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溪 文勵(1553-1605)는 曹植의 제자인 文益成의 아들이자, 조식의 고제자 인 鄭仁弘의 제자이다. 그는 임진왜란 중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며, 난후에는 그 의 충의에 감격한 명나라 장수들에게서 翰墨流芳을 선물받기도 했다. 지역 한문학적 측면에서 陜川을 연구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南平 文氏의 학맥을 연 구하기 위해서도 문여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의 생몰연대는 물 론 죽음의 이유까지 그릇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본고는 이에 그의 삶과 시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일찍이 학문보다는 姜呂尙처럼 출사하여 경제제민의 포부를 펼치고자 했다. 그러나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사하고 말았으 니, 그의 꿈은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는 자연의 승경 을 노래한 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눈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다. 임진왜란 중의 우국충정의 시, 이별을 읊은 시, 보고픈 이를 그리워하고 고 향을 그리워하는 시가 그러하다. 이것은 민족의 대재앙이었던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그의 시는 길 위에서 방황하는 동시대인의 아픔과 소 망을 대변하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