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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광양 마로산성은 6세기대 백제에 의해 축성된 산성으로 지금까지 총 5차례의 발굴조사 를 통해 산성 내·외부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다종·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고, 특히 광양의 백제때 지명인 ‘馬老’와 치소·관청을 상징하는 ‘官’이 결 합된 ‘馬老官’명 기와가 출토되면서 이 지역의 고대 治所城으로 비정되어 왔다. 이 연구는 마로산성의 발굴성과를 검토하여 고대 사회 치소성의 개념을 고고학적으로 접 근한 것이다. 이를 위해 마로산성 내부시설의 입지, 규모, 출토유물 등의 집중 분석하여 상 관관계를 검토하였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관아·군사·저장·제의 관련 시설의 존재이다. 이러한 시설들은 치소성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 시설인데 행정의 핵심시설인 東軒은 Ⅱ-4호건물지, 외부 경계와 조망을 위한 將臺는 Ⅱ-1호건물지, 지배계급의 생활 공간인 內衙는 Ⅰ-2호건물지, 조세와 관련된 창고 시설은 Ⅱ-2호,Ⅱ-3호 건물지로 판단된다. 둘째, 祭場으로서의 기능이다. 마로산성에서는 집수시설과 수혈유구 등을 통해 진단구, 공헌물로 볼 수 있는 특정 종류의 유물들이 반복적으로 출토되고 있어 마로현의 제장으로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상위 계층의 신분표상품의 존재이다. 마로산성에서는 금동과대, 금동투조장식, 중 국제 자기, 동경, 벼루 등 다양한 신분표상품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러한 신분표상품들이 집중되고 있는 점은 마로산성이 마로현의 치소성으로서 활용되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넷째, ‘馬老官’名 명문와의 존재이다. ‘마로관’명 기와는 광양의 백제때 지명과 행정치소 인 관이 복합된 기와로서 마로산성이 마로현의 치소성이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자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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