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현지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피선교지 주민을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이들은 과연 하나님을 받아들일 만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타자”에 대한 초기의 질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바로16세기부터 선교현장으로 파견되었던 예수회 선교사들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초기 질문을 16세기 후반 페루에서 제기했던 호세 데 아코스타(1572-1586)와 17세기 초반 남 인도에서 제기했던 로베르토 데노빌리(1606-1656)의 저술을 통해, 이들 선교사들이 어떻게 최초로 종교적 타자를 이해하고 분류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호세 데 아코스타는 1590년에 편찬한HISTORIA란 책을 통해 페루 지역의 원주민들이 콜럼버스 이전부터 유지해 오던 토착 종교를 면밀하게분석했다. 아코스타는 이 책에서 이중적인 접근방식을 취한다. 아코스타에 의하면 페루 원주민들은 후아카스(HUACAS)라는 끔찍한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져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알수있는 능력을 내재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중적인 타자에 대한 이해는 그의 관찰의 프레임으로 작용하고 있는 스페인 시골 주민들의 미신에 가까운 가톨릭 신앙과연관이있다. 16세기 스페인 내부의 종교재판 기록과 아코스타의 페루 주민에 대한 비판을 비교해 보면 명백한 유사점이 발견된다. 깊은 종교성과 동시에 미신적인 의식을 선호했던 스페인 시골 주민들의 신앙에 대한 평가와 페루 주민의 종교성에 대한 평가가 흡사한 이유는, 아코스타가 페루 주민에 대한 해석에 사실상 스페인 시골 주민에 대한 이해를 투영시킨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코스타에 있어서 타자에 대한 해석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내부적 이해와 결부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활동하며 이른바 상류층 우선 접근 선교방식으로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로베르토 데노빌리의 경우에서도 같은 투영 현상이 나타난다. 데노빌리는 자신을 인도의 최상위 카스트인 브라민과 동일시하면서, 심지어 브라민의 신 이해를 자신의 신 이해와 일치시키는 신학적 대담성을 보이는 글을 발표했다. 이는 인도 사회에서 브라민 카스트가 차지하는 학문적, 사회적 위상을 자신이 포르투갈 출신의 선교사들과 차별되는 귀족 및 학자의 위상을 투영시킨 결과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투영의 과정을 1613년 어간의 인도 선교 역사와 비교하면서 로베르토 데노빌리의 “타자”에 대한 이해를 분석한다. 결국 아코스타와 데노빌리와 같은 초기 선교사들은 종교적 타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자기 정체성의 이해 정도를 투영시켜 타자를 규정하게 된다는 것을 선교 역사적 경험과 남겨진 초기 선교사 문헌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초기 내한 선교사들이 한국 무속신앙을 어떻게 이해 했는지를 보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몇몇 연구자들이 선교사들의 한국 무속 이해를 간략하게 언급하였고, 선교사들의 한국 종교 이해를 다룬 연구도 있었다. 그러나 무속신앙에 초점을 맞추어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초기 선교사들이 무속신앙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을 제공한다.
본 연구는 선교사들이 인식한 한국 종교 체계 속에서 무속신앙의 위치를 다룬다. 한국인들이 무속신앙을 어떻게 느꼈다고 선교사들이 인식했는지도 다룬다. 한국인들의 무속신앙 인식에 따른 다양한 행동들도 분석한다. 한국인들의 무속신앙 속에서 선교사들이 기복주의를 발견했음도 살펴본다. 악귀와 관련된 다양한 무속신앙의 치유방법들이 선교사들에게 목격되었음도 살펴본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무속신앙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며 대결의 대상으로 삼았음도 확인한다.
본 연구의 방법론은 문헌연구이다. 선교사들은 한국 선교 경험을 토대로 책을 저술하였고, 편지, 잡지, 일기를 통해 그들의 무속신앙에 대한 견해를 드러냈다. 이러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선교사들의 이해를 분석하여 정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