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매체를 통해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사람들의 행각에 대한 소식, 경찰 같지 않은 경찰, 교사 같지 않은 교사, 성직자 같지 않은 성직자들에 대한 나쁜 소식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좋은’ 교사, ‘인간다운’ 인간, ‘목사다운’ 목사, ‘진짜’ 그리스도인, ‘좋은’ 교회 처럼 명사 앞에 그 명사가 당연히 뜻하는 바를 부연 설명해주는 형용사 가 붙어야만 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금의 한국사회 속에서 교회의 진정성은 무엇으로 담보할 수 있는가?
가톨릭 교회론의 명저인 Die Kirche를 쓴 한스 큉(Hans Küng)이 나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론은 공통적으로 ‘조직체’인 동시에 ‘영적 실체’ 로서 교회를 정의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라는 개념을 떠올릴 때, 따로 마련된 건물에서 틀에박힌 예배를 드리는 의식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거나 또는 우리가 소속되어 출석하고 있는 영적인 모임만을 떠올려도 안된다. 오히려 우리가 동일한 목표와 목적지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를 통합시켜주는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레고리 비일(Gregory K. Beale)의 ‘성전신 학’(temple theology)은 이와 같은 교회론을 잘 담보하고있다.
비일은 이중적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라는 개념으로 신구약성경의 통일성을 규정한다. 성전신학은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 의 역사적・신앙적 의미를 구약성경에서 신약성경에 이르기까지 교회 의 선교사명이라는 큰 틀에 맞춰 신학적으로 전개된다. 비일의 주장대 로 에덴동산-성전-하나님의 영화로운 임재-새창조-교회의사명 등 의 주제가 결국 동일한 실재를 나타내는 다른 양상이라면 이때 ‘성전’개 념은 선교적이다. 그의 전제대로 성경텍스트 자체가 스스로 핵심주제 로 드러내고있는 성전개념이 선교적 개념이라면, 성경은 선교의 책이 다. 비일이 자신의 연구를 선교적 해석학(missional hermeneutics) 으로 언명하고있지는 않지만, 필자는 그의 연구를 선교적 해석학으로 분류하여 소개할 것이다.
논문의 구성은 먼저 신구약성경을 통으로 읽지 못할 때의 제반 문제점과 그 결과를 기술하고나서, 신구약성경을 통으로 연결하여 읽어야함을 주장하되 그레고리 비일의 성전신학을 선교적 해석학의 예시로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전신학의 틀로 연구한 선교적 해석 학이 현금의 교회에 주는 메시지를 고찰할 것이다.
본고는 선교사가 선교적 영성의 기초를 세워 건강한 선교를 실천할 수 있도록 선교적 영성의 독특성 기술한 후, 선교적 영성을 형성하는 신학적 토대의 체계화를 시도한 것이다.
하나님은 선교를 시작하신 분이다. 곧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그의 사람들을 땅 끝까지 보내시어 선교하신다(요 20:21). 선교는 예수께서 지상에서 하신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선교를 실천하시는 방법이 며, 도구(instrument)이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대사로서 모든 나라와 족속에게 복음을 증거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 다. 그래서 타문화 선교에서 많은 연결점 중에서 선교사 자신이 가장 중요한 연결점이 된다.
선교에서 왜 영성이 중요한가? 선교사들이 그들의 사역을 중단하는 여려 요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영적인 힘의 고갈이다. 그러므로 선교적 영성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훈련이 필요하다. 특히 선교사가 피선교지에서 선교사 모라토리움(moratorium)을 요구 받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선교사의 영성과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건강한 선교사역은 건강한 선교적 영성을 갖도록 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따라서 본고는 선교적 영성을 체계적으로 고찰하여 선교적 영적 훈련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예수께 서 보여주신 타인중심성(other-centeredness)을 주목하였다. 예수 의 삶은 타인을 섬기는 삶으로 이루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제자들을 통하여 역사 속에서 사람들을 구원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 하는 타자중심성으로 살도록 성령을 보내셨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예수의 타인중심성(other-centeredness)이 곧 선교적 영성이라 정의 하였다. 또한 선교적 영성의 신학적 토대는 삼위일체(the Trinity), 성육신(the Incarnation), 예수의 신조(the Jesus Creed), 만인제사 장(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으로 체계화를 시도하였다. 삼위 일체 하나님은 선교의 주체가 되시고, 선교의 동력이 되시며, 선교의 목적이 된다. 선교적 삶은 이웃과 함께(with), 이웃 속에서(in), 이웃을 위하여(for) 존재하는 성육신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또한 선교는 사랑 의 관계이다. 곧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랑의 관계를 세워가는 것이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사도들만의 사역이 아니라 흩어진 모든 성도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토마스는 선교의 목표가 인간화라고 주장하였다. 이 소고의 주목 적은 인간화를 신학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이다. 토마스는 기독교의 사상의 궁극적인 틀은 추상적인 하나님‐인간 또는 오히려 인간을 위한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의 인간성이다. 토마스는 현대의 혁명적인 변화의 의미와 신앙의 의사전달 표현으로서의 상황에 대한 기독교의 신앙의 함축적 의미를 탐구하는 맥락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권 을 촉진시킨다. 토마스의 기독론적인 발전단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를 묘사한다. 토마스는 역사상의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을,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정의와 인간화를 위한 혁명적인 변화 내의 발효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는 그의 견해로 발전시킨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죄와 악의 모든 구조를 극복하고 마침내 죽음 자체와 마지막 사건인 그리스도의 왕적인 통치의 뜻으로서 이해되 는 것, 즉 이 세상의 왕국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전환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고통 받는 인간과의 함께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투쟁으로부터 도출된 개념적 인 도구의 말로 혁명적인 인본주의를 위한 원동력으로서 나타내는 인도의 기독론을 요한다. 복음의 보편성이 모든 문화와 이데올로기와 종교를 뚫고 들어가서 그것들을 그것의 매개물 즉 소위 “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로 변혁시키는 능력 안에서 그러한 표현을 찾아야 한다는 확신을 요구한다. 토마스는 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로 이끄는 대화를 의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는 타종교간의 대화가 목표이다. 이것은 종교적이고 이데올 로기적인 다원주의 신학의 주요한 논점인 넓은 의미의 에큐메니즘과 열려진 세속주의를 표명하였다. 그가 기독교의 사회적 구조에 대한 구원을 소망하는 에큐메니컬 신학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영향을 주었으 나, 결국은 그것은 선교에서 편향된 구원을 지향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를 제안한 것이다.
휘튼대회는 1958년까지 함께한 IMC가 1961년 3차 WCC에 귀속 됨으로써 설자리를 잃어버린 선교단체와 선교회, 개 교회와 교단선교부 들이 1966년 휘튼에서 에큐메니컬 선교에 도전하고, 복음주의 선교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복음주의 일치를 꾀하고자 개최되었다.
1. 휘튼대회는 반에큐메니컬 운동과 선교를 선포하였다. 복음주의 진영은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 “이단, 적, 죄악, 교회가 아니다”라는 강경한 어투를 사용하면서 반대하였으며, “WCC와의 만남과 대화도 포기”한다고까지 하였다. 또한 에큐메니컬 진영으로부터 받은 압력과 고난, 고통을 제시하면서 복음주의의 통합과 일치를 강조하였다. 특히 로마가톨릭과 정교회가 에큐메니컬 운동에 가입한 사건을 개신교 정체 성의 혼란과 혼동을 야기한 주된 요인으로 보고, 심지어 로마가톨릭도 선교의 대상으로 보았다. 복음주의 선교가 에큐메니컬 운동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 운동이 복음을 혼란, 변경, 대체 혹은 가감함으로써 복음의 정체성을 흔드는 혼합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향은 1917년 IFMA를 구성할 때 허드슨 테일러의 공식적인 선언에서 발견된 내용과 일치한다.
2. 휘튼대회는 복음주의 선교의 성경적 입장을 근거로 에큐메니컬 선교와 통합이 불가능하고, 복음주의 선교와 에큐메니컬 선교가 근원적 으로 다르다는 점을 밝혔다. 복음주의는 선교를 성서의 권위를 근거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용서함을 믿고, 말씀의 삶을 결단하는 제자화를 강조한다. 이때 제자화란 복음주 의 선교의 사회적 삶의 실천을 말한다. 에큐메니컬 선교는 이것을 두 영역으로 나누어 하나는 개인구원, 다른 하나는 사회구원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정의하였다. 에큐메니컬 선교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여러 과제 중 상황적으로 긴급한 사역에 집중하였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선교 현장을 영적 황무지를 만들고 영혼구원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에 복음주의는 오직 복음으로 회개한 영혼을 구원 하는 활동에 집중하며, 영적 사역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사회봉사 사역이 성취된다고 보았다.
휘튼대회는 양 진영이 더 이상 연합할 필요가 없음을 입증하였다. 복음주의 선교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속적인 압력과, 선교지에서의 회유와 압박을 고통스럽게 호소하며, 오직 복음전도로 주님의 대위임령 을 수행하려고 한다. 복음의 열정이 있으면 사회참여와 봉사가 이어질 것이지만, 설령 사회봉사를 실천하지 않았다고 해도 복음제시가 이루어 졌다면 그것은 선교를 행한 것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에큐메니컬 선교 와의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1)
3. 양 진영을 통합하려는 노력보다 서로의 특징을 살려 독립적 선교운동이 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서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복음주의 선교는 에큐메니컬 선교의 핵심적 동심원이다. 따라서 가운데 영역에 복음주의 선교를 놓고 그 주변 원으로 에큐메니컬 선교를 배치해 야 한다.
정리하자면, 양 진영을 통합하려는 시도보다 성경의 권위와 복음 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배려함으로써 사역의 다양성 을 전제로 서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독립적으로 할 것은 독립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복음주의 선교의 개종 문제나, 로마가톨릭과 정교회 문제는 에큐메니컬 선교에서 관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에큐메니 컬 선교의 개종 문제나 복음주의 선교의 복음 제시에 관한 문제에 관해서 양 진영이 서로 논쟁하는 것은 매우 소모적이다. 오히려 복음주 의 선교는 근본적으로 복음의 정체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에큐메니컬 선교를 떠받치는 토대로 보는 것이 좋다. 반면에 에큐메니컬 선교는 다양한 선교 영역을 접할 수 있는 정책과 전략을 지원하며, 연합과 통합된 사역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양 진영의 사역들은 복음증거 사역을 전제로 한 영역으로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큐메니컬 선교는 로마가톨릭과 정교회가 개신교의 교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 해야 한다.
소극적 안락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죽음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를 벗어나 하나님에 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기독교 관점에서 죽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식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 안락사 는 자연사가 아니다. 환자로 하여금 편안하고 쉽게 죽고, 가정의 사회경 제적인 비용을 절감한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비자연적인 죽음은 허용돼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경에서 기록되어 있는 대로 하나님에 의해서만 허용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세 가지의 관점으로 검토되었다. 첫째, 안락사는 어떤 경우에도 고통을 절대적인 악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단지 고통을 경감하 기 위한 죽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환자의 극단적인 고통이 계속되고 그의 가족이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가장 최선의 대안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적절한 대안은 환자가 죽음 과 하나님의 의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준비된 경우 호스피스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기독교윤리는 생명경시사상을 불식하기 위한 조건 하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의학적인 윤리 조건은 안락사를 포함하여 확립되어야 한다. 이 경우에도 하나님의 주권과 생명의 존엄성은 깊이 있게 논의되어야 한다. 셋째, 환자가 회복할 가능성이 없고 사망에 임박해 있는 경우, 우리 사회는 가정의 경제적인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따라서 의료적인 비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더욱 더 중대한 방법으로 논의되어야 하고, 건강보험제도는 의료보험 혹은 공공부조제 도를 포함하여 환자 혹은 가정을 위해 그 제도의 재구조화와 관련하여 개선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소극적인 안락사에 관한 학제적인 연구를 토대로 하고 있고 선교적인 실천방안의 관점에서 방향성 혹은 대안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기독교는 한국 역사의 격동기였던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에 전래 되었다. 이 시기에 복음은 개인에게 옛 관습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기쁨을 주었고, 민족에게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되리라는 소망을 갖게 하였다. 특별히 한국 여성들에게 복음에 의한 회심과 삶의 변혁이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등 여러 방면으로 놀랍게 나타났다. 한국 기독 여성들 가운데서 김마리아(1892-1944)는 선각자 역할을 한 본보기였다. 본 연구는 김마리아의 삶에 집중하여 회심과 변혁의 생애를 통전적인 선교적 관점으로 고찰하였다.
김마리아는 초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기독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일평생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인, 여성운동가, 교육가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활약하였다. 그녀는 한국인으로서 일제 치하에서 2.8 독립선언과 3.1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또한 여성으로서 당시 집안에서 머물러 있던 관습에서 벗어나 양성평등사상을 가지고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조직 하여 대외적인 활약을 하였고 여전도회연합회 회장으로서 교회 여성들 을 이끌었다. 그녀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가로서 수피아 여학교, 정신여학교, 마르타 윌슨 여자신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런데 안타 깝게도 김마리아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김마리아는 당시 기독교인에게 당면한 선교적 과제인 독립운동과 여성평등을 위하여 변혁자로서 선교적 소명에 충실하였다. 또한 그녀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시대적 소명에 응답하며 한국 여성이 근현대사의 주체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열었다. 선교신학적 관점에서 그녀가 민족주의적 기독교를 추구하는 한계에 있었지만, 양성평등 관점에서 남녀 동반자 의식과 여성교육을 통한 주체성 확립을 추구하는 선각자적 정신이 있었다. 그녀의 변혁적 삶은 오늘날 아직도 장벽이 남아 있는 한국교회 여성과 경제적, 정치적, 성적 억압에 고통당하는 세계 여성들 에게 도전을 준다.
국경을 초월한 이주민의 증가와 이질적인 문화권 간의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한 사회 안에서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공존방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다문화사회에 따른 이주민에 대한 지원은 이주 민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주민의 출신국과 관계되는 사안으로 국가별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 중에 있다. 정부의 다문화가족 지원정 책은 2006년 여성결혼이민자 가족 및 혼혈인 이주자 사회통합지원 방안과 교육부의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지원대책의 수립에서 연원되었 다. 다문화가족 지원에 있어 국가의 제도적 지원과 민간단체의 여타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문화가족의 개인의 특성 및 지역의 환경적 특성에 따라 사회서비스의 이용률이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교회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관심과 그들을 교회에서 어떻 게 수용해야 하는지 등 코이노니아적 실천방법에 대한 모색을 간과하였 고 이에 대한 연구도 매우 부족하였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교회 내에서 다문화가족을 수용하는 데 있어 전제되어야 하는 점이 무엇인지, 정부와 지자체 혹은 민간단체가 담당하지 못하는 영역이 무엇인지 등 교회의 다문화 선교적 과제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먼저 한국의 다문화사회의 특징과 다문화가족의 거주현황 및 생활실태, 정부와 교회의 다문화가족의 지원실제 등을 살펴보고 교회의 역할과 과제에 대하여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선교의 패러다임의 전환과 다문화 선교 전문가 양성이 요구되고, 둘째, 편견해 소를 위한 문화적 다양성 교육의 실시와 교회학교의 교재개발이 요구된 다. 셋째, 목회적 돌봄과 상담체계의 구축이 요청되고, 넷째, 교회 및 다문화 유관기관과의 목회적 협력 속에서 디아코니아적 실천이 확대되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한 방과 후 교실의 운영과 기독교 대안학교 설립 운영에 대한 제고가 요청된다.
IT산업이 발달하면서 전 세계가 디지털 시대로 변모한 시대에 선교는 이렇다 할 콘텐츠를 갖지 못하고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면서 선교 사역을 감당해 왔다. 이에 따라 선교 현장에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따라서 선교 도구로 서의 콘텐츠에 대한 개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일반적으로 콘텐츠는 고부가가치의 창출과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만, 선교라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 콘텐츠는 항상 성경을 근거로 하되 선교지에 적합한 재해석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나 사회 전반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필요로 한다.
선교의 도구로서 성경을 베이스로 하여 현지의 환경에 맞는 콘텐츠 하나를 개발하면 선교사들이 선교 현장에서 복음을 증거를 위해 현지인과 의 접근성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현지인들에게도 거부감 을 줄일 수 있는 효과를 얻는다. 따라서 더 좋고 다양한 콘텐츠의 개발을 통해 선교 사역자들이 현장에서 좀 더 다양한 도구로서 적극적인 사역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을 고려하고 상황을 고려한 선교 콘텐츠의 개발은 선교사에게 복음 증거의 무기로서 활용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선교 도구로서의 콘텐츠의 중요성을 실례를 통해 알리 고, 이에 대한 기반 구축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연구의 구성은 서론에서 콘텐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도모하였으며, 구약성 경의 근거와 현재 한국에 있는 타종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콘텐츠의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선교 콘텐츠의 당위성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하나의 선교 콘텐츠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원더풀 스토리와 스토리 텔링의 사례를 들어 기술하였으며, 사례들에 대한 한국에서의 적용에 대한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또한 선교 콘텐츠 개발을 위한 제안을 세 가지로 제안하였는데, 첫째는 DB 구축을 위한 전문기관 설립과 네트워크 구축, 둘째로 성경과 세상이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 그리고 셋째로 선교지 상황과 환경에 부응하는 콘텐츠 개발이다. 그리 고 향후를 전망하면서 선교 콘텐츠의 연구 개발로 선교 활성화를 위한 제언을 하였다.
21세기에 들어와 지구촌 곳곳에 지진, 쓰나미, 태풍, 토네이도, 대홍수 등으로 인한 대재난들이 점증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재난을 하나님의 선교를 실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교회적 관심은 부족하며 관련 연구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므로 연구자는 본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연구자는 여러 가지 재난들 가운데 지진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었 고, 네팔 대지진 1년을 맞아 지진의 발생원인과 피해상황, 지진피해자 들의 고통, NGO단체들과 선교사들의 노력을 리서치하고 선교신학적 입장과 선교적 실천방안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였다.
첫째, 지진발생에 대한 지질학적 관점과 신학적 관점을 고찰하였 다. 지진은 지구의 지각을 구성하는 판들이 천천히 이동하면서 마찰과 제동 작용을 통해 지진파를 유발시킴으로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는 만유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섭리가 존재한다. 둘째, 재난지역 주민들의 문제들과 그에 대한 대처방안을 다루었다. 그것은 여진으 로 인한 사상자 발생, 산사태로 인한 2차 피해, 불안정한 주거환경, 기초생활용품의 부족, 의료 환경의 부족, 심리적 트라우마, 폭력과 범죄에의 노출, 교육시설의 부재 등이며, 이들에 대한 대처 매뉴얼이 필요하다. 셋째, 선교사들과 NGO단체들의 지진피해 후의 복구노력을 다루었다. 네팔 주재 한국 선교사들은 단일 재난대책기구를 조직하여 긴급 구조와 복구를 통하여 지역민들로부터 교회의 신뢰도를 증진시켰 다. 넷째, 지진재난지역에 대한 선교 신학적 관점을 토대로 선교적 실천방안을 제시하였다.
지진지역에 대한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사회적, 심리 적 치유를 아우르는 통전적 선교를 실시해야 한다. 선교실천 방안으로 는 전 교회적 홍보과 참여확대, 단일 재난대책본부를 설치하고 긴밀하 게 협력하며, 한국위기관리재단의 전문적 자문, 현지교회지도자들을 앞세워 토착교회 성장에 기여, 복음전도는 현지문화의 정서를 고려, 항공의료-구호서비스의 참여, 국내교회들은 재난지역 긴급구호와 복 구를 위한 상시적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 본 연구를 위해 지진에 대한 문헌 연구, 피해상황과 피해자들의 고통, 현지 구조-복구활동에 대한 선교적 노력에 대한 사역자들의 인터뷰, 언론 매체의 자료들을 참고하였다.
본 논문은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남북통일을 향한 선교역사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한국교회는 에큐메니컬(ecumenical) 입장과 복 음주의(evangelical)의 입장에서 북한선교와 통일을 다루었는데, 거 기에는 차이가 있다. 복음주의 입장에서의 선교는 북한의 복음화에 집중하고, 반면에 에큐메니컬 입장은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에서 통일 자체를 선교라고 본다. 이런 두 진영의 차이에도 남북 간의 통일에 대한 문제는 선교신학적 차이를 넘어서서 민족적인 문제이며, 한국교회 의 선교적인 책무이다.
본 논문은 통일에 대한 관점을 통전적인 시각으로 전개하였다. 선교적인 관점에서 남북통일 문제는 에큐메니컬 입장이나 복음주의 입장, 어느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총체적이고, 통전적인 관점에 서 다루고자 한다. 본 연구는 통일을 향한 선교신학적인 관점으로서 북한선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다루었고, 통일에 대한 선교역사 적인 관점을 설명하였다. 또한 남북 간의 통일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이해하면서 통일에 대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접근과 제언 을 시도하면서 한국교회의 과제를 논의하였다. 현재 남한에서는 통일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계속 논의되어왔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기독교 선교적 관점에서 북한선교와 통일을 다루었다.
남북통일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부여하신 주님의 명령이며, 사명이며, 중요한 과제이다. 남북통일을 이루어 가는 길은 샬롬의 평화를 성취하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남북통일은 북한의 복음화와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 하는 길이며,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는 것이다.
본고는 서로 이질적인 종교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 즉 다민족, 다문화권에 대한 선교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할 때 그 민족 고유의 역사 적, 정치적 상황을 면밀히 고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이 점은 특히 이슬람 선교에 더욱 중요하다. 피지배 민족의 역사 및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도 주요한 선교전략 요소이 지만, 지배민족인 러시아의 정신적, 종교적 정체성인 러시아정교에 대한 이해를 통해 다문화권 선교전략을 모색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연구 주제다. 이에 따라 본고는 비이슬람으로서 지배민족의 종교적 정체성과 이슬람 사이에 역사적, 정치적 관계를 파악하는 일에 집중하 고자 한다.
본고는 러시아의 정복 대상지였던 이슬람권 지역에 대한 이해를 통해 러시아 지역에 대한 선교전략을 모색하며, 이를 위해 피지배 민족인 러시아연방 내 무슬림 민족들에 대한 역사적, 종교적 부분, 그 중에서도 러시아정교와 이슬람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본고는 러시아권에서의 러시아정교와 이슬람의 역사적 이념을 러시아와 오스만 튀르크와의 역사적 관계를 통해서 규명하며, 소비에트 체제 이후 러시아정교와 이슬람의 관계를 통해 이를 강조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현재의 러시아연방 내에서 러시아정교도와 무슬림 간의 종교 정체성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러시아연 방 내의 무슬림권에 대한 선교 전략을 도출하는 학적, 방법론적 내용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논문은 공동체성이 상실된 오늘의 교회 현실을 분석하고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는 선교적 교회가 어떤 공동체를 지향하며 어떻게 그리스 도 안에서 공동체적 삶을 체험하고 누릴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늘날 근대주의와 자본주의의 영향 아래에 있는 교회 는 점차 공동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는 근본적으로 공동체를 중시하며, 구성원들이 공동체성을 경험한 만큼 선교적일 수 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공동체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요소로 일반적 으로는 동질성, 정서적 유대관계, 지역성을 꼽는다. 반면에 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공동체는 제도적인 차원 곧 신앙, 성례전, 직무의 차원에 서 이해되기도 하고 집단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차원에서 이해되기 도 한다. 진정한 신앙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에서는 내적인 삶의 요소가 더 중요하다.
필자는 선교적 교회의 공동체성 함양을 위해서 몇 가지 현실적인 방안들을 제안하였다. 첫째는 신앙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구성원들이 신앙에 기초한 동일한 가치와 비전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설교와 제자훈련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신앙의 공동체성에 관해서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둘째로는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실천적 과정을 통해서 공동체를 육성하는 것이다. 교회 조직 안에서 이루어지 는 다양한 신앙의 과정들 곧 세례, 성만찬, 예배, 훈련, 교제, 증언 등은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이런 공동의 인식 아래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셋째로 필자는 신자들 사이의 공동체성을 함양하기 위한 코이노니 아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1) 선교적 공동체 안에서 신자들은 서로를 진정한 형제자매로 생각해야 한다. (2) 식탁 교제, 상호 견책과 용서는 하나님의 가족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방법이 된다. (3) 공허한 말보다는 서로를 돌보고 섬기는 실제적인 봉사가 요구된다. (4) 교회 안에 상호부조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구조가 마련되 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