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 함경도는 ‘군(郡)’의 숫자가 늘어난 유일한 지역이다. 증설된 네 개의 군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2개는 1914년부제(府制)의 실시에 따라 부가 분리되면서 나머지 지역이 군이 된 경우이고, 나머지 2개는 도의 군 면적이 넓고 인구도 많아 증설된 경우이다. 후자의 경우 도 내 군들 사이의 균형과 ‘부원(富源)’의 개발 가능성을 고려했던 것 같다. 또 함경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부와 지정면·읍의 증가가 활발히 이뤄졌다. 이는 도시화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배경은 일본의 군사적 점령,1930년대 이후 ‘북선(北鮮) 개발’이다. 이러한 행정구역의 변화와 서로 호응하면서 함경도의 인구 구성도 변화하였다. 함경도의 산업별 인구 비중을 보면 1920년은 전국과 유사하게 농업이 85% 전후를 차지하는 1차 산업 위주의 지역이었으나, 1940년 농업인구의비중은 50%를 넘지 못했다. 대신 광공업과 어업 인구의 성장, 그에 따른 상업과 교통업 인구의 증가가 눈에 띈다. 함경도의인구 증가는 사회적인 요인이 컸는데, 인구 흡수 요인으로 ‘북선 개발’에 수반한 여러 사업의 진전을 꼽을 수 있다. 이에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일본인도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었다.
본 연구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석도=독도’설의 입증을 시도해 온 기존의 연구 성과들에 추가하여, 한국어는 물론 한국의 방언과 한국말의 한자표기 방식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거나 익숙치 못한 국제사회의 외국인들에게 ‘석도=독도’임을 보다 쉽게 납득시킬 수 있는 접근방식으로서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국내 처음으로 사회언어학 이론들의 적용을 시도해 보았다. 구체적으로 당시 전라도 또는 경상도, 강원도 출신 울릉도 입도자들의 방언이 오늘 날 독도 명칭에 미친 과정과 관련해서는 사회언어학 분야의 “지역인구 변동과 지역어 변화의 상관성” 이론인 ‘도시 건너뛰기(city-hopping) 이론’을 적용해 보았다. 한편 시기적으로 비슷한 시점에서 ‘석도’ 명칭과 ‘독도’ 명칭이 혼재된 것처럼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 언어학 분야의 “세대교체와 지역어 변화의 상관성” 관련 이론을 적용해 볼 수 있었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석도(石島)’가 오늘날의 ‘독도(獨島)’임을 사회언어학적 관점에서 규명해 보는 것은 사회언어학 분야의 학술적 기여 뿐만 아니라 한국의 독도영유권 논리강화라는 정책적 기여 측면에서도 매우 의의가 있는 작업일 것이다. 특히 한국의 지역 방언과 음차, 훈차 방식 표기 등에 익숙하지 못한 국제사회의 외국인들을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는 데 특히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독도영유권의 국제적 바른 인식 제고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