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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삼척포진성(三陟浦鎭城)은 1520년 완공되어 1898년에 영장 김범구를 마지막으로 폐지된 이후 1916년 정라항을 새로 축조할 때 멸실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 러나 2019년 발굴조사에서는 삼척포진성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의미있는 자료들이 확인되었다. 삼척포진, 삼척포성이라고도 불리는데『新增東國輿地勝覽』, 『東國輿 地志』, 『陟州志』, 『輿地圖書』, 『關東志』 등의 자료를 살펴보면 삼척부(三陟府) 관아 동쪽 8리(里) 지점에 있었다. 지금의 육향산(六香山) 주변에 해당된다. 조사지역은 크게 2개의 문화층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문화층은 1520 년(중종 15년) 삼척포진성을 축조하는 시기로 대부분 모래층 위에서 유구가 확인 된다. 한국은 물론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거의 없는 해안가 사구층에 축성된 사례 이다. 성벽과 구상유구, 온돌유구, 집석유구, 적심, 수혈유구 등이 이 시기에 해당 된다. 2문화층은 성 내부의 요철부에 인위적으로 매립하여 평탄면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이 시기 유구로는 은거시설과 집수정, 석곽시설, 소성유구. 철재폐기장, 폐기장 등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해당된다. 이중 철재폐기장은 성종실록에 기록된 수철생산과 관련이 있는 유구이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삼척포진성 성벽은 비록 훼손이 심하여 부분적으로 확인 되었지만, 문헌에 등장하는 포진성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 된다. 아울러 확인된 성벽과 지적도에서 추정한 성벽의 위치와 방향이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어 포진성의 전반적인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되었다. 조사를 통해 성벽 기초부는 사구층을 ㄴ자 혹은 U자형으로 굴광하여 정지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저부는 처음 돌을 깔고 모래를 채운후 다시 돌을 깔았는데 4단까지 확인되고, 기저부 위에 성벽을 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외벽은 길이 110~ 120㎝의 대형 할석을 가로세워쌓기하였으며, 내벽은 길이 70~80㎝의 할석을 눕혀쌓기하였다. 외벽과 내벽 사이에는 크고 작은 할석을 이용하여 빈틈없이 채운 것으로 확인된다. 성벽의 너비는 190~210㎝ 정도이고, 잔존높이는 약 60㎝이다. 내환도로 쓰인 기저부를 포함하면 300㎝에 가깝다. 이렇게 조사를 통해 성벽의 축조방법과 구조 등이 단편적으로나마 파악된 사실은 향후 해안가 사구층에 축성 된 조선시대 포진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비교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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