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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경상우도에 연고를 둔 함인재 정국채는 19세기 초반 무렵을 활동기로 삼았던 노론 계열의 재야 유학자다. 과거업을 단념한 채 오롯이 학문 연마에 매진했던 정국채는 정주학과 예학⋅농학 세 범주에 걸쳐서 괄목할만한 학적 성취를 이루었으나, 주요 저서들이 모두 일실된 상태다. 게다가 문집인 『함인재유고』도 지금까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탓에, 정국채를 대상으로 한 연구 성과도 극히 일천한 실정이다. 이에 논자는 이미 진척된 기존의 몇몇 연구를 토대로 하여 정국채가 평생토록 주력했던 정좌 수행에 관한 논의를 개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저서가 일실된 탓에 추적이 불가능한 예학⋅농학의 경우와는 달리, 문집인 함인재유고에는 정국채가 행한 정좌 수행을 서술한 내용들이 비교적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는 상태다. 특히 정국채는 그가 사사(師事)했던 스승인 성담 송환기와 경호 이의조에게 정좌법과 관련하여 교차적인 질의를 던진 사실도 눈길을 끌게 한다. 왜냐하면 이 같은 정황은 19세기 무렵까지 전승되어 온 노론계의 학문 방식을 확인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국채의 경우 정좌의 이론적 전제에 해당하는 주자학적 함양설, 특히 일념이 발동하지 않은 미발시의 심체 상에서의 “정좌시(靜坐時)의 기상(氣像)”을 체인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전개하였다. 정국채는 고인⋅선유들도 이처럼 지난한 공부론적 과정을 경유했던 것으로 확신했고, 그에 따라 정좌야말로 위기지학의 세계로 진입하는 첩경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정좌가 항상 순탄하게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나, 그 관심과 열정의 정도란 주자학적 공부론의 또 다른 한 축인 성찰설에 대한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국채가 타계하기 직전에 남긴 서신에는 “늘 깨어 있는” 경지가 감지되지 않는 대신에, 계속된 병마와 심히 고단했던 일신상의 처지만이 풍겨 난다. 이는 정국채가 주자학적 거경⋅궁리론 중에서, 후자인 독서에 의한 궁 리가 결실한 학문세계와는 판이한 양상인 것이다. 또한 정국채가 취한 정좌가 과연 유학적 종지에 적법한 방편이었던가? 하는 문제점과 함께, 또한 군자유의 도정에서 분명한 실효성을 담지한 교육적 수단이었는지 하는 의문점도 제기된다. 그런 점에서 서계 박세당과 다산 정약용이 순차적으로 제기한 함양설과 선불교 비판은 제기된 두 사안들에 대해 유의미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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