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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백수의 왕’으로 알려진 사자는 아프리카 유럽 서아시아 인도 등지의 열대 초원지대에 서식하는 무서운 동물이다. 사자는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자주 등장하여 그 신성함과 절대적인 힘, 그리고 위엄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사자는 서식하지 않으나 역사기록을 통해 삼국시대부터 사자의 존재를 이미 인식하고 있었으며 사자는 불법(佛法)을 지키기 위한 수호 신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통일신라 이후는 사자가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나타나며, 탑의 장식품이나 불교공예품, 그리고 기와 및 생활용품 등으로 폭넓게 수용되어 사자의 장엄함과 다양함을 볼 수 있다. 특히 단단한 화강암을 소재로 한 석사 자상이 석탑과 석등 등에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에는 독특한 예이다. 이사부는 나무인형 사자를 많이 만들어 배에 싣고 가 우산국 사람들을 나무인형 사자로 위협해서 복속시켰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이사부가 그 당시에 일반인들에게는 처음 알려졌거나 거의 알려지지 않는 무섭고 기이한 사자를 이용했다. 이사부는 이미 한번 마희로서 가야를 정복한 군사전략가이며 지략가였고, 역사가였다. 진정한 싸움에 승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이사부는 나무인형 사자를 통해 싸우지 않고 우산국을 복속시킨 것이다. 이사부의 식견과 능력으로 그는 이미 그 당시에 사자에 대한 형상과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새롭게 등장한 존재로 엄청난 힘과 무서운 외형을 가진 백수의 왕이자 불교의 호법신인 사자를 전장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우산국 복속 때 군사전략으로 이용했다. 그렇다면 이사부가 만든 나무인형 사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첫 번째 사자를 만든 재료가 나무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두 번째 나무인형 사자의 크기는 얼마였을까? 나무인형 사자를 여러 마리 만들어 배에 나누어 싣고 갔다는 기록으로 보아 트로이 목마처럼 그렇게 큰 나무인형 사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사부가 나무인형 사자를 만든 지 122년 후 가장 가까운 시기에 만들어진 분황사 모전석탑 석사자(石獅子)에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사자상과 비교하여 비슷했거나 위협하기 위해 좀더 과장되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세 번째 나무인형 사자의 외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무인형 사자의 외형적 모습도 석사자들의 외형적 모습과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본 뱀은 못 그려도 안 본 용을 그린다“는 우리 속담처럼 그 당시 실제 살아있는 사자를 보지 못했지만 오히려 사자는 일정한 틀을 지닌 모습으로 정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사부의 나무인형 사자는 아마 그 이후에 만들어지는 신라 사자상의 전범(典範) 또는 전형(典型)이 되었을 것이다. 현존하는 한국 동물상의 대부분은 앞다리를 세우고 뒷다리는 구부린 반좌(半座)의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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