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재의 구조와 설행 및 사상과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영산재를 성립 기와 변용기로 분류하여 논의를 전개하였다. 첫째, ‘영산재’ 성립기의 의문에는, 순수한 법석 의문인 「작법절차」(14 96)와 제반문의 <공양문>과 <영산작법>의 두 종류로 나눠진다. 전자는 도량엄정 이후 5종의 거불이 등장하며 이후 당해 경전을 염송하고 축원 을 하며, 후자는 17세기 중엽부터 등장하는 <영산작법>으로 법석 가운데 법화법석의 거불만이 남아 있고, 명칭도 작법절차에서 <영산작법>으로 칭해지고 있다. 둘째, 변용기의 영산재는, 『작법귀감』(1826)에서 볼 수 있듯이 법석보다 공양의식에 초점이 주어져 있는데, <영산작법>에 시왕각배가 더해진 의식에 ‘영산재’라는 명칭이 부여되고 있다. 의문대로 영산재가 설행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성격상 문화적인 요소 위주로 설행되어지게 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영산재에는 중유사상, 공덕사상, 윤회 전생사상, 조선숭배사상, 법화경 경중왕사상 등 법화경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 도량이나 시련에 대 한 이해가 다르고, 영산재가 법석의 경전염송이 중심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경우도 잘 찾아지지 않으며, 영산재가 사십구재 의식이라는 사실조차 역사 속에서나 증언되고 있다고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