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학궤범(樂學軌範)』에 수록된 조선 초기 <봉래의(鳳來儀)> 정재의 취풍형무(醉豊亨舞) 이동 구조를 정재무도와 통합 비교하였을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봉래의> 취풍형의 이동은 회무(回舞)이다. 두 대[좌대와 우대]가 서로 마주보고 도는데, 천세장(千世章)에서 부터 시작하여 오엽(五葉)에 이르면 초열[4대 좌우대형]로 선다. 취풍형의 회무는 2대 좌우대형에서 4대 좌우대형으로 변화 할 때이다.『악학궤범』에는 취풍형 회무의 도는 방법을‘상동(上同)’으로 제시하였는데 이 상동은 치화평무의 회무인 ‘좌 사인서향외회(左四人西向外回) 우사인동향내회(右四人東向內回)’를 말한다. 취풍형 회무에서 중 요한 것은 2대 좌우대형에서 초열인 4대 좌우대형으로 설 때 무원(舞員) 8인이 어떠한 과정으로 이동하여 배열하는 가인데 이 기록에서 좌무(左舞)와 우무(右舞)의 도는 방향이 동향과 서향인 것과 도는 위치가 내(內)와 외(外)인 것은 알 수 있지만 초열로 배열하는 과정은 알 수 없다. 『악학궤범』취풍형의 회무 기록을 『조선궁중무용총서7』에서는 좌무와 우무가 서로 마주보 고 돌아 무2인이 짝을 지어 남쪽에서 북쪽으로 들어와 초열로 배열하는 것으로 해석하였고, 국 립국악원에서는 천세장에 사방(四方) 대형을 만들어 우선(右旋)하다가 좌대의 청과 홍, 우대의 홍과 녹이 북대(北隊)에 섰을 때 교선(交旋)하여 동쪽과 서쪽에서 일렬로 들어와 배열하는 것으 로 해석하였다. 이를『악학궤범』과 비교하였을 때 두 대가 마주보고 돈 것과 좌대와 우대의 도 는 방향과 위치가 서로 같았지만 회무를 도는 방향과 횟수 그리고 창사와 초열인 4대 좌우대형 으로 서는 이동노선에는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국립국악원에서는 좌대에 우무가 서고 우대에 좌무가 서는 등 좌대에는 좌무 4인이 배열되고 우대에는 우무 4인이 배열되어야 하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악학궤범』<봉래의> 초열인 4대 좌우대형의 무원별 배열위치가 일치하지 않았다. 『악학궤범』에 기록된 대로 취풍형의 회무를 푸는 중요한 단서는 초입배열도에 제시된 무원 별 배열번호이다. 봉래의의 초입배열도에는 좌대와 우대의 무원들 아래 번호가 제시되었다. 취 풍형의 회무를 봉래의 초입배열도에 제시된 무원별 배열번호대로 좌무는 4-3-2-1로, 우무는 4-3-2-1로 각각 차례대로 이동하면 천세장에 교선하여 오호장에 처음의 봉래의 자리로 순조롭게 배열하는 것이 가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