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의 사상은 오늘날 이중적인 형태, 즉 사변적 혹은 경험적, 정치적 혹은 신비적, 그리고 내적 혹은 외적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본 연구는 이런 이중적인 이해를 통합해보려 했다. 이중적인 이해에 있어 그의 생애-교회정치가 혹은 수도사-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한 이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관상과 활동의 관계를 이해하는데도 관상의 우위에 두려는 경향으로 인해 앞선 연구자들은 마치 베르나르의 사상을 내적인 것에 편중되어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베르나르의 사상 관상의 우위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연구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에서 시작된 것이다.
연구자는 본론의 첫 부분(Ⅱ장)에서 관상의 내적인 성향과 활동의 외적인 성향을 살피보고 관상적인 삶이 활동적인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밝혀보려 했다. 그 결과, 베르나르에게서 대체로 내적인 변화가 외적인 변화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의 전환은 베르나르의 사상에서 수도원적인 사고의 표현이지만, 또한 그것은 자기애의 상실을 통한 이웃 사랑으로의 확장이며 종교적인 실천으로 표출되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상호 공존한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본론의 두 번째 부분(Ⅲ장)에서 사도직 안에서 관상과 활동과의 관계를 살폈다. 여기선 베르나르의 사도직에 대한 이해는 관상하는 삶을 전제로 한 활동하는 삶의 구현이다. 그것은 관상과 활동이 조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수도원생활의 은둔적인 삶보다 세상 속에서 관상하는 삶을 통해 신적인 충만한 사랑을 다른 영혼들에게 전달하는 사역이다. 사도적인 삶의 형식은 중세 초기의 관상하는 삶을 넘어서 중세 후기로 이어지는 교량적 이해인 “관상하는 삶과 활동하는 삶의 혼합된 삶”이다.
연구자는 본론의 세 번째(Ⅳ)에서 중세의 관상과 활동의 성서적인 모델로 적용된 마리아와 마르다와의 상호관계를 베르나르가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다루었다. 일반적으로 중세 신학자들은 두 인물을 관상과 활동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베르나르는 성서의 또 다른 인물인 욥을 등장 시켜 활동과 관상의 혼합적인 형태를 제시하면서 관상과 활동의 조화를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정화-관상-활동을 순서적으로 이해하지만 그것은 단지 순서적인 차이일 뿐 서열적인 차이가 아님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