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기의 진면목을 깨닫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융 심리학(분석심 리학)과 대승불교 양측의 궁극적 목적이고, 이러한 ‘참다운 자기’를 융과 불교에서는 각각 자기 원형(Self archetype)과 불성(Buddha nature)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붓다는 자기 원형(Self archetype)을 실현하였다’고 주장 하는 융에게서 그가 ‘자기 원형의 실현’과 ‘정각을 이룸’(Buddhahood)을 유사한 정신적 경지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의 자기(Self)와 불성 의 동일시는 이후 논란의 주제가 되고 있는데, 이 글은 융 심리학의 자기 (Self) 원형과 대승불교의 불성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융 심리학의 인식론과 유식불교의 인식론을 비교ㆍ연구하였다. 불교 인식론을 이해하기 위해 바수반두의 유식불교를 중심으로 연구하였고, 융의 인식론에 관해서는 그의 저작 중에서 심리학보다 철학적 논의에 가까운 것들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융과 유식불교는 ‘경험하는 모든 것은 의식 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인식론적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의 구조와 작용에 대한 설명을 더 깊이 살펴보면, 융 심리학은 진정한 실재는 초월적인 것이라는 칸트주의의 존재론에 기초한 반면, 유식불교는 마음의 실재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것이라는 이론을 주장한다. 이와 같은 의식의 본성에 대한 이론적 차이로 인하여 결국 융과 유식불교는 참다운 지식을 얻는 방법과 심층의식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다. 또한 융은 건설적이고 목적론적인 방식으로 현상에 접근하는 데 반해, 유식불교는 현상적 존재를 환원적인 방식으로 분석한다. 이 글은 융과 유식불교의 인식론적 차이로 인해 자기실현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융 심리학과 유식불교는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