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일배법(加一倍法)의 원리인 이진법 수리체계로 ‘무극(0)-태극(1)-음양(2)-사 상(4)-팔괘(8)’라는 괘의 생성원리를 도식화한 그림이 복희팔괘차서도이다. 복희팔괘차서도를 형성한 가일배법의 원리에 의해 괘효(卦爻)에 라이프니츠의 이진법 수리를 적용하면 괘를 이루는 각각의 효(爻)는 위치에 따라 저마다 다른 크기의 수(數)를 갖게 된다. 효가 수리(數理)를 갖게 되면 추상적 논리와 현 학적 언변이 아닌 수의 크기에 따른 사실에 근거한 논리적인 해석을 기할 수 있는 장점을 얻게 된다. 본 논고는 효위(爻位)에 따라 서로 작용력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진법 수리를 적용함으로써 사시순환의 원리를 표상한 12벽 괘(辟卦)에 수를 배정하고, 이를 12地支에 활용하였다. 또한 사시순환에 따른 인간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담은 12運星에 수리가 적용된 12벽괘를 활용하여 각 단계마다 기세(氣勢)의 크기를 정함으로써 보다 과학적이고 논리 적인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문자의 뜻에 구속되어 추상적인 통변(通辯)으로 흐를 수 있는 역(易)의 해석에 괘상의 수리화 모형을 활용한다면 보다 정확한 간명(看命)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된다.
중국 맹인 점복인들 사이에서 구전되던 비결을 정리한 단건업(段建業)의 ‘맹파명리(盲派命理)’로 사주를 간명(看命)할 때 자평명리(子平命理)의 생극제화(生剋制化)와 맹인들의 실전 기법을 가미한 이론체계를 활용한다. 그리고 음양의 관계처럼 대대적(對待的)이며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체용(體用)의 일반적인 이론을 사주팔자를 해석하는 기본 방법으로 사용한다. 이 글에서는 맹파명리의 이법(理法)으로 변화된 체(體)와 용(用)에 관한 명리적 이해를 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맹파명리의 체와 용은 십신(十神) 의 관점에서 주체와 목적으로 구분한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공구(工具)로써 사용하는 것을 체라 하고, 내가 추구하고 목적으로 하는 것을 용이라 한다. 체에는 일주(日主), 인성(印星), 록신(祿神), 비겁(比劫)이 있고, 용에는 재성(財星), 관성(官星)이 있으며 식신(食神)과 상관(傷官)은 상황에 따라 체나 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팔자에서의 체와 용은 상호 작용하거나 관련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체는 본체(本體)이고 용은 공용(功用)이기 때문이다. 맹파명리에서 체는 인간의 본체를 나타내므로 체가 손상되면 명주(命主)에 게 문제가 나타남을 표시한다. 관찰한 체의 모습으로 건강을 볼 수 있고, 용의 상황으로 재관(財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더불어 운(運)과의 변화를 분석하여 미래 길흉(吉凶)에 대한 적합한 행동 방안을 모색하도록 한다. 이러한 이유로 맹파명리에서는 체와 용의 관계를 사주 판단의 중요 요소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傳)의 형태를 띠고 있는 「우인효자군만전」의 시대적 배경은 고려말이며, 저자는 여말선초 성리학자 및 정치인으로 잘 알려진 권근이다. 그는 증조부 권보와 조부 권준이 편찬한 『효행록』에 후서와 주해를 쓴 것으로 보아 유학 에 대한 박식함과 효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우인효자군만전」보다 앞서 발행되었던 설화형태의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 「효선편」에서 표현하는 효개념은 「우인효자군만전」에서 표현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이라고 보여진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효를 서술함에 있어 설화와 전에서 표현하는 양상에서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며, 이를 위해 구성적, 기술적, 논리적인 측면에서 검토할 예정이다. 효행설화에서 효를 부각시켰던 방법은 주로 중국인을 각색한 주인공이 연로하거나 병약한 부모님을 대상으로 효행하는 서정적 분위기와 효행은 곧 복을 받는다는 기복적인 내용이었다. 반면 「우인효자군만전」에서는 주인공 설정의 탈중국화, 효행대상자인 부모 가 노약하거나 병약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탈서정화, 효행을 하면 복을 받거나 하늘의 도움을 받는다는 기복적인 결론에서 벗어난 탈기복화로 기술(記述) 적 표현이 발전되었으며, 이에 따라 효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우인효자군만전」에서 언급한 불효 10죄가 『효경』, 『명심보감』, 『맹자』 그리고 고려율을 적용했을 때 명백한 불효임을 논리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는 효를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척도구로 불효를 사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고려말 「우인효자군만전」에 시도된 새로운 양상들은 조선시대 『삼강행실도』의 발행에 등장인물과 발간목적에 영향을 준 동기가 되었으리라 사료되며, 새롭게 시도된 표현방식과 문헌을 통한 논리적 근거를 이용해 효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 불교의 수행 전통이었던 선(禪)은 근대 이후로 내용적으로나 외형 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변화 양상 가운데 주목할 만한 특징은 세속화 (Secularization)였다. 이러한 양상은 현대사회에서 종교문화 전반에서 나타난 세 속화 현상과 궤를 같이 한다. 세속화라는 의제는 서구 종교학 분야에서는 20 세기 중반부터 이미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전근대 문화의 산물인 종교문화가 근대문명과 조우하면서 형식과 내용 양쪽 면에서 세속화는 피할 수 없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행복’이나 ‘해방’ 등의 주제가 ‘구원’의 문제를 대치할 정도로 기독교 문화에서 부각된 점이다. 동양의 선(禪) 문화는 젠(Zen)이라는 일본 근대 신불교의 한 형태로 서구에 유입되었고, 명상 혹은 심리치료 기법과 결부되면서 서구사회에서 대중적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서구사회에서 선은 적극적인 사회참여, 민주화된 재가자 중심의 조직 구성 등의 세속화 양상을 두드러지게 드러냈다. 이런 세속화 된 가치관에 따라 행복이라는 주제가 해탈이나 열반에 못지않은 혹은 그것을 대체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선에서도 부각되었다. 근대 이후 한국불교에서도 선의 세속화 양상이 확인되는데 세속권력과의 깊은 유대관계, 사찰 경영의 많은 부분을 세속법에 의존하는 형태, 서구 명상 문화의 신속하고 전폭적인 수용, 재가수행자를 중심으로 하는 수행 문화의 확산, ‘행복’을 선 수행의 가치로 적극 수용하는 등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제 세속화 시대에 선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고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 되 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근대 이후 종교 영역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세속화 양상에 대한 고찰을 통해 선의 방향성을 새롭게 가늠해 보았다.
조선 시대의 유배는 주로 정치범에게 적용되었던 형벌이었다. 정치 상황이나 죄인의 신분 혹은 죄의 경중에 따라 유배지도 결정되었다. 특히 조선 중기에 들어 당쟁이 치열해지면서 유배는 대부분 섬으로 가게 되었다. 유배는 현대와 달리 비리에 의한 것보다는 당쟁의 결과였으며 정치적인 속성을 띄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본 고는 이를 위하여 유배가 주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에서 진행되었다. 이를 조선 후기의 우봉 조희룡의 심미경계를 통하여 고찰하였다. 그는 여항문인화가로 임자도에서 19개월간의 유배 생활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육체적 정신적 시련과 한계상황을 극복하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심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처소인 만구음관 주변에 자생하는 대숲의 자연을 통하여 묵죽의 문인화에 천착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의 묵죽 문인화는 심미경계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묵죽의 심미경계는 독표성령(獨標性靈)의 심원미학(心源美 學)⋅자출기저(自出機杼)의 심장미학(心匠美學)⋅자성별구(自成別區)의 심득미학(心得美學)에 나아갔다. 심원의 미학은 조희룡의 독자적인 성령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심장미학(心匠美學)은 스스로 우러나와 이루어진 자출기저(自出 機杼)이다. 또한, 심득의 미학은 스스로 자신의 개성을 바탕으로 한 자성별구 (自成別區)였다. 이와 같이 조희룡 묵죽의 심미경계는 심화 경지에 나아가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의 유배는 역으로 한 예술가에게 자신의 예술에 천착할 수 있는 기회도 주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문인예술은 유배를 통하여 그 깊이의 세계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역으로 이러한 측면 에서 살펴보면 유배문화는 우리 문화예술에서 하나의 선물이었다.
본고는 경상우도에 연고를 둔 조선 후기 노론⋅호론계의 재야 유학자인 함인재 정국채가 선보인 사서경학의 세계를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정국채가 남긴 문집인 『함인재유고(단)』에 수록된 『논어』⋅『맹자』⋅『대학』⋅『중용』 방면의 기록들을 대상으로 한 검토 작업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정국 채의 경우 문자 학습과 병행된 가학적 연원에서 출발한 끝에, 차츰 논맹과 용학으로 이뤄진 사서경학의 세계로 진입하였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런데 정국채가 선보인 사서경학은 정치한 담론들을 결집시킨 경전 해석학의 세계와는 대조를 연출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국채가 남긴 사서경학의 경우, 논의 전개가 극히 간략하면서도 일회성 수준에 그친 사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주자주에 대한 비판적 언술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본격 적인 경전 해석학과는 분명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함인재유고(단)』에는 『시경』⋅『서경』에 대한 기록이 거의 전무할뿐더러, 여타의 경전들에 대해서도 극히 간략한 기록만이 수록되어 있다. 이에 반해 사서경학 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의 언술을 남겼는데, 이는 정국채가 추구했 던 학문세계에서 사서가 차지하는 비중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준다. 특히 정국채는 『중용』에 큰 의미를 부여한 특징이 발견되며, 『논어』⋅『맹자』⋅『대학』의 경우는 그가 착지했던 사상적 입각점이 원시유학이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한편 정국채의 사서경학이 다소 단조로웠던 이면에는, 주자의 경전 해석학에 반기를 들기 어려웠던 노론계 학풍과도 무관하지 않았 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노론 호론계 유자였던 정국채가 선보인 사서 경학의 세계는 상대적으로 연구 성과가 미미한 향반 계층의 지식인이 이룩한 경학적 수준의 한 실태를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연구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기존 한국유학사상사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 추이란, 이미 그 존재가 드러나 잘 알려진 중량감 있는 인물들에 국한된 경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향촌진흥은 중국 19대 공산당대회의 중요한 의사 결정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소강사회(小康社會)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중대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향촌진흥은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경제적 기반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또한 정신문화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중국향촌진흥 전략기획(鄉村振興戰略規劃: 2018-2022)>에서는 ‘향촌 특화 문화산업 발전을 통해 특화 문화산업마을과 문화산업단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문화산업으로 향촌을 진흥·발전시키는 것은 갈수록 늘어나는 물질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또한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서 벗어나 점차 ‘다양한 정신적 추구’를 전환하는 수요도 만족시킬 수 있다. 향후 일정기간 동안, 문화산업을 통해 향촌진흥을 촉진하는 것은 중국의 농촌현대화를 실현하는 것이며, 수입증대의 주요한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본 연구는 우선 문헌연구를 중심으로 문화산업과 향촌진흥의 이론적 관계를 정리하고, 해외 선진국의 사례연구를 통해 문화산업을 통한 농촌진흥·발전 방법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리고 최근 중국문화 산업의 발전현황과 문화산업을 통한 향촌진흥·발전의 문제점에 대해 분석하였다. 이상과 같은 연구를 바탕으로 중국경제사회발전의 현실을 고려하고, 해외 대표적인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중국문화산업이 향촌진흥·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효과적인 경로와 정책에 대해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