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1

        1.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1696년 안용복이 권력자의 밀명을 띠고 특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도일했다는 ‘안용복 밀사’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안용복 밀사’설은 남구만이 안용복을 밀사로 보냈다는 설(①)과 남구만과 윤지완이 공조하여 보냈다는 설(②)로 나뉜다. ①의 주요 논지는 조선 정부가 쓰시마번이 아닌 다른 노선을 통해 외교노선을 새로 개척하기 위해 안용복을 보내 돗토리번에 쓰시마번의 비리를 고발하게 했으나, 쓰시마번 의 방해로 결국 막부에 보고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안용복의 도일 목적이 무엇인지, 그가 어떤 형태로 쓰시마번의 비리를 고발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②의 주요 논지는 당시 정파 간의 인식 차이가 커서 공식 사행을 파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정쟁을 피하면서 외교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밀사를 파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정파 간 인식 차이가 무엇인지, 밀사 파견의 배경은 무엇인지, 파견을 계획한 시기는 언제 인지, 안용복이 칭한 관직이 밀사로서 적합한지, 안용복과 그 일행의 신분은 임무 수행에 적합한지, 국왕인 숙종은 어떻게 관련 있는지, 일본 측은 밀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등에 관한 내용이 불분명하다. 조선은 밀사를 파견하지 않고도 직접 사신을 보내 쓰시마번의 행태를 막부에 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자격이 의심스런 안용복을 보냈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이 ‘안용복 밀사’설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안용복 밀사’설은 사료 인용에 있어서도 개인 문집이나 2차 문헌을 이용했고, 구절의 일부를 뽑아 무리하게 밀사설과 엮은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