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성경에서 중심적이며 주요한 주제이다. 크로보 부족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땅은 그들에게 생명의 근원이다. 본 논문은 크로보 부족과 이스라엘의 땅의 개념을 살펴보기 위해 비교 연구를 하였다. 이를 통해 크로보 부족의 땅에 관한 세계관이 성경에 기록된 땅에 관한 이스라엘의 세계관과 많은 유사점들뿐만 아니라 차이점들이 있음을 관찰하였다. 본 연구는 땅의 농업적 관점을 살펴봄으로써 크로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땅의 선교신학적 요소들을 발견한다. 크로보 사람들은 청지기처럼 그들의 땅을 존중하며 잘 관리하고 경작한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를 “땅의 청지기론”이라고 부른다. 땅의 선교신학은 농업선교를 위해 크로보 지역뿐만 아니라 그밖에 다른 농경사회 시스템 내에 살고 있는 불신자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소통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내러티브 요소이며 이론을 제시한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교사였던 바울은 그의 정체성에서 특별한 점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회심 후 오랜 시간이 지나 특별한 사람들만 소명을 받게 된다. 바울의 선교적 인생의 전환점이 된 ‘다메섹 사건’은 그의 정체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는데, 그에게는 회심이 곧 소명이 되었다. 바울은 이 사건을 전할 때마다 서로 다른 보도를 하고 있다. 그 이유를 우리는 바울이 처한 정황을 고려한 선교적 해석을 통해서만 정확히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임을 여러 번 강조함으로써 적대자들의 핍박과 공격의 대상이 되지만, 바울은 결코 어떤 사람이나 기구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신적권위에 의지하여 유대적 율법주의에 맞서며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오늘날 우리가 바울처럼 ‘사도직’을 자신의 선교사역의 결과에서 비롯된 ‘사도됨’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선교학의 핵심개념 가운데 하나인 사도직이 바르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타문화권 선교 초기부터 아시아 선교에 자원을 집중해 왔다. 아시아 선교를 위한 지역 연구도 비교적 일찍부터 있었다. 한편, 전 세계 인구의 약 60퍼센트가 집중된 아시아는 인종적 다양성도 매우 클 뿐 아니라, 정치, 외교, 경제, 문화, 종교도 매우 다양하다. 아시아에 한국 교회의 선교 자원이 집중되는 추세는 한국 선교 인력의 증가가 멈추더라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 대륙에서 가장 큰 선교 자원을 제공하는 교회는 미국 교회나 영국 교회가 아니라 한국 교회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교회는 아시아 선교를 더욱 책임 있는 자세로 수행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아시아 선교의 이슈들은 다음과 같다. 아시아의 규모를 고려할 때, 아시아에 있는 한국 선교사의 수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 선교사들은 협력 선교를 추구하는 한편, 물량 선교는 지양해야 한다. 또한 선교사의 추방과 입국 거부의 위협을 적절히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국민 종교 활동을 제한하는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환경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국 선교사들은 아시아에서 선교의 마중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덴쇼소년사절단(天正遣欧少年使節)은 예수회 동인도 지역 순찰사로 파견된 알렉산드로 발리냐노가 1582년 2월 20일(덴쇼 10년)부터 1590년 7월 21일(덴쇼 18년)까지 기획한 최초의 유럽 방문 일본인 소년단이다. 보편교회와 유럽인들에게는 늘어나는 일본인 신자 공동체를 알려줌으로써 선교의식을 고취시키고, 일본인 신자들에게는 유럽의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발달한 문화를 보여줌으로써 신자로서 자부심을 갖게 하여 향후 선교의 동력으로 삼고자 하였다. 소년들은 발리냐노가 아리마에 세운 최초의 현지 신학교 제1기 신학생들이었고, 큐슈지방의 유력한 기리시탄 다이묘들의 친인척들이었다. 소년단의 유럽 방문은 이후 교체된 일본의 정권하에서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일본이 세계정세에 민감하게 움직이고 서구를 향해 문호를 개방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동시에 교회로 하여금 선교지에 대한 인식과 선교사 교육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글은 주후 4-5세기에 활동한 콥틱 수도사 시누다의 신학과 삶이 주는 선교학적인 함의를 살펴보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먼저 2천 년의 역사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주후 7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를 정복한 이래 1,300년 이상을 차별과 핍박을 겪으면서도 믿음과 영성을 지키고 있는 콥틱 교회와 콥틱 수도원의 역사를 소개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콥틱 수도사 중에 하나인 시누다는 주후 3-5세기에 아타나시우스와 시릴이 확립한 성육신 신학에 뿌리를 두고 수도원 규율을 세워 성육신에의 참여와 몸의 훈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선교적 존재가 되는 일에 집중하였다. 시누다는 이 땅에서의 삶을 등한시 하는 오리겐의 이원론 사상을 철저히 배격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재의 삶이 중요함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도우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삶을 살고자 하였다. 콥틱 수도사 시누다의 성육신 신학과 삶은 본질적으로 선교적 존재가 되는 것과 선교적인 삶을 사는 것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 가르쳐 준다.
본 연구의 목적은 청소년 시기에 교회를 떠난 탈(脫)교회 청년들이 교회 이탈과정 중 경험하는 심리적·영적갈등 경험을 구조화하여 이들의 갈등 경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돕고, 향후 이들 탈(脫)교회 청년들의 심리적, 신앙적 회복을 위한 관련 정책 수립의 기초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후속 연구의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 연구 질문으로는 ‘청소년 시기에 탈(脫)교회한 청년들이 교회 이탈 후 경험하는 갈등 경험의 본질은 무엇인가?’이며, 이러한 연구 질문을 중심으로 질적 연구방법론 중 현상학적 연구방법론으로 연구를 진행하여 이들의 갈등경험의 양상을 분석하여 규명하였다. 이들의 교회이탈 경험 과정 중 심리적·영적 갈등 경험의 주요 요소를 구조화하여 도출한 결과, 이들의 갈등 경험의 과정은 ‘초기 영적 성숙의 시기’, ‘신앙적 갈등의 시기’, ‘교회 이탈의 시기’, ‘양가적 갈등의 시기’등 총 4개의 갈등 경험의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13세기에 이슬람이 유입된 아쩨는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애니미즘과 수피즘 등이 혼합된 민속 이슬람의 성향이 강하다. 중재자 역할을 하는 왈리와 숭배사상을 갖는 수피즘은 아쩨의 이슬람화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아쩨전쟁,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다룰이슬람, 그리고 자유아쩨운동은 과거 아쩨 술탄국의 번영을 갈망함과 동시에 고난을 이겨내기 위한 투쟁이었다. 남자의 독립성을 키우는 므란따우(Merantau)와 딸에게만 재산을 상속하는 관습은 아쩨의 가정을 여성 중심으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만남과 관계 형성에서 시작되고 그 접촉점의 역할로 의료선교는 매우 유용하다. 아쩨의 역사는 고난과 비통으로 함축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전인적 치료이다. 동양의학은 아쩨 무슬림의 비애를 돌볼 수 있고 만성적인 질병에도 효과적이다. 특히 경제적이고 치료 효과가 좋은 침술은 아쩨 무슬림의 건강관리에 적합하다. 동양의학의 궁극적 목적인 양생(養生)과 복음전파를 통한 전인치유는 전인적으로 병든 아쩨 무슬림을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는 사건이다.
칼 라이헬트는 노르웨이 출신 중국선교사로서 중국 불교승려들에 대한 초점을 맞추어 사역한 선교사로서 그의 위대한 업적에 비해 선교역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다. 당시 승려들의 복음화를 위해 그들과 동일화하는 과감한 상황화 입장을 펼쳤으므로 선교부의 오해와 불신으로 추방당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성취론(Fulfillment Theory)적 입장에서 불교철학과 기독교와의 접촉점을 발견하여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쳤다. 하남성에서 홍콩으로 선교지를 옮긴 후 도풍산에 불교양식의 선교센터를 건립하고 찾아오는 불교승려들과 도교인들에게 함께 기숙하며 토론하면서 복음을 가르쳤으며, 270여명의 불교승려들과 다수의 도교인들을 개종시켰다. 또한 루터교 연합신학교를 설립하여 제자들을 배출시켰으며, 중국어 성경주석발간 등 교육사업과 출판사업에도 업적을 남겼다. 당대 선교부로부터의 냉대와 추방에도 불구하고 일생에 걸친 불교의 지도자들을 향한 사랑과 전도행로는 기독교 선교역사에서 재평가되고 연구되어야할 가치가 있다. 본 연구를 위해 칼 라이헬트의 저서와 그에 관한 저널들, 성취론에 대한 견해들과 라이헬트의 입장, 도풍산 현장의 증거 등을 수집하고 분석하였다.
본 논문은 다문화 사회 선교와 관련하여 도움이 될 만한 두 군데의 구약성서의 본문을 살핀 것이다. 첫 번째는 창세기 21장 8-21절의 ‘이스마엘과 하갈 이야기’인데 아브라함의 약속 기사에서 불필요한 부분으로 여겨져 외면을 받아 온 구절이다. 그러나 이 ‘이스마엘과 하갈 이야기’를 반복이라는 문학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창세기 22장 1-19절의 ‘이삭 번제 사건’과 비교해 보면 이 두 구절에는 거의 완전한 병행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창세기 22장의 이삭 번제 사건 기사가 축복과 약속에 관계된 것이라면 창세기 21장의 하갈과 이스마엘 이야기도 역시 쫓겨나는 저주의 기사가 아닌 또 다른 축복과 약속의 기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살핀 곳은 요나서이다. 요나서는 저자가 구사한 아이러니라는 기법을 사용하여 전 인류를 동정하는 하나님을 입으로는 고백하면서도 자신들의 집단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동정을 부인하는 무리들에 대해 항변함으로써 보편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심화시킨다. 한편 요나서는 구조와 언어를 통하여 사랑이 율법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주제를 강화시킨다.
대통령 탄핵과 새로운 정권의 출범 이후 남북정상회담이 계속되며 평화공존과 통일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지금, 감정적인 반응과 이념적인 평가가 현실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 공동체는 어떤 시각으로 사회변화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지 검토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신앙의 눈으로 사회변화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고, 편향성과 주관성을 떠나 신중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의 뜻이라며 하나님 이름을 오용하는 일은 이젠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화해의 사명을 자각하여 분열된 사회와 분단된 조국의 화해를 위해 선을 행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용서하고 서로 화목하며 공의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동포를 위해 기도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적 활동이며 교회는 하나님 선교의 결실이라는 것과 지속적인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이다. 또한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며 증언하기 위해 지상에 존재하는 가시적인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 가시적 백성인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를 일차적으로 증언하고 선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교회 안의 예전이며 목회 행정이다. 성찬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이 선포되고,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선교적 백성들을 세상으로 파송하고, 예배와 설교를 통해 회중들에게 세상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가도록 도전하는 일이야 말로 선교적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이다. 또한 목회 조직들을 선교적으로 재구성함으로 교회가 무엇인가를 새롭게 인식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실현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도록 도전해야 한다.
선교학에서 의미와 형식(Meaning and Form)의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토착화나 효과적인 복음전도 전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복음이 ‘의미’라면 그 복음을 담은 그릇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은 불변하는 진리이지만, 그 복음을 담은 그릇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시대와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그릇 때문에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교회들이 의미와 형식, 즉 복음과 복음을 담은 그릇을 혼동할 뿐 아니라, 오랜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형식(그릇)을 고집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 논문은 영국을 중심으로 새롭게 일어나는 교회양식들인 Fresh Expressions of Church 운동의 형성배경과 개념을 서술하고 오늘 우리 한국교회 안에서 발견되는 사례들을 정리한 후,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통해 드러나는 선교적 통찰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교회 안에서 Fresh Expressions of Church 운동이 어떻게 적용되고 전개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