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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에서는 墨子의 義利觀과 그것을 기초로 한 「尙同」, 「尙賢」 편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정치적인 측면에서 묵자 의리관의 實踐的意義를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墨子』, 「尙同」 편과 「尙賢」 편에 나타난 귀족세습제도의 불합 리한 현실과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묵자가 제시한 이상적인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연구결과 묵자는 당시의 宗法에 의한 신분세습제도가 불평등한 사회제도를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백성들을 三患의 고통에 빠트렸다고 보고, 尙同과 尙賢사상으로써 親親에 의한 신분세습제도를 타파하고자 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墨子는 兼倂戰爭과 백성을 옭아매는 불합리한 신분제도을 없애고,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兼相愛交相利’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로움을 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墨子는 사람들 사이에서 ‘兼相愛交相利’를 實現시키기 위한 정치적 환경으로 ‘尙同’과 ‘尙賢’을 제시하였다. 墨子는 ‘尙同’ 과 ‘尙賢’이 가능하게 될 때 ‘貧富貴賤’과 ‘親親’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서로 利益을 공유할 수 있다고 보았다. 墨子의 ‘尙同’ 은 백성들의 의사를 하나로 모아서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며, ‘尙賢’은 백성들에 의해서 선출된 지도자가 현명하고 有能한 관리를 선발하는 것이다. 墨 子는 이 두 가지를 정치적으로 실현시킬 수만 있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건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속에 서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國利民福을 실현하고자 했던 묵자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많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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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3.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忠毅公 大笑軒 趙宗道(1537~1597)는 남명 선생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招諭使 金誠一(1538~1593)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고, 1597년 丁酉再亂때 안음현감 郭준(1551~1597)과 함양 黃石山城에서 왜장 加蕂淸正이 인솔한 적군과 싸우다 장렬히 순국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소헌은 어릴 때부터 家學 또는 지역의 先輩 학자들로부터 익힌 공부를 비롯해 본격적으로 남명에게서 배운 학문의 지결을 몸소 실천하였다. 곧 義理精神을 근간으로 한 그의 학문적 바탕이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초개같이 버려 仁을 이룰 수 있었다고 본다. 대소헌은 평소 국가에 재난이 있으면 관직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선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평소 배운 대로 실행하여 하늘의 떳떳함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세상을 잊고 자신만을 깨끗이 간직하는 것을 능한 일로 삼아 명예만 얻으려는 사람은 옳은 것이 아니고 문무를 겸비하고서 옳은 일에 몸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 올바른 선비라고 주장을 했다. 이러한 주장을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함으로서 선비의 전형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