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counter of Park Soo Keun and His Foreign Collectors -An Aspect of Cold War Culture-
박수근의 작품은 1950-60년대 많은 외국 소장가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박수근의 작품 이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게 된 데에는 그의 후원자를 자처한 마가렛 밀러, 미대사관 문정관 의 부인 마리아 크리스틴 헨더슨(Maria-Christine Henderson, 1923~2007), 그리고 미 국 무역상사 주재원의 부인 실리아 지머맨(Celia Zimmerman)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 진다. 이 글에서는 외국인 소장가들의 작품 소장 배경을 추적해보고, 그들과 박수근을 이어 준 반도화랑이라는 공간의 성격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반도화랑에서 마가렛 밀러와 실리아 지머맨 그리고 마리아 헨더슨의 주도로 이루어진 모 임과 행사는 단순히 문화에 관심을 가진 동호인들의 친목 성격만 지닌 것은 아니었다. 당사 자들은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외견상 순수한 문화공간인 반도화랑 이면에서는 문화 냉전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간에서 박수근의 작품이 외국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그것이 외국 소장 가들에게 동서의 문화적 차이를 넘어선 보편적 인간의 정서를 건드리는 미적 요소를 갖고 있 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반도화랑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박수근의 작품에 등장하 는 평범한 인물들에서 박수근 개인이나 전후 한국인의 초상 또는 한국적 전통 이상의 것을 보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외국인 소장가들이 박수근의 작품에서 2차대전 종 전 이후 확산하여가던 문화 냉전에 처한 인류의 초상을 보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Park Soo Keun’s works were popular among international visitors to Korea during the 1950s-60s. It is well known that three American women, that is, Margaret Miller, Maria-Christine Henderson, and Celia Zimmerman, played a key role in introducing his works to an international audience.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reason why international collectors bought Park’s works in Korea and to investigate the nature of Bando Art Gallery financially supported by the Asia Foundation. Bando Art Gallery was a key hub within the wide human network that the Asia Foundation had established in Korea. Maria-Christine Henderson was the wife of the Cultural Attaché of the US embassy in Korea; Celia Zimmerman was the wife of the representative of Cornell Brothers Co. which was a subsidiary of Wilbur-Ellis Company which was chaired by Brayton Wilbur Sr. who served as the president of the Asia Foundation from 1954 to 1963; and Margaret Miller was the wife of a film expert at the Asia Foundation. Thus, the events organized at Bando Art Gallery by them were not simply friendly gatherings for dilettantes but the result of the Cold War ideology. The fact that Park’s works caught the eyes of foreign collectors in that gallery would seem to suggest that they triggered a universal sensitivity of human beings. Thus, I imagine that foreign collectors might have seen the ordinary people in Park’s works not merely as portraits of Koreans but as those of humans suffering from the cultural Cold War that just diffused globally after WW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