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등장은 아담의 역사성과 타락 그리고 원죄 교리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프레드릭 테넌트는 자연과학의 연구결과를 수용하면서 죄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시도한 선구적인 신학자였다. 그는 진화의 결과로 인간이 타고나는 동물적 본성에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타고난 악한 본성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서 서서히 등장하는 도덕적 의식이 동물적 본능을 제어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테넌트가 추구한 것은 기독교 신앙의 파괴가 아니라 현대의 학문적 성과에 비추어 기독교 지식 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내용과는 관계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죄의 기원과 무관하게, 자범죄의 보편성은 구원의 복음의 충분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테넌트의 관점은 세계에 대한 지식이 진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시에 대한 인간의 지식 또한 전진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본 논문은 17세기 후반 잉글랜드의 성직자로서 런던에서 설교자로 활동했고, 말년에 이르러 1691년부터 1694년까지 캔터베리 대주교(Archbishop of Canterbury)를 지냈던 존 틸럿슨 (John Tillotson, 1630-1694)의 교회론을 살펴본다. 17세기 후반 잉글랜드 국교회가 처했던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당시 국교회 성직자들에게 교회론은 중요한 문제였다. 그들은 개신교 비국교도(Protestant Dissenters)와 로마 가톨릭교도가 국교회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국교회의 특별한 지위 – 잉글랜드 내에서의 유일한 합법적 교회 - 를 옹호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국교회 성직자들이 사용한 교회론적 논리는 개신교, 에라스투스주의(Erastianism), 주교제주의(Episcopalianism)에 기초한 것이었다. 틸럿슨은 개신교와 에라투스주의의 논리를 사용한 반면, 주교제주의는 옹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틸럿슨의 교회론에는 위에서 언급한 일반적인 논리들을 뛰어넘는 면이 있었다.
틸럿슨은 자비(charity)의 덕목을 교회론의 중심에 놓았다. 그는 잉글랜드 국교회를 로마 가톨릭교회와 비국교도의 회합, 양자로부터 구분짓는 특징이 국교회가 가진 자비의 덕목에 있다고 보았다. 틸럿슨에 의하면, 교리적 오류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문제이긴 했지만 가톨릭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이 이단으로 생각하는 비(非)가톨릭 기독교도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또한 틸럿슨은 국교회 편입을 거부하는 개신교 비국교도의 태도에 대해서 자비가 결핍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틸럿슨의 교회론적 목표는 자비에 기초를 둔 국가적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는 진정으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라면 서로 사랑하고 하나를 이루라는 예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근거로 틸럿슨은 잉글랜드의 모든 기독교도가 국교회로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학자들은 틸럿슨을 잉글랜드 국교회의 광교파 성직자들(Latitudinarians)의 대표적인 인물로 간주해 왔다. 기존 연구에서 광교파의 주요한 특성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들이 신앙에서 이성의 역할을 매우 중시했다는 점이다. 본 논문은 광교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틸럿슨이 발전시킨, 자비를 중심에 둔 교회론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한다. 틸럿슨의 광교파 동료들은 교회에 대한 그의 의견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 역시 편협한 태도와 폭력은 비기독교적이라고 생각했고, 기독교의 핵심 가치로서 관용과 자비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자비를 기독교 신앙과 교회론의 중심에 둔 틸럿슨의 태도로부터, 우리는 많은 분열을 경험한 한국 교회의 영적 갱신을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