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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愈 시와 불교와의 관계 KCI 등재

Buddhism in HanYu's Poetry

한유 시와 불교와의 관계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7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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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學 (중국학)
대한중국학회 (Korean Association For Chinese Studies)
초록

이 논문에서는 한유 시와 불교의 관계를 고찰하였다. 한유는 "불도를 배척한다"고 스스로 자임했지만, 그의 행위는 도리어 불교와 깊고 애매하게 유착되어, 자신의 "선언"과 "행동"이 서로 위배되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원도〉를 찬술하고 불골 맞는 일을 간언하는 등 결연히 불도를 반대하면서, 한편으로는 승려와 밀접하게 왕래하고 시를 수창하며 정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모순적 태도는 후세에 비평을 받았다. 현존하는 한유의 시 사백여수 중 불교와 관련된 시는 겨우 약 20여 수 뿐이지만, 그 영향은 대단하다. 당나라 때 불교는 정치사상면에서 국가와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을 뿐 아니라, 경제면에서도 사회를 침식시키는 큰 병폐였다. 당시에 형성된 방대한 무위도식계급 및 그들의 소비경비는 심히 통절한 것이었다. 그는 시에서 이런 불교의 해악을 지적하고 불교를 적극 반대했다. 한유가 불교를 배척한 것은 불교가 백성들의 생산생활에 막대한 파괴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시에다 불교의 허망과 거짓을 풍자하였으며, 혹세우민을 폭로하였다. 시승과 진지하게 교류한 시들은 후세사람들이 한유가 변심하여 불가에 귀의했다고 여겨 질책을 받았다. 한유와 승려의 교류는 경제적 능력 때문이거나, 시문의 재능이 출중한데 불교에 입문한 것이 통탄스러웠기 때문이거나, 심지어는 그들을 유가의 문하로 끌어들여 벼슬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무본스님을 환속시킨 것은 한유의 일대공로였다. 韓愈는 불교비판에 힘을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문학창작방법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다. 이점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는 불교경전을 익숙히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시에다 화용했고, 그가 시도한 "이문위시" 역시 직접 불경과 불경번역과정에서 얻은 것이며, 시 속의 몇몇 조구방법들도 역시 불경게송의 조구방법을 모방했다. 이로 본다면 한유는 비록 불교를 배척했다지만 그는 여전히 불교경전을 열람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온갖 전적을 박람했으니, 불경도 당연한 포함될 것이다.

在此论文考察韩愈的诗与佛教的关系。韩愈以"攘斥佛老"自命,行为却与佛禅有着深刻․蒙昧未彰的纠结,在其"宣言"和"行动"中采取依违两间的态度。他撰写〈原道〉,谏迎佛骨,坚决反对佛老,一面却同僧道往来颇密,诗歌唱酬․情意缠绵。这种自相矛盾的作法曾受到后人的批评。 韩愈现存的四百多首诗中,涉及到佛教的虽然只有有二十几首,却影响深远。唐代佛教不但政治思想上毒害国家和人民,经济上也成了侵蚀社会的大痛疽。当时形成的庞大的不耕不织的坐食阶级以及他们惊人的靡费是深恶痛绝的。韩愈在诗里指出这些佛教的危害而极力反对佛教。韩愈辟佛是因为佛教对百姓的生产生活造成了极大的破坏。他由于僧道之徒俱善于作蛊惑人心的宣传,而又写到对虚伪佛教的嘲讽与揭露。他与诗僧的真挚交往,这一类诗曾遭到了后人的指责,认为韩愈改变了初衷,皈依了佛门。韩愈与僧侣的交往,或是因为其有经济之才,或是因为其诗文才华出众。在为他们遁入空门叹惋之余,甚至想要将这些人才收回儒家门下,给他们戴上儒冠,而无本师的还俗不能不说是韩愈的一大功劳。 韩愈虽然排佛,却在文学创作方法,仍然受到佛教的影响。这颇让人感兴趣的现象;他不仅熟谙佛典,亦能在诗中化用之;他所创的"以文为诗"亦直接获益于佛经和佛经移译过程;在诗里的有些造句方式亦模仿到佛经偈颂的造句方式。从此可知,韩愈虽然排佛,仍然观看佛书,他博览群书,当然包括佛典。

목차
1. 들어가는 말
 2. 韓愈 시의 排佛내용
 3. 韓愈와 僧侶와의 교유
 4. 韓愈 시의 형식과 불교
 5. 맺는 말
저자
  • 고팔미(동의대학교 중어중문학과) | Ko Pal 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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