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1

        1.
        2025.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글에서는 일본의 자유주의자들이 만든 지배 논리를 계보학적으로 규명 하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마루야마 마사오가 제시한 사유양식에 대한 해석 이 와쓰지 데쓰로, 쓰다 소키치가 어떤 차이성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으로 출발했다. 제2장에서는 자유 개념이 인식의 해방을 주장하지만, 그것이 탈바꿈되어 공동체 사유로 회수되는 논리가 무엇인지를 논했다. 제3장에서는 사유양식에 대한 문제가 서구 극복과 일본 내부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논리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후루타 히카루와 아미노 요시히코를 통해 고찰했다. 그 리고 이러한 논리들이 와쓰지와 쓰다의 일본독자성 주장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제4장에서는 사유양식의 논리, 서구 극복을 위해 제시한 일본 역사 에 내재한 ‘천황 친정 부정론’의 양상을 확인하고 이것이 국제(国制)의 해석으 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규명했다. 그것은 이시이 료스케와 와쓰지의 영향을 받은 이시이 시로의 논리와 마루야마의 ‘자기법칙성’ 개념의 차이가 무엇인지 를 밝혀냈다. 그것은 사상의 의미와 국제지(国制知)의 개념으로 출현하면서 상징천황의 민중지배를 밝혀내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히려 민중의 지지에 의해 나타난 천황 존숭으로 발전하게 된 점을 고찰했다. 그리하여 제5장에서 는 마루야마의 사상사라는 용어가 이시이가 사용하는 사상사 개념의 차이성 때문에 자립의 의미도 달라졌음을 밝혀냈다. 사유양식의 문제는 역사성 자체 를 규명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자립된 자유를 획득하는 방법이었지만, 이상하 게도 자유주의라는 이름이 관료주의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정신적 규율의 문 제가 소멸되어 버렸다. 그럼으로써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한 비판적 사유양식 은 사라지고 그에 종속된 대중의 존숭심만이 부활되면서 ‘천황’의 지배는 영 속적인 제도적 이즘, 즉 국제이즘(国制ism)화 되었던 것이다.
        8,4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