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1

        1.
        2015.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이승휴의 불교 인식 변화과정과 그 성격을 종합적으로 살펴봄으로서, 이승휴의 불교관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의 불교관이 정치·역사 인식과 어떤 관계성을 지녔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함이다. 논지 전개과정에서 정리한 고려후기 거사 불교, 즉 在家佛敎信者들의 활동이 내포한 사회적 의미를 바탕으로 이승휴의 불교관이 어떤 모습으로 표출되었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려시대에 불교 의례가 개설되었던 목적은 불교가 관념적으로 이해되는 점에서 벗어나 인간사의 구체적 관심사에 대응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승휴의 󰡔동안거사집󰡕에 수록된 「간장사기」에 실린 불교에 대한 인식은 당시 거사 불교가 지닌 사회적 의미를 이승휴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수용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둘째, 국가ㆍ사회적인 면에서 在家佛敎信者들은 財施 활동을 하여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승휴가 약 10년간 삼화사에서 1,000상자의 불경을 빌려 읽은 후 71세인 충렬왕 20년(1294)되던 해에 홀연히 容安堂 간판을 看藏寺로 개칭하고 승려가 주석할 밭을 희사하였다는 내용이 실린 「看藏寺記」 내용은 이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고, 이에 더하여 용안당을 간장사로 바꾸면서 이승휴는 왕실이 평안하고 번성하는 가운데 또한 국왕이 성세를 누리며 승평의 곡조가 연주되는 것을 길이 즐기도록 축원하였다는 기록은 그가 국가ㆍ사회적인 면에서 財施 활동을 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셋째, 이승휴는 삼화사 불경 열람을 마친 후 간장사를 만들고, 그가 읽은 불경 내용 또는 불서 해제와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 󰡔내전록󰡕을 충렬왕 24년(1289년) 무렵에 저술하였다. 內典은 불교서적 목록을 정리한 서적으로 여겨지며, 저술한 배경은 재가불교신자로서 하여야할 사회·문화적 책무라 여기고, 국가와 백성들을 위한 실천적 과제로 여겨서이다. 넷째, 「간장사기」를 작성할 당시에는 현실 문제 해결과 역사 인식에서 불교에 의탁한 측면이 강하게 표출되었으나, 몽산덕이가 법어를 내려준 것에 대하여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전한 시, 주로 참선, 자기 수양과 관련한 내용을 통해 몽산덕 이와 교류한 이승휴는 그와의 교류 이후 참선과 화두를 기저로 한 불교 인식의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이승휴는 적극적으로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에 기반하여 종교적인 실천을 통하여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였고, 이를 통해 그의 불교관은 고려 후기 在家佛 敎信者들의 불교에 대한 인식과 맥을 같이 하였음을 알 수 있다.
        7,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