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규제법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약관규제’ 외에 ‘계약조항규제’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국제적인 계약규범이나 원칙(이하 단순히 ‘국제적인 계약규범’이라고 한다)에서는 오히려 약관규제보다는 약관을 포함한 계약조항의 규제가 일반화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1993년 EC불공정조항지침에 의해 처음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약조항규제는 그 후에 등장한 국제적인 계약규범에도 영향을 미쳐 PECL(유럽계약법원칙, 2000), DCFR(공통참조기준초안, 2009)을 거쳐 최근에는 CESL(유럽공통매매법, 2011)에서도 계약조항규제가 계약규범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더욱이 독일의 경우 약관규제법의 모법국가이기 때문에 약관규제의 국가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1993년의 EC불공정조항지침의 국내법화를 위해 소비자계약조항규제가 약관규제법의 일부로 신설되었고(1996), 따라서 이미 소비자계약에서 계약조항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라는 점에 주의하여야 한다. 한편 일본에서도 주지하는 바와 같이 소비자계약법을 제정할 때(2000) 약관규제에 한정하지 않고 널리 계약조항규제를 위한 조문을 신설하였다. 우리법상 약관은 ‘일방성’, ‘정형성’, ‘사전성’을 개념표지로 하여 정의 된다. 즉 계약의 일방 당사자인 사업자가(일방성), 여러 명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일정한 형식으로(정형성), 사전에 미리 작성해 놓은(사전성), 계약의 내용이 되는 것이 약관인 것이다(약관규제법 제2조 제1호). 이에 반해 전술한 국제적인 계약규범에서 규제의 대상이 되는‘계약조항’은 계약내용이 되는 모든 계약조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 당사자가 상대방과 협의나 교섭없이 미리 작성해 놓은(개별교섭을 거치지 않은) 계약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방과의 협의나 교섭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면 사적자치의 원칙상 애초에 계약조항규제를 논할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본다면 계약조항규제의 대상이 되는 계약조항은 약관의 개념표지 중에서 ‘정형성’만을 제외한 개념이라고 볼 것이다. 계약조항은 다수의 상대방과의 계약체결을 위해 작성된 것은 아니지만, 일방 당사자가 사전에 작성한 계약내용이라는 점에서는 약관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해하는 한 이제는 약관규제 외에 우리법상으로도 계약조항규제가 별도로 필요한지, 또 그 경우 그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본고는 이와 같은 점을 배경으로 하여 향후 논의를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는 입장에서 약관규제 외에 계약조항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