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내동토성은 전라남도 순천시 홍내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 城은 해발 76.1m의 望月山 정상부와 주변의 낮은 봉우리를 연결하여 축성하였고, 내부는 평지와 구릉을 형성하고 있어 平山城으로 분류할 수 있다. 현재 확인된 城의 전체 길이는 1,300m 정도이고, 너비는 하부 9~14m, 상부 2.4~5.6m이며, 토성의 단면은 반원형과 사다리꼴형을 이루고 있다. 확인되지 않는 남쪽부분을 감안하면 城의 전체 길이가 약 2,085m 정도로 추정되는 대규모의 土城이다. 잘 남아 있는 북벽 가운데 2곳을 선정하여 시굴조사한 결과 2가지 축성법으로 축성된 土城으로 밝혀졌다. ‘나’지구는 제1차 순수 판축부와 제2차 판축부로 구성되어 증축되었으며, 제1차 판축부는 순수 판축기법으로 축성되어 백제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제2차 판축부는 내측에 없고 외측에서만 확인되었는데 1차 판축부에서 북쪽으로 약 2.3m 정도 덧대어져 있다. 2차 판축부는 외벽 쪽에만 기단석축이 있는 판축토성이었으며,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 전기에 해당하는 와편들이 많이 출토되어 이 시기에 증축된 것으로 보았다. 이 土城이 있는 낮은 야산을 조선시대에는 ‘海龍山’이라 하였으며, 그곳에 古城이 있다고 하였다. 이 고성이 있는 홍내동에 나말여초 시기 박영규가 君長(豪族)으로 웅거하고 있었다. 朴英規는 나말여초 시기에 順天의 豪族이었다. 그는 후백제의 견훤王 사위와 將軍을 지냈고, 고려 태조인 王建을 도와 후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하여 고려시대에 중용되었다. 처음에 佐丞에 제수되었으며, 후에 三重大匡에 이르렀다. 그의 딸은 왕건과 결혼하여 東山院夫人이 되었고, 이어서 두 딸도 역시 3대 정종의 왕후(文恭王后, 文成王后)가 되었다. 박영규는 후백제와 고려 초기에 왕실과 혼인을 통해 그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다졌으며, 아울러 그의 본거지였던 순천지역에 대한 장악력도 더욱 높여서 사후에 이 지역의 海龍山神으로 추앙받았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