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통신자료제공제도는 수사기관에 법원의 영장 없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할 권한을 부여한 제도이다. 이에 대한 수사기관의 권한남용을 통제할 수단이 미비한 가운데 전기통신 사업자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요청을 무분별하게 수용해왔고, 이용자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익명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헌법상 기본권 보호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통신자료제공제도를 둘러싼 갈등은 전기통신사업자의 통신자료제공행위의 위법성 판단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이에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요청에 대해 어떤 심사의무를 부담하는지 밝혀 통신자료제공행위의 불법행위상 위법성 판단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수사기관의 권한남용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수사기관에 있으므로 전기통신사업자의 실질적 심사의무에 대해서는 일도양단적 태도를 지양하고 이익형량을 통한 조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전기통신사업자의 실질적 심사의무는 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2다105482 판결의 취지대로 원칙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을 계기로 전기통신사업자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른 이익침해 심사의무를 부담하므로 전기통신사업자는 위 대법원 판결에서 설시한 “수사기관이 통신자료의 제공요청 권한을 남용하여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실질적 심사의무를 부담한다. 예외적 실질적 심사의무는 수사기관의 권한남용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때 한하여 적용되므로 일반적 주의의무 보다 주의수준이 경감되며 수사여건상 이용자의 표현행위 자체가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때 한해 인정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