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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정부인(貞夫人) 순창설씨(淳昌薛氏, 1429-1508)의 <설씨부인 권선문>은 개인이 남긴 조선의 가장 오래된 권선문으로, 그의 미가 매우 크다. 정부인 순창설씨는 신사임당보다 75년 앞선 조선 최초의 여류 문인이자 화가이며 서예가였다. 이 권선문에 는 설씨부인의 문장과 서예와 그림의 업적이 모두 집약된 귀중한 유물이기도 하고, 당시의 불교문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하다. 조선은 유학(儒學)을 국시(國是) 세워진 나라였기에 신흥사대 부가 중심이 된 조정의 관료들은 억불숭유(抑佛崇儒)의 불교 비판을 넘어 불교를 비난하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태조(太祖)로부터 국왕을 비롯한 왕실은 대부분 억불정책보다는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불교계의 폐단을 막으려는 입장에 있었다. 특히 정부인 순창설씨가 살아간 세종(世宗)으로부터 성종(成宗)의 시기에는 『석보상절(釋譜詳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같은 불서(佛書)의 언해본을 발간 하는 등 불교에 우호적이었다. 특히 세조(世祖)의 경우 불제자를 자처하며 오대산상원사중창 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을 짓고, 상원사의 중창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의 대신과 각 지방의 관료들에게 회람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대적인 회람을 계기로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五 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은 이후로 제작되는 권선문의 표본이 되었다. 이보다 17년 이후에 제작된 <설씨부인권선문(薛氏夫人 勸善文)>은 모두 당시 유행하던 조맹부 서체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첩장(帖裝)의 양식이나, 테두리 선의 양식, 행간, 상하 신분에 따른 인장(印章)의 양식 등이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상호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설씨부인권선문>은 그 나름대로 특별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다은 권선문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이야기 형식과 부인으로 믿을 수 없는 훌륭한 글씨와 조선 최초의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畫)로 절의 모습을 미리 볼 수 있게 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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