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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우리와 일본의 지성계에서 나타나는 中華思想은 ‘夏夷의 세계관 앞 에 받은 상처의 치유와 극복이라는 지성사적 노력’의 한 모습이라고 나는 본다. 우리와 일본은 각자가 모두 자신의 나라가 중국보다 한층 높은 수준의 학문을 축적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곧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자기 나라를 문명의 주인이라고 자임하게 만든 힘이다. 중화주의의 극복과 해체는 이렇게 중화주의의 내부로부 터 이루어졌다. 본고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 아래 조선과 일본이 내세웠던 자부심의 실체로써 두 나라의 경학 성과의 실상을 비교해 보았다. 그 방법으로 먼저 朝日 經學界의 土壤과 雰圍氣를 살펴보고, 이어 대학의 ‘讀音’, ‘著者’, ‘明德과 新民’ 세 爭點에 대한 註釋 양상을 비교하였다. 조선은 朱子學이 經學界의 主流를 이루는 가운데 書院을 중심으로 師說을 繼承·深化하였고, 일본은 자유로운 藩校와 私塾의 분위기 속에 自家의 見解를 제출한 경우가 많았다. 朝鮮 經學家들은 朱子學 內的 論理의 精緻한 分析을 통해 獨自的인 철학 논쟁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논제를 만들어가며 獨自的인 학문 체계 를 구축하였다. 일본의 경학가들은 학자마다 이전의 성과를 모두 부정 하고 처음부터 각자의 학문의 체계를 새로이 쌓는 듯한 보습을 보였다. 知性의 浪費라는 측면이 문제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양성과 비판의 자유 위에서 거둔 무수한 獨創的인 견해들이야 말로 일본 학계 를 풍성하게 한 힘이었다. 요컨대 朝日 양국의 특색 있는 경학적 성과는 ‘中華主意 克復과 解體’ 의 바탕이 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그 성과를 밑거름으로 한 양국의 ‘中華主意 克復과 解體’ 과정의 구체적인 진행 양상은 이후의 연구에서 조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