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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고구려 고분벽화는 고구려인의 생활상과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자료이다. 특히 5세기 평양지역 고분벽화는 4세기 이래로 지속된 漢系와 낙랑 고분의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평양천도 이후에는 고구려 고유의 문화가 반영된 벽화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본 논문에서 옥도리 벽화고분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5세기 전 반~중반 평양지역에서 이루어진 집안지역 문화의 수용과 융합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옥도리 벽화고분이 조성된 5세기 고구려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427년에 단행된 평양천도에 주목하였다. 수도 천도로 인해 평양은 이제 고구려의 새로운 정치적․문화 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이후 기존 국내성의 집안 문화가 새로운 수도 평양으로 유입되며 평양에서 汎고구려적인 새로운 문화가 꽃피게 되었다. 5세기의 고분 문화에서도 평양천도를 전후로 하여 두 지역의 고분문화가 교류․융합되는 과정을 거쳐 汎고구려의 문화가 성립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옥도리 벽화고분은 구조상 감실이 달린 二室墓의 구조로 평양지역 벽화고분 고유의 특징을 보여준다. 고분의 구조나 생활풍속·사신의 벽화 주제와 구성은 평양과 집안 지역의 고분들과 친연성을 보여 그 제작시기를 5세기 전반∼중반까지 내려다 볼 수 있다. 옥도리 벽화고분은 감이 달린 이실묘의 독특한 구조와 생활풍속·사신·장식문 등 다채로운 벽화 내용과 구성으로 주목받아 왔다. 또한 옥도리 벽화고분에 나타나는 집안과 평양지역 고분문화의 특징들은 고구려의 평양지역 지배 및 평양천도를 전후로 하여 두 지역에서 이루어졌을 문화적 교류를 보여준다. 그러나 옥도리 벽화고분은 두 지역의 고분문화가 공존할 뿐 아직 서로 융합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양상으로 두 지역 의 문화교류 초기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옥도리 벽화고분을 통해 5세기 전반~중 반에 이루어졌을 두 지역 간의 교류를 통한 고분문화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으며, 옥도리 벽화고분은 5세기 후반 고구려 고분벽화와 汎고구려 문화의 탄생을 이해하는데 중요 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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