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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의 목적은 인명진 목사의 정치참여 활동을 11번으로 구분해서 분 석했고 끝으로 그 정치참여의 신학적 근거를 검토했다. 인명진은 1970년대 산업선교를 통해 노동자 인권과 권익을 대변했고 네차례 감옥 생활을 했 다. 1980년대 인명진은 강제 추방되고 외국에서 다양한 혁명 사례를 분석 했고, 정치 혁명이 아닌 신앙에 근거한 인간 변화의 공동체 운동을 대안으 로 생각하게 됐다. 1982~84년 한국사회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은 극좌로 이념화되어 인명진의 사상은 개량주의로 비판받는다. 1986 그는 민주화운 동 국민운동 본부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지도자 김영삼과 가까운 관 계를 맺고 그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했다. 이것이 훗날 보수 정당과 친분을 맺게 되는 계기가 됐다. 김영삼 정권하에서 그는 목사의 정체성을 지키면 서 행정개혁과 KBS 이사직에 참여했다. 2006년 보수 정당 한나라당이 부 정부패로 위기에 처했을 때 윤리위원장직을 맡아 부패한 정치인을 징계하 는 개혁에 참여했으나 정치구조를 바꿀 수 없는 한계를 경험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된 이후 새누리당에서 97일 동안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탄핵을 수용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고, 헌정질서를 따라 당에서 대통 령 후보를 배출하고 그 직을 사임했다. 그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큰 비 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활동을 기독교 목회의 사회적 책임으로 여겼고, 죄인의 친구가 되어야 하며, 교회는 보수 진보를 떠나 소금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학적 주장을 했다. 한국교회사와 정치사에서 진보적 사회운 동을 했던 목사가 보수 정당을 대표해서 비상대책활동을 한 것은 아주 특 이한 정치참여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