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은 IAEA에서 권고하고 있는 안전조치기반설계(SBD)에 입각하여 파이로 안전조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 안전조치접근방안 개발을 위한 IAEA 회원국지원프로그램(MSSP)을 수행하였다. IAEA 회원국 지원프로그램을 통하여 기준파이로시설(REPF) 개념을 설계하고, 이 시설에 대한 안전조치시스템을 개발하였다. 최근에 기 준파이로시설은 용량이 증대된 REPF+로 업데이트 되고 있다. 핵물질계량관리시스템 성능평가를 위하여 전산코드 PYMUS 를 개발하였으며, PYMUS는 전용탐지획률 통계평가 방안을 포함하여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파이로 입력물질 계량을 위한 비파괴분석장비로 ASNC가 개발되고 있으며, 파이로 출력물질인 U/TRU 잉곳을 계량하기위한 비파괴분석장비로 HIPAI가 개발되고 있다. 또한 컴프톤 억제 감마선분광기술, LIBS 기술, 균질화 공정의 샘플링 오차에 대한 평가도 진행 중이다. 이러 한 노력들은 국내에서 선진핵주기기술 실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흔히 512년 이후에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고 한다. ‘우산국이 귀복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기로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우산국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된 것은 아니다. 만약 신라의 땅이 되었다면 『삼국사기』 지리지에 신라의 땅으로 울릉도나 독도, 아니면 우산국의 기록이 나와야만 한다. 도리어 울릉도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땅이 분명한 이상 우산국 성립부터 한국사의 영역 속에 포함시켜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을 갖고 있다. 탐라국․우산국․가야 등의 역 사를 포괄하는 고대사를 그려내야 할 시점이다. 우산국이 강성해지자 신라에 조공을 바치는 대신 우산국이 아슬라주와 실직주 등이 침범함으로써 신라지역이 큰 피해를 입음으로써 512년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라의 지증왕으로서는 동해안 제해권을 확보하지 않는 한 삼척, 강릉 등의 지역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며, 이로 인해 결국 우산국의 정벌에 나서게 되었을 것이다. 지증왕대의 우산국 정벌은 이후 법흥왕과 진흥왕대에 이르러 함경도지역까지 진출하는 교두보의 확보라는 면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통해 동해안 지역의 경제력 확보, 제해권의 확보를 통해 고구려에 대한 서해안과 동해안의 양동작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신라에 귀복하여 신라와 연합 동맹을 구축하면서 공물을 바치는 복속국가로 존재하면서 보다 높은 신라의 문화를 받아들인 우산국체제는 후삼국을 거쳐서 고려 시대까지 이어졌다. 11세기 초반의 동여진 해적들이 동해안을 통해 고려를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동여진 해적의 내침을 막는 것이 심각한 현안으로 인식하고, 이를 막기 위한 군사 정책을 수립하며 동해안 방면 축성과 수군, 함대 배치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현종 3년 이후 고려 침공에 어려움을 겪은 동여진 해적들은 이후 공격 목표를 현종 9년~13년까지 우산국, 일본으로 돌려 많은 피해를 입힌다. 동여진의 침략으로 인해 우산국은 더 이상 자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 주민의 대다수가 고려에 망명하여 고려 군현에 편적될 정도였고, 농기구의 지원의 명목이지만 고려의 관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우산국’이란 명칭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