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宣祖∼光海君연간에 활동했던 서얼 문인 李再榮(?∼1623)의 삶과 문학 활동을 해명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특히 이 과정에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詩話集『秇苑詩話』의 내용을 소개하고 그 성격을 밝힘으로써 당대 문학사 의 실상에 다가설 하나의 입지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재영은 뛰어난 文章能力에도 불구하고 신분적 한계로 인해 사대부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다만 漢吏學官의 職을 수행하면서 문장 능력을 인정받았고, 또 발휘할 기회를 가지면서 점차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許筠과 절친한 사이였다. 광해군 집권 이후에는 당시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던 李爾瞻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이 무렵 廢母論議에 동조하고 이를 확산시키 위한 여론 형성에 노력하는가 하면, 이이첨 아들들의 과거 답안을 代述하기도 한 다. 이러한 행적은 당시 士類의 지탄으로 이어졌고, 癸亥反正이 일어나면서 체포 되어 죽음을 당한다. 사대부 사회의 진입에 실패하면서, 그는 자신의 문학 능력을 비정상적인 방향에서 펼쳤다. 李達문집의 편찬을 담당했으며, 『前五子詩』의 대상 인물로 당대에 으뜸가는 시인으로 언급되기도 했지만,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의 문 장 능력은 不正과 謀議의 道具로 전락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許蘭雪軒문집에 있는 『白玉樓上樑文』의 위작에 관여한 일이다. 이재영의 『예원시화』는 그의 문학 견해에 대해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다만 20개의 항목이라는 적은 분량에다 대부분의 자료가 『詩人玉屑』의 범위 내에 있 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詩體로부터 시작하여 실제 작품의 예시 를 통해 종결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시의 본질, 창작과 비평상의 고려점 등 한시 일반의 주요 문제를 두루 포괄하고 있다. 양적인 면에서 宋代자료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창작과 비평상 송시를 典範이나 기준점으로 설정하고 있지는 않다. 한편 明末王世貞의 『藝苑卮言』에 수록된 내용을 인용하여 宋代의 詩史를 설명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이재영이 明末復古派의 저작을 독서 범위 안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근거로, 허균과 문학 교유를 나누었던 권필이 復古派관련 내용을 남기지 않은 사실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복고파와 관련한 방 대한 작업이 개인적인 애호와 정리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 할 때, 이에 수반되는 의견 교환이나 토론 등에 있어서의 누군가의 역할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 하자면 허균이 명말 문단에 대한 관심이나 수용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 권필과 공유할 수 없었던 부분을, 이재영과 함께 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