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기반으로 하는 연극 및 영화와 관련한 본 연구는 대중문학에 대한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가운데 플롯에 관한 언급을 단서로 시발되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어떤 플롯이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의 기준이 플롯 자체에 있지 않고 사회적 삶을 지배하는 견해들의 체계 안에 있다는 점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잘 알고 있었으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작품의 수용자와 연관된 커뮤니케이션의 입장을 기반으로 하는 동시에 견해들의 체계에 대한 상호 텍스트적 관점을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논의는 플롯 자체가 개연성을 만들지는 않고, 개연성의 힘은 수사학에 있다는 논지를 담고 있다. 본 논문은 이 논의를 보다 넓혀서 구체 작품에 적용하여 살펴보는 방식을 취한다. 에코의 논의를 발전시켜 질문해보는 바, 그렇다면 서사적 연쇄인 플롯은 그 자체로서 무엇을 담보⋅성취하며, 또한 어떤 한계를 지니는가. 또한 사회적 삶을 지배하는 견해들의 체계는 플롯 이라는 요소를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작품을 규정하고 형성하는데 기여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다채로운 관점과 프레임을 통한 접근을 요구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측면을 상호텍스 트적 관점을 통해 접근한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드라마 장르에서 가장 중요시 되어왔던 플롯이 모방되고 변용되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그 기능의 한 측면을 살펴본다. 본 논문은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덴마크, 1956~ ) 감독의 극영화 <도그빌Dogville>(2003) 의 고찰을 통해 에코의 지적에서 확장해 나온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을 구체화해본다. 이 영화가 드러내는 경계적 성격은 한 작품이 지니는 특정한 정체가 삶을 지배하는 견해들의 체계 및 플롯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드러내는 좋은 예시가 된다. 이 고찰을 통해 본 연구는 서사와 드라마 장르처럼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 작품들에서 플롯이 갖는 의미와 역할의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의 논지에 따르면 플롯은 형식의 모방과 변용을 통해 관객의 관습적 기대를 넘나들게 된다. 이러한 기대치의 경계선에 작품의 성격이 놓이게 될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답변이 된다. 그 경계의 틈에는 수사학 또는 문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 영화 <도그빌>을 통해 살펴보는 바, 이 영화의 독특한 성격은 상호텍스트적인 관점, 보다 구체적으 로 말하면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온 형식을 어떻게 모방하고 변용했는가에 의해 설명되는 것이다. 본 연구가 취하는 이러한 입장의 고찰은 드라마 방식을 표방하는 연극과 영화 및 극적인 작품을 창작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드라마 작품을 분석하는 이들에게 창의적인 암시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박찬욱은 1992년 감독 데뷔 이래 지금까지 당대의 현실을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성과 예술성, 새로움과 낯섦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오며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해왔다. 특히 2003년 개봉한 올드보이는 평단과 관객 모두의 호평을 받았으며, 이듬해 제 5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였고, 2013년 미국에서는 리메이크 작품이 상영되 기도 하는 등 지금까지도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이자 한국 영화 전체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오이디푸스 왕」과 올드보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입각하여 바라볼 때 그 서사구 조와 미학적 기능의 상동성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250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와 동서양이라는 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동일한 구조의 작품이 수신자들의 내면에 동질의 정서적 울림 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현대 매체의 비극, 나아가서 문화콘텐츠의 창작에 있어서도 고대 희랍비 극의 덕목을 참작하고 반영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성이 ‘아리스토텔레스 비극 이론의 미학적 재현’에 있다고 보고, 이에 관해 보다 구체적, 실증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그리스 고전 비극의 전범인 「오이디푸스 왕」과 올드보이의 상동성 을 고찰함으로써 그 대표적 양태를 ‘얽힘⋅풀림과 수수께끼의 플롯’, ‘말(言語)의 신탁과 복합적 플롯’, ‘단일한 전체와 아이러니의 플롯’의 유형으로 나누어 보았다. 한편, 극적 주체의 사회적 자질과 윤리적 자질, 그리고 ‘하마르티아’의 윤리적 측면에 관해서는 「오이디푸스 왕」과 올드보 이의 재현양상이 상이하다. 고대의 수신자들에 비해 현대 수신자들이 극적 주체의 사회적 자질 과 윤리적 자질에 대해 보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포클 레스가 신화를 끊임없이 재생시킴으로써 헬라인들의 내면에 신성성을 회복하려 했던 것처럼, 박 찬욱의 영화에서도 비극적 주체의 파멸은 극 안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인의 일상 속에 끊임없이 재생됨으로써 수신자의 내면에 연민과 두려움, 그리고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회적 자질을 지닌 극적 주체의 파멸은 그 외연을 확장할 때 일상의 파멸이며, 다시 인 간의 파괴이자 파멸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오이디푸스 왕」과 올드보이의 정 서적 상동성은 회복된다. 올드보이는 고대 서양 문명의 핵심적 문화유산이 21세기 동양에서 현재적 가치로 재현된 것이며, 다시 서양으로 수출되며 글로벌 문화를 창조적으로 재구한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린 작품이다. 본 연구는 박찬욱의 올드보이를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플롯 이론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오이디푸스 신화의 직계 상속자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의 상 동성을 정치하게 고찰함으로써 두 작품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의 현재적 가치까지 제시 했다는 것에서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연구의 초점이 올드보이의 ‘영화’ 매체로서의 특성과 가치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다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이에 관한 연구 역시 향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통하여 어떻게 드라마 형성소들이 다층 적으로 그려져 있는지 분석한다. 이와 동시에 뮤지컬 내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넘버의 배치가 어떠한 미적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증명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뮤지컬에서 넘버는 그 자체만으로도 서사가 진행이 되며, 그 배치에 따라 극적 기능을 달리한다. 즉, 뮤지컬 넘버 그 자체가 플롯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극적 분위기를 암시하고, 주인공의 심경을 표현하며, 극적 갈등 인자인 동시에 극적 회복의 기능을 지니는 등 스토리 가 아닌 플롯으로서의 기능을 지니는 것이다. 특히 ‘투나잇-오중창’의 경우, 공간분할을 통해 표현되는 다섯 가지의 욕망의 대립으로 인하여, 극적 긴장감을 극도로 상승시켜 작품의 클라이맥스 역할을 지닌다. 하나의 넘버 안 에서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분리시키고, 그것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킴으로서 한 작품이 시 사하는 테마와 목적을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을 통해 뮤지컬의 넘버가 플롯으로서 어떻게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극의 완성도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또한 이 연구를 통하여 향후 뮤지컬 넘버 와 플롯을 구조화시키는 데 길잡이역할을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