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튼대회는 1958년까지 함께한 IMC가 1961년 3차 WCC에 귀속 됨으로써 설자리를 잃어버린 선교단체와 선교회, 개 교회와 교단선교부 들이 1966년 휘튼에서 에큐메니컬 선교에 도전하고, 복음주의 선교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복음주의 일치를 꾀하고자 개최되었다.
1. 휘튼대회는 반에큐메니컬 운동과 선교를 선포하였다. 복음주의 진영은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 “이단, 적, 죄악, 교회가 아니다”라는 강경한 어투를 사용하면서 반대하였으며, “WCC와의 만남과 대화도 포기”한다고까지 하였다. 또한 에큐메니컬 진영으로부터 받은 압력과 고난, 고통을 제시하면서 복음주의의 통합과 일치를 강조하였다. 특히 로마가톨릭과 정교회가 에큐메니컬 운동에 가입한 사건을 개신교 정체 성의 혼란과 혼동을 야기한 주된 요인으로 보고, 심지어 로마가톨릭도 선교의 대상으로 보았다. 복음주의 선교가 에큐메니컬 운동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 운동이 복음을 혼란, 변경, 대체 혹은 가감함으로써 복음의 정체성을 흔드는 혼합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향은 1917년 IFMA를 구성할 때 허드슨 테일러의 공식적인 선언에서 발견된 내용과 일치한다.
2. 휘튼대회는 복음주의 선교의 성경적 입장을 근거로 에큐메니컬 선교와 통합이 불가능하고, 복음주의 선교와 에큐메니컬 선교가 근원적 으로 다르다는 점을 밝혔다. 복음주의는 선교를 성서의 권위를 근거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용서함을 믿고, 말씀의 삶을 결단하는 제자화를 강조한다. 이때 제자화란 복음주 의 선교의 사회적 삶의 실천을 말한다. 에큐메니컬 선교는 이것을 두 영역으로 나누어 하나는 개인구원, 다른 하나는 사회구원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정의하였다. 에큐메니컬 선교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여러 과제 중 상황적으로 긴급한 사역에 집중하였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선교 현장을 영적 황무지를 만들고 영혼구원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에 복음주의는 오직 복음으로 회개한 영혼을 구원 하는 활동에 집중하며, 영적 사역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사회봉사 사역이 성취된다고 보았다.
휘튼대회는 양 진영이 더 이상 연합할 필요가 없음을 입증하였다. 복음주의 선교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속적인 압력과, 선교지에서의 회유와 압박을 고통스럽게 호소하며, 오직 복음전도로 주님의 대위임령 을 수행하려고 한다. 복음의 열정이 있으면 사회참여와 봉사가 이어질 것이지만, 설령 사회봉사를 실천하지 않았다고 해도 복음제시가 이루어 졌다면 그것은 선교를 행한 것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에큐메니컬 선교 와의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1)
3. 양 진영을 통합하려는 노력보다 서로의 특징을 살려 독립적 선교운동이 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서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복음주의 선교는 에큐메니컬 선교의 핵심적 동심원이다. 따라서 가운데 영역에 복음주의 선교를 놓고 그 주변 원으로 에큐메니컬 선교를 배치해 야 한다.
정리하자면, 양 진영을 통합하려는 시도보다 성경의 권위와 복음 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배려함으로써 사역의 다양성 을 전제로 서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독립적으로 할 것은 독립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복음주의 선교의 개종 문제나, 로마가톨릭과 정교회 문제는 에큐메니컬 선교에서 관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에큐메니 컬 선교의 개종 문제나 복음주의 선교의 복음 제시에 관한 문제에 관해서 양 진영이 서로 논쟁하는 것은 매우 소모적이다. 오히려 복음주 의 선교는 근본적으로 복음의 정체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에큐메니컬 선교를 떠받치는 토대로 보는 것이 좋다. 반면에 에큐메니컬 선교는 다양한 선교 영역을 접할 수 있는 정책과 전략을 지원하며, 연합과 통합된 사역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양 진영의 사역들은 복음증거 사역을 전제로 한 영역으로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큐메니컬 선교는 로마가톨릭과 정교회가 개신교의 교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