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를 언급한 경전이나 고전은 많다. 하지만 대개는 효를 일부 내용으로 다루고 있을 뿐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그런데 효만을 핵심 주제로 다룬 책이 있다. 『효경』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의 근본’을 효라고 한다면, 『효경』 은 경전중의 경전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름은 내리 사랑 보다 위로 받은 사랑에 대한 공경과 감사, 곧 효가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일방적, 수직적 이데올로기란 비난도 감수하였지만, 효 본래 정신만은 훼손할 수 없었던 이유다. 따라서 『효경』에 대한 수많은 역주서가 나왔다.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나라의 최고지도자들까지도 『효경』 역주서 편찬에 참여했다. 중국에서만도 5백여 종의 주해서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역주서가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역주서라 하더라도 조금씩 그 내용을 달리했다. 해석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견해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다름과 차이를 확인하는 것도 공부하는 사람의 흥미가운데 하나다. 이런 다름과 차이를 확인 하는 것이 때론 즐거운 공부이기도 하다. 나아가 『효경』에서 추구하는 핵심 내용에 대한 고찰이다. 이 논문에서는 주로 『효경』의 공동체 윤리를 다뤘다. 공동체 윤리의 기본인 화해를 『효경』에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단지 부모공경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화해정신을 추구한 효개념을 『효경』에서 찾아보았다.
『대학』 첫 문장에 “대학의 도는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있으며, 백성을 친애하는데 있으며, 지선(至善)에 머무름에 있다.”고 했다. 여기서 ‘친(親)’을 ‘신 (新)’으로 해석한 주희와 그대로 ‘친’이라 해석해야 한다는 양명의 주장이 충돌 했다. ‘친민’이란 단어를 갖고도 충분히 해석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개념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희 본인은 순수한 의미의 ‘새로움’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낳을 수 있는 문제는 많다. ‘신’이란 옛것을 개혁하고 새것에 따른다는 ‘혁구종신(革舊從新)’이다. 『대학』에서는 명덕을 밝힌 사람이 뒤에 그러지 못한 사람을 가르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이 ‘개과천선(改過遷善)’ 의 ‘신’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위정자들의 개인적 욕망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신민’이 이용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 지도자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될 수 있다. 새로운 변화를 명분으로 지도자 개인의 욕망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명덕’을 위한 교화의 방법이 문제가 된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힘으로 교화할 수 있는 자각능력[良知]와 자정능력[良能]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신민’보다는 왕양명의 ‘친민(親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명명덕’은 본체를 확립한 것을 말하며, ‘친민’은 확립된 본체를 발휘하는 것이다. 양명의 ‘친민론’은 서민을 사랑하고 서민 편에서 이해한다. 대인만이 ‘명명덕’의 주체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주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친민’은 구체적으로 ‘제가(齊 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또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이 나오는데, 이를 ‘효제자(孝悌 慈)’와 ‘혈구지도(絜矩之道)’로 풀어간 다산의 해석이 재밌다. 『대학』에서 말하는 화해공동체 윤리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