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1

        1.
        200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글은 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쳐 활동했던 곽종석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國權恢復의 방안과 성격을 검토한 것이다. 곽종석의 국권회복 방향은 조선이 당면한 국내·외의 시대적 과제를 감안한 토 대 위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그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진출이 본격화한 국제 정세에서 말기적 증상을 보이고 있는 조선의 내부적 모순을 극복하지 않고는 국권이 보장될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內修를 통한 自强의 방안을 모색함과 동 시에 열강들의 역학관계를 활용할 수 있는 외교력의 발휘를 주문했다. 이에 따 라 그는 서구사조의 적극적인 수용을 지향하는 開化의 입장에 동조하기를 거부 했을 뿐만 아니라, 배타적인 자세로 물리력을 동원해 外勢의 배척을 요구하는 衛正斥邪의 논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제국주의 국 가들의 침탈에 따른 사상적 혼돈과 국가적 위기를 東道西器論의 입장에서 대응 하되 유학의 현실적 변화를 통해 부국강병을 실현하는 방향을 모색했다. 결국 곽종석의 국권회복 방향은 국내·외의 시대적 상황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유학의 변화를 통한 內修를 토대로 열강들의 역학관계를 활용한 외교 력을 발휘해 민족의 생존을 보장받는 기조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셈이다. 이를 위해 그는 열강의 공관에 布告文을 보내 일본을 견제할 것을 촉구했을 뿐만 아 니라 乙巳勒約의 부당성을 제기함과 동시에 五賊의 처단을 주장했고, 파리강화 회의에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며 조선의 독립의 당위를 알리기 위해 長書를 기 초했으며, 상해 임시정부 등 해외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儒林團 대표로서 大同團을 적극 지원하고 나서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역할은 寒洲學派 의 ‘心卽理’說을 이념적 근간으로 정립한 分合論的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는 동아시아 범주에서 벗어난 거시적 안목에서 다양한 사조를 포용적으로 수 용하는 그의 현실인식과 대응자세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