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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19세기 극락세계의 모습을 불화로 가시화한 <極樂九品圖> 에 대해 조성배경과 특징, 그리고 圖像의 연원을 구명한 글이다. 19세기 에는 전체 화면을 가로와 세로로 분할하여 나누고, 극락의 세계과 왕생장면을 그린 독특한 형식의 불화가 출현하여 近畿지역 왕실의 願堂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이러한 불화를 <극락구품도>라고 하는데 이 글 에서는 서울 興天寺에 봉안된 <극락구품도>를 통해 불화의 도상과 특 징을 살펴보았다. 흥천사는 19세기 후반 고종의 私親이자 실권자였던 興宣大院君李昰 應(1820∼1898)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佛事가 후원되었다. 이하응의 후 원에 힘입어 흥천사에서는 전각을 重修하고, 불화를 새롭게 조성하여 전각에 봉안하였으며 왕실의 祈福을 기원하였다. 이하응 이외에도 흥천 사에서는 상궁들의 후원으로 불화가 조성되었다. 왕실의 안녕을 빌기 위해 흥천사에는 1885년 <극락구품도>를 비롯하여 4점의 불화를 봉안 하였다. 이 때 함께 봉안되었다고 생각되는 <극락구품도>는 독특한 형 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른바 화면 분할식 나한도, 팔상도 등의 불화에도 적용되었으며 19세기에 주로 근기지역에서 유행된 형식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흥천사 <극락구품도>에 보이는 도상을 기본적으로는 극락을 묘사하는 불화나 경전의 變相에서 찾았지만 전각, 기물, 동물의 모티프 등은 당시 현실세계에서 吉祥을 상징하는 郭汾陽行樂圖나 瑤池 宴圖에서 차용하였다고 보았다. 길상의 기능을 하던 이런 그림들은 19 세기 이후 광통교를 중심으로 민간에 유통·확산되었다. 장수와 영원, 多 男과 자손번창, 태평과 복락을 바라는 상징체계가 구현된 회화의 이미 지는 극락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세계에 대한 바람과 이상향의 모델로 차용된 것이다. 또한 이 글에서는 제작연대가 기록되지 않은 흥천사 <극락구품도> 의 연대를 비정하였다. 1885년 조성되었다고 전해지는 흥천사 명부전 <十王圖> 10폭을 비교하여 전각, 인물표현 등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시왕도>는 <극락구품도>를 그린 畫僧大虛軆訓의 화풍과 유사하였 다. 따라서 <시왕도>가 <극락구품도>의 제작자였던 대허체훈이나 그 일파에 의해 그려졌을 가능성을 제기해보았다.흥천사 <극락구품도>는 19세기 왕실 원당에서 조성된 불화로 당대 인들이 꿈꾸었던 극락 세계의 일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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