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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백제는 한강유역에서 건국하고 금강유역에서 멸망했다. 왕이 살던 곳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한강유역에서는 慰禮城과 漢城, 금강유역에서는 熊津城과 泗沘都城으로 나뉜다. 흔히 위례성을 백제 전기의 왕성, 한성을 백제 전기의 도성․왕도라고 부른다. 기록에 따르면 한성은 北城과 南城 2개의 성으로 이루어졌는데, 북성은 기존의 위례성을 재편한 것이며 남성은 새로 쌓은 산성으로서 유사시를 대비한 군사적 목적의 왕성이다. 남성은 한산 자락에 쌓았으므로 漢山城으로도 불렸다. 북성은 지금의 풍납토성, 남성은 지금의 몽촌토성에 비정된다. 백제 왕도의 방위체계에 대해서는 한강유역의 고대 성곽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을 흔히 사용하지만, 유적 편년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도상으로만 상정한 것이어서 한계가 있다. 백제 한성도읍기의 방위체계는 왕성 부근에 촘촘한 그물망 형태로 산성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경 쪽에 치중했다. 왕도는 한강을 통제하면서 유사시에 옹성할 수 있는 군사적 목적의 배후산성을 대비해놓는 정도였으며, 군사요새는 한강보다 임진강․예성강 등 고구려와 전투를 자주 벌인 북방지역에 훨씬 더 많이 축조하였다. 고대의 방위체계 연구에는 유적의 정확한 편년에 기초하여 역사적 배경을 귀납적이며 거시적으로 통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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