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번역은 작가나 시인의 상상력을 통한 창조력과 예술성이 농축된 언어의 결과물을 타 언어로 재창조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번역가/번역기계는 표면적 의미뿐만 숨겨진 의미에 대한 고차원의 번역 능력과 기술 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문학 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전환이 아닌, 문화와 작가/시인과 독자를 연결해주는 소통의 미학이 되어야 하는 점이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엘리엇의 마지막 시중 하나인 크리스마스 트리의 수양과 프로스트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기존의 번역과 기계번역을 서로 비교해 보았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수양에서 기계번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쁨과 두려움, 그리고 경이로움으로 바라보려는 한 노인/시인의 마음을 잘 드러내지 못했다. 또한 크리스마스 트리에서도 도시와 도시인의 냉정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간과하기에 도시를 빛나던 장소로 오인하게 하였다. 이처럼 기계번역은 시인이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표면적인 묘사나 단어 나열에 그칠 수 있는 위험성을 다분히 보인다. 따라서 문학에서 기계번역은 당분간 인간번역에 종속적으로 사용될 필요가 보인다.
엘리엇 시 「크리스마스트리의 재배」에 나타난 경이로움과 두려움은 다소 밝고 교훈적이어서 성당에서의 살인에 나타난 경이로움과 두려 움만큼 무겁고 장중하게 느껴지지 않고 있다. 성당에서의 살인에서는 슬퍼해야 할 죽음과 즐거워해야 할 탄생이 평화나 구원 등 기독교의 신 비로 연결되고 있지만, 「크리스마스트리의 재배」에서는 이러한 신비가 아동에게는 경이로운 체험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으로 정의되고 있어서이 다. 결국 「크리스마스트리의 재배」는 노년과 아동의 순수함과 단순성을 찬양하며 성자 루시의 삶과 순교를 신비롭게 조명한다. 이러한 신비는 아동에게 경외심을 주던 같은 신비이며, 이를 잃어버린 영혼과 세상에 대한 심판을, 즉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한 아동의 순수한 즐거움과 겹쳐 있다. 우선 경이로움이 놀라워 두려움으로 느껴지고, 그리고 두려움은 냉혹한 삶의 현실과 죽음에서 오는 모순이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엘리 엇에게 주는 의미는 천사의 예언과 함께 온 예수의 탄생 그리고 아이의 신비로운 경험, 그리고 살며 겪어야 할 수난과 영광, 이어 노년의 행복 한 죽음과 평화에서 찾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