics, means that the form and the material must be blended harmoniously, good and precious materials has to corporate with exquisite forms. On the other hand, the thick and common materials also should have suitable 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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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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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첫 문장에 “대학의 도는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있으며, 백성을 친애하는데 있으며, 지선(至善)에 머무름에 있다.”고 했다. 여기서 ‘친(親)’을 ‘신 (新)’으로 해석한 주희와 그대로 ‘친’이라 해석해야 한다는 양명의 주장이 충돌 했다. ‘친민’이란 단어를 갖고도 충분히 해석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개념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희 본인은 순수한 의미의 ‘새로움’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낳을 수 있는 문제는 많다. ‘신’이란 옛것을 개혁하고 새것에 따른다는 ‘혁구종신(革舊從新)’이다. 『대학』에서는 명덕을 밝힌 사람이 뒤에 그러지 못한 사람을 가르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이 ‘개과천선(改過遷善)’ 의 ‘신’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위정자들의 개인적 욕망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신민’이 이용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 지도자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될 수 있다. 새로운 변화를 명분으로 지도자 개인의 욕망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명덕’을 위한 교화의 방법이 문제가 된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힘으로 교화할 수 있는 자각능력[良知]와 자정능력[良能]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신민’보다는 왕양명의 ‘친민(親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명명덕’은 본체를 확립한 것을 말하며, ‘친민’은 확립된 본체를 발휘하는 것이다. 양명의 ‘친민론’은 서민을 사랑하고 서민 편에서 이해한다. 대인만이 ‘명명덕’의 주체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주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친민’은 구체적으로 ‘제가(齊 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또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이 나오는데, 이를 ‘효제자(孝悌 慈)’와 ‘혈구지도(絜矩之道)’로 풀어간 다산의 해석이 재밌다. 『대학』에서 말하는 화해공동체 윤리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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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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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기에 ‘변자’로 지칭되는 많은 논객들이 각국을 편력하면서 유세에 종사하였다. 당시 권력계층은 이들을 후대하여 자신의 정략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본래 어느 학파에 국한되었된 것이 아니며, 당시 유가와 묵가처럼 학파로서 존재하였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당시의 제자백가는 넓은 의미에서 모두 명가로 포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묵가와 명가의 사상적 특색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가? 이 글은 묵변에 보이는 명가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묵변의 명제 분석을 통해서 양가의 차별성과 사상사적 의미를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묵가는 변설의 개념 분석과 목적을 설정하고 제가를 비판하였다. 물론 이것은 자신들의 정치 윤리적 관점을 선양하고 이와 관련하여 타가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후기 묵가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묵변에는 대량의 명제가 제시되고 있는데 상당 부분이 제가비판과 관련이 있으며, 자신의 명실론 체계와 밀접한 관계에서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당시 순자가 제가를 논리적으로 분류하여 비판한 것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다만 묵경에서 제시되는 명제는 순자보다 분류 면에서는 애매한 경우가 많으나, 내용 면에서 본다면 훨씬 다양하고 논리적으로도 더욱 치밀한 것으로 보인다. 묵변에서 이상과 같이 분석과 인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실천적인 묵자의 명실론에 기본적 토대를 둘 수 있었고, 둘째로 제가와의 변설과 상호 비판을 통하여 그들의 합리적 요소를 수용하여 보충⋅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셋째로 전국 시대에 자연과학과 기술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이 보다 발달하였다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묵변에서 모든 개념의 정의와 설명에 있어서 경험세계의 객관적인 사례를 제시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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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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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기 철학의 특징은 기의 활동운화로 세계와 인간 및 사회를 인식하는 데 있다. ‘신기’ 개념을 중심으로 한 우주론과 인식론이 『기측체의』에서 이미 체계화되었고, 『기학』에 이르러서는 ‘운화’로 집약되었다. 기학은 기존 학문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하나는 역대 학문의 발전과정으로 심학과 리학을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학문을 준거로 전대 학문의 허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윤리강상 같은 도덕적, 보편적 가치를 계승하고, 경험과 지식의 축적으로 역사가 발전한다는 사고가 여기에 밑받침하고 있다. 역사의 발전이란 곧 인식의 확장과 학문의 발달을 의미한다. 기학의 한 축은 서양 근대 과학이다. 그러나 기륜과 섭동, 심 중심의 인체관은 서양 우주론과 의학적 성과를 기학의 관점에서 독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용은 기계론적 세계관에 구별되는 최한기 철학의 특성이다. 세계가 운화기의 활동양상이라는 점에서 문명 간의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소통을 통해 상생하는 대동의 세계야말로 그가 구상한 새로운 세계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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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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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풍수를 현대 도시에 응용하기 위해 경상남도 창원시를 대상으로 양기풍수적 입장에서의 해석과 아울러 풍수적 측면에서의 개발과 보존에 대한 제언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의 경남도청을 귀납적 방법으로 혈장으로 선정 한 풍수 분석결과 거시적 맥세의 흐름은 좌우변화와 상하변화를 거친 생룡이지만 개장과 천심의 조건을 불분명하다. 사신사는 풍수적으로 이상적은 모습이 아니지만 혈장 주위에 존재하고 있으며, 물의 흐름은 각지에서 발원한 물이 창원천과 남천으로 유입되며, 이 2개의 하천이 바다로 유입하기전 합류함 으로써 합수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또한 수구처에 한문(춘산, 뒷산)과 수구막이산(부엉산)이 존재함으로써 수구가 좁아야 하며 수구막이가 있어야 한다는 풍수적 조건과 합치한다. 창원의 개발과 보존에 대한 풍수적 제언으로서는 창원은 분지 형태의 장풍 국이므로 공기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단점이 있는데 이는 하천의 정비와 녹지 시설의 확충, 대기오염원의 차단 등이 필요하다. 득수의 측면에서는 한문과 수구막이 산에 대한 보존이 필요하며, 주산에 대한 개발행위 억제, 주산인 봉림산을 중심으로 한 형국의 보완 및 회룡고조형에 대한 형국의 보완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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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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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강원도 양양군 남애리 어촌의 풍수적 입지분석을 통하여 내륙지와 비교시 바닷가에서 만 적용 가능한 새로운 풍수 이론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풍수 이론의 구조은 일시에 논리적 체계를 갖추었다고 하기 보다는 시대의 변화, 그리고 각 지역의 기후나 지리적 여건 등의 자연환경 요소에 맞도록 진화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 중에서도 위치의 중요성이 가장 강조되고 있는데 내륙지의 촌락과 바닷가의 어촌은 풍수적 입지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지역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산과 물을 중심으로 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내륙지 풍수이론을 한쪽 면이 개방된 바닷가에도 그대로 적용 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풍수이론이 체계화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에 대한 풍수이론은 내륙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아주 미흡할 뿐만 아니라 연구성과 역시 부족하다. 따라서 고전풍수에서 부적합 땅으로 평가받고 있는 어촌지역이 현대에 와서도 부적합 땅인가? 그리고 고전풍수이론이 현재에도 유효한 것인가? 하는 바닷가 지역만의 풍수논리 정립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본 연구를 통하여 바닷가만의 풍수적 특징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동안 풍수적으로 소외되었던 바닷가 지역에 대하여도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풍수이론을 제시함으로써 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확대하고 어촌개발시에도 건물과 도로건설 등의 공간배치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지리관이자 경험과학인 풍수이론이 내륙지 뿐만 아니라 바닷가 지역으로 까지 확대하여 현실적응력 있는 유용한 학문으로 발전하는데 기초를 제공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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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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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반도 통일 이후의 수도로서 개성권에 대한 타당성을 풍수적으로 논의하는데 있다. 즉 남북한 중간에 위치하면서 용수가 풍부하고 물류가 편리하면서 통일한반도의 상징성이 깊은 古都개성과 그 인근지 역에 대한 풍수적 타당성을 검토하였다. 또한 개성은 물론 고려왕조와 조선왕조에 의해 천도(遷都) 후보지로 거론되었던, 불일사(佛日寺), 마하갑 (摩河岬), 장원정(長源亭), 백마산(白馬山) 우소궁(右蘇宮), 중흥궐(重興闕)과 흥왕사(興王寺) 이궁(離宮)을 그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위의 장소들을 검토 해 본 결과, 불일사 일대는 수몰되었고, 마하갑(摩河岬)은 국면이 작은데다 그 분지에 영통사(靈通寺)가 복원되었으며, 장원정(長源亭)은 조강(祖 江)까지의 거리가 불과 8백여 미터로 국면이 작고, 백마산(白馬山) 우소궁 (右蘇宮) 역시 당국(堂局)이 협소하며, 중흥궐(重興闕)은 개성권을 벗어나 서쪽으로 치우쳤다. 고려의 성왕(聖王)으로 일컬어지던 문종(文宗)이 실제적인 도읍지로서의 기능을 부여한 만큼, 심혈을 기울여 창건한 흥왕사(興 王寺)는, 사신사(四神砂)와 조산(朝山)이 잘 갖추어져 있고 그 남쪽으로 도시가 발전할 충분한 공간이 있어 입지가 유망해 보이는 바, 실제 현장답사를 통해 통일수도 입지로서의 가능성과 타당성을 심도 있게 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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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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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기 국가신도에 관한 연구는 식민지 조선에 일본의 국가종 교를 이식하려는 조선총독부의 종교정책과 이로 인해 민족 정체성의 말살을 강요당한 피식민지인이라는 이항적 대립구조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국가신도는 메이지 유신 이래 황실신도와 신사신도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국가제사 체제로서, 국가신도와 관련된 식민주체들은 그들의 다양한 목적을 위헌 경함의 장(場) 속에서 소위 국가신도의 이식을 실천 해왔으며, 그들 개개인의 실천적 행위는 ‘국가신도의 강제’라는 단일한 사회적 행위로 환원될 수 없다. 일제식민지기 신사(神社)는 크게 일본거류민에 의해 창건된 거류민신사와 식민정권에 의해 건립된 관공립신사로 나눌 수 있다. 한일병합 이후 식민정권에 의해 건립된 조선의 총진수인 조선신궁 및 각 지방의 총 진수로 건립된 지방신사가 황민화를 위한 신사참배와 국가제사에 적극적으로 이용된 반면, 일본거류민에 의해 창건된 거류민신사는 대부분 한일병합 이전 거류민의 종교적 필요성에 의해 건립되었다. 아오이(靑井 哲人)에 따르면, 조선 내 일본거류민신사는 1915년까지 총 25개, 요배소가 총 6개 창건되었으며, 요배소를 포함한 총 31개 신사 중 4곳을 제외 한 27개의 신사가 아마테라스를 제신으로 봉제했다. 본고에서는 일본거류민과 거류민봉제신사와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하여, 한성부에서 최초로 건립된 거류민봉제신사 남산대신궁을 연구대상으로, 한성부 내의 일본거류민의 사회적․종교적 삶을 재조명하면서 그들에게 있어 신사의 함의를 파악하고자 한다. 또한 남산대신궁의 제신 및 제사의 민간종교적 성격, 즉 신사제사의 세시풍속․일생통과의례 및 영적 인위안을 위한 의례적 측면의 고찰을 통해 국가신도의 종교성을 살펴 보고자 한다. 이 연구는 그동안 황민화 수단의 사회적 기관으로 일축되어온 국가신도의 제신(祭神) 및 제사의 종교성을 고찰하고, 기존에 논의 되어온 국가신도의 단일성을 넘어 국가신도에 대한 일본거류민의 계층적 경험의 다양성을 제시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6,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