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몰타의 유대인』에 등장하는 애비게일이 당시의 여성성, 연극성, 그리고 가톨릭교회를 향한 부정적 시선을 집약적으로 구현하고 있음을 논의한다. 종교개혁 이후 영국에서 반연극주의와 반가톨릭주의는 모두 의복이 그 착용자의 정체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심에 기반해 있었고, 이는 곧 가톨릭 종교의복이 무대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발전한다. 애비게일은 유대인 여성으로 등장했다가 극의 후반부에 가톨릭 수녀로 개종하면서 탐욕스러운 유대인이나 위선적인 가톨릭 종교인의 부정적인 전형들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로운 인물로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말로우의 무대 위에서 수녀복을 착용하고 소년 배우에 의해서 연기되었던 애비게일은 기만, 위선, 문란함, 미성숙함과 같이 일찍이 수녀 복장에 부여되어왔던 부정적 정서들을 소환해 내기에 애비게일의 성스러움이란 텍스트 안에서나 유효하다. 일관되게 성스러운 여성을 재현하는 것은 당시 영국 무대에 주어진 실현 불가능한 과제였으며, 초기 근대 영국 무대 위 수녀들은 반가톨릭적, 반연극적, 반여성적 정서 속에서 종교 개혁 이후 영국 무대가 당면한 재현의 위기를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