坡州 烏頭山城은 臨津江과 漢江이 합류되는 位置에 있다. 서해에서 강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가는 水路의 關門에 해당하는 군사 · 지리적 요충지이다. 또한 주변의 山城 가운데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三面이 바다로 둘러 싸여 적을 防禦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烏頭山城은 이와 같은 입지조건으로 인해 百濟 關彌\城으로 比定되어왔다. 關彌\城은 『三國史記』와 「廣開土王陵碑」에 백제와 고구려의 激戰地로 기록되었으나, 金富軾은 『三國史記』기록에 존재하지만 그 위치를 알지 못한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關彌\城 위치비정은 삼국 시대사를 복원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업으로, 많은 학자들이 기록을 통해 關彌\城을 찾으려 하고 있다. 오두산성은 『輿圖備誌』와 『大東地志』에서 처음으로 古山子 金正浩에 의해 백제관미성으로 비정된 이후로 역사지리적 관점과 역사적 정황에 의거하여 현재까지도 백제관미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백제 관미성을 江華島 및 喬桐島 隣近과 禮成江 인근지역으로 위치비정하는 見解도 說得力을 가지고 있다. 오두산성은 廣域 地表\調査의 一環 혹은 부분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지다가, 2007년도에 (財)韓白文化財硏究院에서 실시한 지표조사로 처음으로 산성의 전체적인 현황을 확인하였다. 조사결과 外城과 內城의 二重構\造로써, 추정 水口址 및 門址 2개소, 建物址 7개소, 우물 1개소, 산성 밖 遺物散布址 1개소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수습된 유물을 통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어졌음을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고구려로 標式되는 遺物과 遺構\는 확인되지 않았다. 烏頭山城이 백제 關彌\城으로 비정되기 위해서는 백제 및 고구려로 標式되는 遺物과 遺構가 다양하게 출토되어야 한다. 그리고 산성 전체에 대한 연차발굴이 진행되어 백제와 고구려와 관련된 많은 고고학 자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필자는 파주 오두산성이 백제 관미성이라는 견해는 현재까지 확인된 고고학 자료를 가지고서는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백제 관미성에 대한 江華島 및 喬桐島 隣近과 禮成江 인근지역 위치비정 역시 기록과 역사적 정황,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