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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일본 시마네현(島根縣)은 2005년에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제정했다. 이 날은 1905년에 <시마네현 제 40호>의 고시를 통해 독도를 <무주지(無主地)>라고 하여 자국의 영토로 정한 100주년에 해당하는 날이다. 그것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서 <독도의 날> 제정 움직임이 있었고, 경상북도는 10월을 <독도의 달>로 정하였다. 그것은 대한제국은 1900년 10월 25일에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도에 석도(石島), 즉 독도(獨島)를 편입한 날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의도이다. 한일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회담 때 우리 측의 협상당사자는 김종필(당시 중앙정부부장)이었다. 그는 1962년 11월13일 회담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면서 기자들에게 “농담으로는 독도에서 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갈매기 똥도 없으니 폭파해 버리자고 말한 일이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고 한다. 다케시마의 날 제정이 있던 작년에 한일회담 관련 문서가 공개되었을 때 우리나라 언론은 독도 폭파 망언의 진원지가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일본 측 대표단의 일원인 이세키 유지로 (외무성 아세아국장)가 회담 중에 제기한 것이라고 대서특필하였다. 이세키 국장이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4차 회의 (1962년 9월3일)에서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日比谷公園)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언론에서 이것을 다투어 보도하였지만, 김종필도 귀국길에 그렇게 말했다고 하니 그게 뭐 대수라고 호들갑을 떠는가 싶었다. 정작 볼 것은 보지 못하면서! 정작 이번 한일회담의 문서 공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1962년 2월 22일 회담 때 독도에 관한 언급이 일본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날 일본의 고사카(小阪) 외상은“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고 한국 측이 이에 응소할 것을 바란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김종필은 “하찮은 섬 문제를 일본이 심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일본의 희망을 박 의장(朴正熙議長)에게 전달하겠다.”고 했었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자는 제안을, 시마네현 고시 의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킨 날을 기해 제기했다는 사실을 왜 우리는 주목하지 못할까? 일본은 작심하고 그것을 제기하였는데도 말이다. 당시 김종필이나 회담에 임하는 우리나라 대표들이 이 날이 어떤 날이었는가를 기억한 사람이 있었을까?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종필은 <하찮은 섬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 버렸을 것이다. 한일회담 비밀문서가 공개된 그 시점은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으로 인해 연일 언론에서 독도 문제를 다투어 다루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 나 우리나라 언론은 한일회담 기사를 다루면서 2월 22일이 일본이 독도를 불법적으로 자국의 영토로 확정한 날, 그리고 <다케시마의 날>이 라는 점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독도 폭파를 누가 제기한 것인가에만 관심을 갖고 호들갑을 떨었다. 10월 25일은 <독도>를 우리나라 땅이라고 국내외에 천명한 날이다. 독도를 논할 때 울릉도 개척령을 공포한 1883년은 아주 의미 있는 해 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시점은 대한제국이 1900년 10월 25일에 <칙령 제41호>를 통해 독도를 울릉도의 관할구역으로 확정한 날이다. 1883년 개척령 공포 이전의 독도와 울릉도는 공도정책(空島政策)에 의해 빈 섬, 버려진 땅이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독도 자료를 들여다 보면 공도정책이란 잘못된 용어이다. 쇄출(刷出), 혹은 수토정책(搜討政策) 이라고 하여야 한다. 1883년 이전의 쇄출, 혹은 수토정책에 관한 자료 의 검토를 통해 독도 ․ 울릉도에 들어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내법 위반자인데 반해, 일본인들은 <월경죄인(越境罪人)>으로서 국제법 위반 자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나아가 1883년 개척령 공포로부터 1900년의 칙령 제41호 반포에 이르기까지의 독도 자료의 검토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어 나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내적으로도,국제적으로도 합법적 활동을 한 것임에 반해 일본인의 활동은 국제법 을 위반한 것이었음을 천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