士農窩 河益範(1767-1813)은 滄洲 河憕 및 그의 손자 河洺으로 이어진 가학 을 계승한 바탕 위에 尤庵學派의 性潭 宋煥箕에게 경학과 성리학을 배우고, 鏡 湖 李宜朝에게 예학을 배워 韓元震-宋能相-宋煥箕․李宜朝로 내려오는 학맥에 속하게 되었다. 그는 성담에게 집지함으로써 학문적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尤 庵家와 世交를 돈독히 하는 두 가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사농와의 삶의 지취는 자연에 동화되는 삶을 산 曾點의 방식을 추종하면서 仁 智之樂을 추구한 데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實心․實學으로 爲己之學을 하는 用實心務實學의 務實精神으로 나타난다. 그의 문집에는 紀行詩와 紀行文이 대 부분을 차지하여 문학적 특징으로 부각된다. 그의 기행시는 크게 山水遊覽과 求道觀光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전자는 지리산 등의 산수를 유람하면서 지은 것이고, 후자는 스승의 문하에 나아가고 한양을 관광하면서 지은 것들이다. 그의 기행문학작품에 나타난 작가의식으로는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째, 산수유람을 좋아하는 성품으로 자연에 몰입하는데, 그것은 현실에서의 불 화를 달래기 위한 측면보다는 曾點의 경우처럼 天人合一의 경지를 추구하는 仁 智之樂에 心醉하는 정신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둘째, 산수유람이건 구도관광 이건 그의 기행문에는 源頭處를 향하는 求道意識이 깊게 스며 있다. 셋째, 그의 기행시문에는 선인의 유적을 만나 역사를 회고하는 작가의식이 잘 드러나 있는 데, 선현의 道德과 志節을 흠모하기도 하고 선현의 불행을 탄식하기도 하며 불 교의 황당한 설을 비판하기도 한다. 넷째, 그의 기행시문에는 南冥精神을 환기 시키며 그것을 본받고자 하는 작가의식이 강렬하게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